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영국 런던에서 뜨고 있는 명소 중 하나가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Battersea Power Station)입니다. 영국 패션지 <엘르>는 “몇 년 만에 이렇게 오프라인 쇼핑에 대한 기대감이 생긴지 모르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죠.

  • 한 때 런던 전력의 20%를 생산했던 화력 발전소가 폐쇄된 지 40여 년 만에 상업, 오피스, 주거 공간이 모인 대규모 복합시설로 재개장해 문을 연 것인데요.

  • 공공과 민간이 힘을 합쳐 도시재생 성공 사례를 만들고 있는 이곳을 박종민 건축가가 건축가이자 동네 주민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생일 초 같아.” 캄캄한 밤, 붉은 조명을 단 크레인들을 본 어린 아들이 했던 말이다. 우리 가족이 2016년 런던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생일 초처럼 부지 위에 듬성듬성 세워진 크레인이 거의 유일한 고가 시설물이었다.

런던 시민 중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에 와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첼시에서 30년을 살았는데,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한 번도 안 가봤어.” 런던의 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 아이의 친구 엄마가 했던 말은 결코 우리를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첼시에서 대중교통으로 10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지척에 있지만 시민들이 찾는 곳은 아니었다. 화력 발전소, 쓰레기 처리장, 농산물과 화훼 시장이 있는 이곳은 같은 런던 안에서도 런던을 ‘지원’하는 지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22년 10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고급 레지던스와 신식 아파트가 들어서고, 대형 마트, 맛집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발전소 앞 광장에는 영화제, 푸드트럭, 놀이시설, 스케이트장 등 계절별 행사가 열린다. 무엇보다 오피스 빌딩들이 들어서며 많은 직장인의 꿈인 ‘직주근접’을 실현한다. 애플의 유럽 본사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들의 사무실이 이곳에 있다.

영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는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을 “런던에서 가장 기대되는 재개발”로 소개한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개발되었고, 활용되고 있을까?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사실상 30년 동안 방치되던 부지

1927년 영국 건축가 길스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이 설계한 배터시 패워 스테이션은 두 개의 화력 발전소가 따로 건설되어 하나의 건물로 묶인 형태다. 한 때 런던 전력의 20%를 생산할 만큼 중요한 시설이었지만 시대는 바뀌는 법. 천연가스와 석유 등 대체 전력이 부상하며 1983년 가동을 멈췄다. 발전소 전체는 영국 지정문화재 2급으로 지정됐다.

이후 런던시와 원즈워스(Wandsworth) 자치구는 발전소 건물을 리모델링 후 활용하기 위한 공모전과 사업을 여러 차례 추진했다. 테마파크, 주상복합건물, 도시공원, 첼시FC의 새로운 홈구장까지 갖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실현된 안은 없었다.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을 활용한 콘셉트 디자인. 발전소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주변을 거대한 롤러코스터가 둘러쌓는 형태다. (출처 Dezeen, The Architectural Ride at Battersea Power Station by Atelier Zündel Cristea, 2013.03.06)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을 활용한 콘셉트 디자인. 첼시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출처=Dailymail, Chelsea pull plug on Battersea Power Station Stadium Plans. 2012.07.06)

사실상 30년 넘게 방치되던 이곳은 2012년 16억 파운드(약 2조 8400억 원)에 SP Setia와 Sime Darby Property가 이끄는 말레이시아 투자자 컨소시엄에 매각되면서 본격적인 재개발에 돌입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이는 영국 역사 상 가장 큰 부동산 거래 중 하나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Rafael Vinoly)가 제안한 마스터플랜에 따라 2012년 말레이시아 투자자 컨소시엄이 첫 삽을 뜨기 시작했다. 런던 중심부(zone1)에 위치한 800만 sqft(약 24만 2400평) 개발 부지에 90억 파운드(약 16조 290억 원)를 투입하는 계획이었다.

7단계로 나누어 진행되는 대규모 재개발

규모가 워낙 큰 만큼 전체 프로젝트는 총 7단계(7 Phase)로 나눠지며, 단계별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2017년 Phase 1인 주거 및 상업시설인 서커스 웨스트 빌리지(Circus West Village), 2022년 Phase 2인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Battersea Powerstation)이 완공된 데 이어 현재 Phase 3인 포스터앤파트너스(Foster+Partners)와 게리 파트너스(Gehry Partners)가 공동 계획한 복합 주거단지인 일렉트릭 블루바드(The Electric Boulevard)가 공사 막바지에 있다. 특히 Phase 3은 배터시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아파트와 상점, 호텔 등으로 구성된다. 게다가 그림쇼(Grimshaw)가 설계한 지하철 역사가 2020년 완공되어 런던 시내 어느 곳에서든 배터시 파워스테이션에 보다 쉽게 올 수 있게 됐다.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은 7단계로 나눠서 재개발을 진행한다. 2024년 현재 3단계(phase 3)가 진행 중이다. (출처=batterseapowerstation.co.uk)

