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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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런던에서 자주 보이는 빵집이 있습니다. 바로 Gail’s Bake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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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공동 창업자가 2005년 런던 햄프스테드에서 시작한 작은 빵집은 십 여년 만에 영국 곳곳에 100개가 훌쩍 넘는 매장을 가진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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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부동산 시장과 정치권에서 Gail’s bakery를 언급하는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닙니다. 화제의 이 빵집을 살펴봤습니다.
2013년에 처음 런던에 왔을 때, 아내와 함께 동네 곳곳을 산책하며 맛집을 찾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유명한 벨기에의 폴 베이커리(Paul Bakery)와 프랑스의 르 팽 코티디앵(Le Pain Quotidien) 같은 베이커리 체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매장은 주로 도심이나 관광지에 위치해 있어, 도보로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클래팜 정션 근처의 노스코트 로드를 산책하다가 빨간 어닝이 걸린 “Gail’s Bakery(게일스 베이커리, 이하 Gail’s)”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저 평범한 동네 빵집인 줄 알고 들어가 사워도우 빵을 구매했는데, 약간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참 좋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사워도우가 Gail’s를 대표하는 빵이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Gail’s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작은 동네 빵집으로만 여겼던 Gail’s는 2024년 8월 기준 런던, 옥스퍼드, 브라이튼을 포함해 131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베이커리 체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부동산 시장, 정치권에서도 이 베이커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동산과 정치권이 주목하는 빵집, Gail’s Bakery
“Gail’s Bakery의 커피는 단순히 맛있는 음료가 아니라 그 지역이 ‘성공했다’는 상징입니다.” 영국의 독립 온라인 매체 ELL은 Gail’s가 위치한 동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여겨진다고 말합니다.
Gail’s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 장인이 직접 매장에서 반죽하고 구운 빵과 케이크를 파는 가게를 표방합니다. 마트나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파는 빵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죠. 그런 빵을 기꺼이 구매할 소비층이 모인 곳에 매장을 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을 표시하는 ‘마커’ 역할을 합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Gail’s 매장은 상류 중산층이 사는 지역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역할까지 합니다. “Gail’s와 같은 고급 브랜드가 출점하는 지역은 구매력이 검증된 부유한 지역입니다. 이런 브랜드의 유입은 해당 지역을 부유한 지역으로 표시해 수요와 가격을 계속 끌어올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끌 수 있습니다”. 런던의 대표적인 부동산 중개업체 윙크워스가 ELL 인터뷰에서 한 설명입니다.
Gail’s 같은 상점은 장기적으로 지역의 매력과 편의성을 개선하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을 촉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지역에 끌리게 되고, 이에 따라 부동산 수요와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올해 7월, 영국 자유민주당이 보수당의 지역구를 공략하기 위해 “그 지역에 Gail’s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진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당시 자유민주당과 보수당이 중산층을 각자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충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치권에서 Gail’s가 위치한 지역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 밀집된 지역을 의미하는 지표로 사용된 겁니다.
십여 년 만에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비결
Gail’s는 2005년 게일 메지아(Gail Mejia)와 톰 몰나르(Tom Molnar)가 영국 햄프스테드에 오픈한 작은 빵집에서 출발했습니다. 게일 메지아는 고급 레스토랑과 셰프들에게 빵을 공급하며 제빵업계에서 명성을 쌓았고, 몰나르는 프랑스에서 MBA를 마친 후 맥킨지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Gail’s를 공동 설립하게 됐죠. 이들은 전통적인 제빵 기술과 신선한 재료, 로컬리티를 중심으로 Gail’s를 차별화했습니다.
톰 몰나르는 “우리는 단순히 빵을 파는 것 이상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Gail’s는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고, 주민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라고 강조합니다.
Gail’s는 운영 과정에서 각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고 지속 가능성도 중요한 가치로 삼습니다. 특히, 남은 빵을 재활용해 다른 메뉴로 만들어 판매하는 웨이스트리스(Waste-less) 캠페인은 자원 절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를 중시하는 입지와 디자인
톰 몰나르의 말처럼 Gail’s 매장 위치와 디자인이 일반 대형 프랜차이즈와 확실히 다릅니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대체로 동일한 제품,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간판을 통해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려 하지만, Gail’s는 각 매장이 위치한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분위기를 살리고, 지역사회와 깊이 연계된 공간을 만드는 것을 중시합니다.
