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하라주쿠는 수 십년 전부터 패션을 사랑하는 10대들이 사랑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에너지가 넘실대는 지역이다 보니 이곳에 들어설 상업시설은 다른 동네와는 달라야 했죠.

  • 부동산 개발 및 운영 회사 도큐 부동산은 지난 4월 17일 하라주쿠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표방하는 상업시설 ‘하라카도’를 오픈해 화제를 모읍니다.

  • 유리 큐브를 깎아놓은 것처럼 예쁜 외관에 대중목욕탕과 도서관을 섞은 파격적 리테일로 눈길을 끄는 이곳을 정희선 애널리스트가 직접 다녀왔습니다.

도쿄 하라주쿠는 독특한 코스프레를 한 10대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일본 카와이(Kwaii) 문화를 대표하는 로리타룩, 격자 줄무늬 바지에 찢어진 티셔츠를 입은 펑크룩, 검은색 옷에 실버 액세서리로 장식한 고스룩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젊은 세대가 기세를 떨치는 곳이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하라주쿠는 위기를 감지했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의 재개발로 급변하며 주민과 관광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시부야와 신주쿠 사이에서 하라주쿠가 주춤하는 모양새가 될 것을 염려한 겁니다.

하라주쿠에 대규모 부지를 보유한 도큐 부동산은 고민에 빠지게 되죠. “하라주쿠가 앞으로도 일본의 문화를 이끌어가고 양산하는 곳이 되려면 무엇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지난 4월 하라주쿠에 생긴 상업시설 ‘하라카도’는 도큐 부동산이 고심 끝에 내놓은 답입니다. “하라카도는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닌 창조시설입니다.” 도큐 부동산이 창조시설로 정의하는 하라카도는 과연 어떤 곳일까요?

지난 4월 오픈한 하라카도. 유리 큐브를 깎아 놓은 듯한 예쁜 외관에 대중목욕탕과 도서관을 섞은 파격적 리테일로 화제를 모은다. ⓒ도큐부동산

하라주쿠의 특징 2가지

도큐 부동산은 시부야 지역을 거점으로 철도 노선을 따라 다수의 부동산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도큐 부동산은 시부야역을 중심으로 한 반경 2.5km 지역을 ‘광역 시부야권(Greater SHIBUYA)’으로 정의하고 시부야, 다이칸야마, 하라주쿠, 요요기 공원에 이르는 지역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광역 시부야권 중에서도 하라주쿠는 일본의 서브컬처 유행을 주도하는 핵심 지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라카도’ 역시 평범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과감하고 실험적이며 자극적인 리테일로 가득한 공간이어야 했죠.

지하 1층, 지상 7층으로 이루어진 하라카도는 다른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상업시설과는 테넌트 구성이 다릅니다. 물건을 파는 상점뿐만 아니라 라디오 방송국, 디자인 전문학교, 잡지 전문 도서관, 심지어 목욕탕이 하라카도 안에 들어섰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라주쿠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도큐 부동산은 하라주쿠의 두 가지 특징에 주목합니다.

첫째, 하라주쿠는 일본 문화를 리드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1960년대부터 주택 겸 상업빌딩인 센트럴 아파트와 그 주변에 모여든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수많은 유행이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버블 경제 시절 독특한 의상을 입고 야외에서 춤을 추는 타케노코족 (竹の子族)이 탄생하고 2000년대에는 ‘포에버 21’ 등 해외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일본 최초의 점포를 선보인 바 있죠.

둘째, 하라주쿠는 도쿄의 유명 관광지와는 다르게 상업시설과 주택이 어우러진 곳입니다.자극적인 점포가 가득한 하라주쿠이지만 한 블록만 뒤로 가면 한적한 주택과 저층 맨션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에 도큐 부동산은 하라주쿠의 정신과 문화를 지속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하라주쿠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지역 주민도 함께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히라타 아키히사가 설계한 ‘하라카도’ 외관 모습. ⓒ정희선

하라카도를 대표하는 단어 ‘크리에이터’

“일부러 물건을 사기 위해 도심에 오는 사람이 확실히 줄었다.” 하라카도 프로젝트 추진부의 이케다 (池田) 씨가 TV Tokyo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하라주쿠의 파워가 약해졌습니다”라고 우려합니다.