쇼핑몰과 주택단지로 새로운 활력을 얻다

배터시 파워스테이션은 젊고 활달한 지역이다. 전통적인 부촌인 바로 옆 첼시와 비교하면 더욱 그 분위기가 대조된다.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각각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고, 리포메이션이나 스웨티 베티, 쿠플스처럼 2030세대를 겨냥한 패션 브랜드가 상점을 냈다. IWC 샤프하우젠, 브라이틀링, 태그 호이어, 롤렉스 같은 고급 시계 브랜드도 모여 있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와 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는 자동차 체험 매장을 운영한다. 고든 램지의 캐주얼 레스토랑을 비롯해 맛집도 많은데, 주말이면 식당 앞에 대기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2022년 10월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 오프닝 모습 ⓒ박종민

흥행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6개월 간 방문한 사람 수가 500만 명을 넘겼다. 대형 슈퍼마켓, 맛집을 비롯해 한국 식료품 가게 등 흥미로운 리테일이 잇따라 생기고 발전소 앞 광장을 중심으로 영화제, 푸트트럭, 놀이시설, 스케이트장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연중 열리는 덕분이다.

고급주거 시설에는 다양한 입주민 시설(수영장, 레스토랑, GYM, 영화관, 비즈니스 회의실, 게임룸, 카페 등)이 들어섰고, 기존 발전소 외벽을 내부로 유지하거나 확장해 특유의 분위기를 살렸다. 게다가 발전소 남쪽 Phase 3구역에 위치한, 포스터 앤 파트너스와 게리 파트너스가 디자인한 주거 단지는 화력 발전소를 바라보는 뷰를 제공하여 색다른 경험을 입주민에게 제공하면서 새로운 주거 단지로 인식되고 있다.

주거단지 진입로 ⓒ박종민
기존 발전소 외벽을 유지한 내부 공용공간 인테리어 ⓒ박종민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 부지는 스타 건축가들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프랭크 게리(Frank Gehry), 라파엘 비뇨리(Rafael Viñoly), 니콜라스 그림쇼(Nicholas Grimshaw), 크리스 윌킨슨(Chris Wilkinson)⋯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건축가들의 설계 사무소가 건축물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건축가들이 발전소 부지에 지은 화려한 건물 입면들 ⓒ박종민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곳 부지의 주인공은 거대한 화력 발전소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벽돌 건물로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솔리드한 거대한 벽면은 웅장함을 넘어 사람들이 느끼는 휴먼스케일 이상이다. 덕분에 주변 건물들이 작게 보이는 착시 효과가 생기고, 주변의 스타 건축가들이 설계한 다양한 건물들은 하나하나 돋보이기 보다 화력 발전소의 거대한 볼륨에 동화된다.

24만 평이 넘는 거대한 부지에 화력 발전소를 중심으로 오피스, 리테일, 주거 단지 등이 모여 있다. (출처=batterseapowerstation.co.uk)

발전소 건물 중심에는 직원 2천여명이 근무하는 애플의 유럽 본사가 들어섰다. 4만 5000㎡ (약 1만 2500평), 6층 규모의 사무 공간이다. 애플 특유의 깔끔한 입면, 노출 파노라믹 엘레베이터, 발전소 외벽의 붉은 벽돌,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이 어우러져 상업 시설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든다.

발전소에 들어선 애플 유럽 본사 모습. 건물은 100% 재생 에너지로 운영된다. (출처=www.apple.com/uk/newsroom)
(출처=www.apple.com/uk/newsroom)

2023년 2월 오픈한 아트텔(Art’otel) 부티크 호텔도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mie Hayon)이 인테리어를 담당한 호텔로, 옥상에는 정원과 레스토랑, 수영장이 설치돼 화력 발전소 상층부를 바라볼 수 있다.

발전소 굴뚝을 전망대로 바꾼 리프트 109(Lift 109)에는 109미터 상공에 360도 파노라믹 엘리베이터가 있다. 런던과 바터시 주변 전체를 둘러볼 수 있어 최근 런던의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관광객 뿐 아니라 주민들이 이곳을 찾을 이유도 충분하다. 2022년 연말 광장에는 아이스링크장과 놀이기구가 만들어졌고, 윔블던 테니스 기간에는 테니스 코트와 대형 스크린, 각종 게임 시설이 세워졌다. 그 외에도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어린이 놀이터, 원형 광장 등은 사람들이 만나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야외 행사. 거대한 체스장(왼쪽)과 윔블던 기간에 설치된 테니스 체험장 모습. ⓒ박종민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아이들을 위한 공용 놀이터 ⓒ박종민
연말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외내부 모습 ⓒ박종민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곳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을 두고 몇몇 언론에서는 성공 혹은 안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재개발에 투자된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안한다면 2년 만에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7단계 계획 중에서 이제 3단계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7단계까지 완공될 때까지 8, 9년은 더 지켜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 부지가 바뀌는 모습을 지켜본 주민으로서 이곳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새로운 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오늘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곳이다.

ⓒ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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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4년 7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