예를 들어, 2017년에 오픈한 바터시 스퀘어(Battersea Square) 매장은 대형 슈퍼마켓과 레스토랑, 호텔이 밀집한 Battersea Park Road에서 약간 떨어진, 주거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세탁소, 부동산, 열쇠 수리점 등 소규모 생활 밀착형 상점들이 모여 있는 작은 상권으로, 대형 체인점인 Gail’s가 이곳에 어떻게 어울릴지에 대해 주민들이 궁금해했죠. 그러나 오히려 유동 인구가 적은 이곳에 위치함으로써, Gail’s는 지역 주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매장 디자인에서는 Gail’s의 상징적인 빨간 어닝 대신 노란 어닝을 사용하여 체인점의 느낌을 줄이고 지역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 2017년 오픈한 하이스트리트 켄싱턴(Highstreet Kensington) 매장은 런던 디자인 박물관 옆에 위치하여 독특한 개성을 자랑합니다. 그리스의 코린트 양식과 유사한 디자인을 통해 기존 건축 요소를 존중하면서 개별 매장의 특성을 강조했습니다.
복스홀(Vauxhall) 역 인근의 사우스 램버스(South Lambeth) 매장도 흥미롭습니다. 이곳은 스타벅스, 웨이트로즈, 난도스, 세인즈버리 같은 대형 체인들이 모인 중심 상권에서 벗어나 공원과 런던 대학 기숙사가 있는 조용한 지역 상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톰 몰나르가 “브랜드 확장은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 그의 경영 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네오 뱅크사이드(Gail’s Neo Bankside) 매장은 Tate Modern 옆,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고급 주거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관광객과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업무 및 관광 중심지지만, Gail’s는 메인 상권에 끼어드는 대신 아파트 주민과 근처 직장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건물에 입점했습니다. 리처드 로저스의 건축적 미학을 존중해 빨간 간판 대신 외장 입면을 유지하고, LED 라이트로 상표를 표시하는 방식을 채택했죠. Gail’s가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며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일부 주민은 반감… 이젠 로컬의 대척점
하지만 반감도 있습니다. Gail’s가 대형 프랜차이즈 체인으로 변모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소상공인의 가게, 동네의 고유성을 중시하는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런던 동부 월섬스토우에서는 주민 500여 명이 ‘지역의 독특함을 해친다’며 Gail’s 매장 오픈에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했고, 브라이튼에서는 매장 외벽에 “지루하다”는 낙서가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영국 타임스(The Times)는 이에 대해 ‘부유한 동네가 Gail’s의 진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는 싸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빠르게 이뤄지는 상업화와 공장화
Gail’s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경제 불안 속에서도 2023년 약 2,22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2024년 초 베인 캐피탈 크레딧(Bain Capital Credit)과 에비타 인베스트먼츠(EBITDA Investments)가 Gail’s의 모회사인 브레드 홀딩스(Bread Holdings)를 매각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Gail’s는 동네 빵집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올해부터 영국 고급 슈퍼마켓 체인인 웨이트로즈와 제휴하여 Gail’s 제품을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포장(takeaway) 제품을 파는 매대인 만큼 이전만큼 신선한 빵을 기대하기는 어렵죠. 지역 상생, 신선함을 중시하는 Gail’s의 초기 철학과는 다소 상충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난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세계적인 아트 페어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 & Master)에 들어선 Gail’s 매장도 우리가 알던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Gail’s가 기존에 추구해온 아늑하고 푸근한 동네 쉼터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프리즈에서는 관람객들이 서서 커피를 빠르게 받아들고 다음 사람을 위해 비켜야 하는 소란스러운 카페였죠.
어느덧 Gail’s는 대형화, 상업화, 공장화 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 성장해야 하는 브랜드의 필연적인 운명일까요? 앞으로 Gail’s는 어떻게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오래된 고객으로서 Gail’s의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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