현재 ‘100년에 한 번’이라 불리는 재개발이 진행 중인 시부야, 그리고 가부키쵸 타워 (Tokyu Kabukicho Tower)가 오픈하며 엔터테인먼트의 동네로 변신 중인 신주쿠. 집객 파워가 강력한 두 동네 사이에 낀 하라주쿠는 어떻게 하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하라카도는 크리에이터들이 기업과 자연스럽게 접점을 갖고 창의력이 샘솟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상업시설이 아닌 ‘창조시설’이라고 정의하죠. 단지 외국인 방문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일본의 크리에이터들이 일상을 보내며 자극을 받는 곳이 되는 것을 비전으로 삼습니다. 하라주쿠가 수십 년 전부터 크리에이터가 많이 모이는 동네였으니, 하라카도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는 핵심 기지가 되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도큐 부동산이 정의하는 크리에이터는 전문적으로 패션이나 콘텐츠 제작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틱톡을 이용해 동영상을 촬영하고 발신하는 평범한 사람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가끔씩 몇 초의 쇼츠 동영상을 만드는 20대 직장인 여성도 창의력이 필요한 순간에 하라주쿠를 찾게 되길 바란다는 겁니다. 도큐 부동산은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어 트렌드 세터로서 하라주쿠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하라주쿠를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트렌드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거리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도큐 부동산 도시사업 유닛 시부야 사업본부의 구로카와 (黒川) 본부장
하라카도의 층별 안내도. 지하에는 대중 목욕탕이, 2층부터 7층까지 상점과 잡지 전문 도서관, 라디오 방송국, 디자인 전문학교, 테라스 등이 들어섰다. ⓒ정희선

하라카도의 무기 첫번째: 고스기유 목욕탕

하라카도의 모토는 ‘일과 놀이, 그리고 일상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에서 창의력이 피어나는 곳’. 이러한 하라카도의 철학을 대표하는 공간이 지하 1층에 위치한 모던한 대중 목욕탕 ‘고스기유’입니다. 도쿄 코엔지역 (高円寺駅) 근처에서 1933년부터 목욕탕을 운영해 온 고스기유가 2호점을 낸 것인데요. 최신 상업시설 안에 대중 목욕탕이 들어서다니 의아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고객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일 정도로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끄는 대중목욕탕 고스기유가 하라카도에 2호점을 냈다. ⓒkosugiyu

일본은 목욕 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동네마다 대중목욕탕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집마다 욕조를 설치하게 되면서 대중목욕탕도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2009년 도쿄에 800개 이상이었던 목욕탕이 2023년 450개 정도로 급감했고, 한 곳당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5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최근 폭등한 연료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목욕탕이 나오기도 하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9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스기유는 유형 문화재로 등록되고 언론에 연이어 보도될 만큼 유명세를 떨칩니다. 고스기유는 평일에는 400~500명, 주말에는 900~1,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방문하며 도쿄 내 목욕탕 평균 방문 고객의 6~7배에 달하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는데요. 50대 이상의 고객이 주 방문객인 일반 목욕탕에 비해 고스기유 고객의 절반은 30대 이하일 정도로 젊은 층에게 큰 인기죠.

그 이유는 바로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크래프트 콜라를 판매하거나 목욕탕 내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나 개그 라이브 등을 여는 등 목욕탕답지 않은 행보를 보입니다. 덕분에 고스기유의 매출은 8년 사이 2배 증가했습니다. 고스기유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지역 커뮤니티를 조성하여 새로운 목욕탕 문화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 도큐 부동산의 한 젊은 직원이 고스기유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팬이었고, 고스기유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모습을 하라주쿠에서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고스기유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kosugiyu

‘일과 놀이, 그리고 일상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에서 창의력이 피어나는 곳’이라는 하라카도의 모토 중에서 고스기유는 ‘일상’의 영역을 담당합니다. 아침 일찍 혹은 밤 늦게 들르는 인근 주민들을 위해서 고스기유는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하죠. 보통 관광지 상업시설이 주말과 휴일 손님에게 의존한다면, 하라카도는 고스기유가 입주함으로써 주민들을 불러들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고스기유가 기업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목욕탕 앞에는 A~D의 4개 블록으로 나누어진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각각의 공간을 파트너 기업이 임대해 고스기유와 시너지를 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 삿포로 맥주, 미용 가전 ‘MYTREX’ 등 4개 사의 제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스기유 회원이 되면 언더아머의 조깅화, 운동화, 운동 수건 등을 빌릴 수 있습니다. 덕분에 아침 조깅을 끝내고 고스기유에서 개운하게 씻는 동선이 가능합니다. 삿포로 맥주는 뜨끈한 목욕을 끝내고 시원한 맥주 한잔을 찾는 사람에게 시음을 권하죠.

고스기유 입구.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정희선
고스기유는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와 협업해 아침 조깅에 필요한 물품들을 대여해준다. ⓒ정희선
목욕탕 앞에서 시음을 권하는 삿포로 맥주 부스. ⓒ정희선

고스기유의 하라마츠씨는 “아침 일찍 들러 근처에서 조깅 하고, 목욕을 한 뒤 출근해도 좋습니다. 하루 종일 하라카도의 다른 층에 머물다가 저녁에 돌아가기 전에 요가를 하고 목욕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죠. 고스기유는 옷도, 신분도, 직함도, 나이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판매하려는 기업의 홍보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일상의 한 장면에 녹아드는 형태로 상품과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일본 고유의 문화로 발전한 목욕탕을 휴식 공간으로 재인식하고, 매일 당연하게 들어가는 목욕탕이라는 장소에 기업과 접점을 마련했습니다.

고스기유 대표이사 히라마츠(平松)씨, 일본경제신문인터뷰
고스기유 내 휴게공간. ⓒ정희선

하라카도의 무기 두 번째: 잡지 도서관 COVER

하라카도가 또 하나 힘을 쏟은 곳은 2층에 위치한 잡지 도서관 ‘커버(Cover)’입니다. 출판중계유통업체인 ‘닛판(日本出版販売)’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잡지를 모아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라카도의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데요. 하라카도는 이 공간을 통해 젊은이들이 잡지 및 책과 더 가까워지고 창의적인 영감을 얻길 기대합니다.

하라카도 2층에 들어선 잡지 전문 도서관 커버. ⓒ정희선
ⓒ정희선

하라카도 3층은 회원제 라운지, 촬영 스튜디오, 팟캐스트 스튜디오, 아트 갤러리 등 개인과 기업의 크리에이티브 활동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하라파’라는 이름을 가진 4층 공간은 식물이 가득한 휴식 공간입니다. 5층과 6층에는 음식점, 7층 옥상 테라스에는 하라주쿠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정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라카도는 제품을 팔아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까요? 하라카도는 방문객이 머무는 동안 기업이 고객과의 접점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광고하는 하는 즉, 고객과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합니다. 목욕탕이라는 장소에서 소비자는 다양한 기업의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처럼요.

하라카도의 옥상 정원과 그 앞에 설치된 계단은 하라주쿠의 풍경을 한 눈에 담기 좋은 곳입니다. 하라주쿠를 방문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기업들에게는 좋은 커뮤니케이션 장소가 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6층에는 녹차 브랜드 ‘아야타카’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구름과 같은 크기의 물방울을 발생시키는 미스트와 연기를 분출하여 마치 산 꼭대기 구름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하라주쿠 풍경을 배경으로 구름 속에서 아야타카 녹차를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이죠.

멋진 뷰를 자랑하는 7층 옥상 테라스. 방문 당시 녹차 브랜드 아야타카가 팝업 스토어를 열고 있었다. ⓒ정희선
ⓒ정희선
ⓒ정희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3층 부스는 공실, 2층 도서관은 무난

도큐부동산업이 의도한 대로 하라카도가 일반인 크리에이터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패의 열쇠는 ‘크리에이터스 플랫폼’을 표방하는 3층이 얼마나 활발하게 운영될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FM 라디오 방송국 J-WAVE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스튜디오, 동영상 촬영 편집 및 배포가 가능한 공간 ‘STEAM STUDIO’ 등 하라카도 회원이 되면 다양한 부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일본의 유명 문구업체인 코쿠요, 사탕 제조사인 칸로, 전자책 판매업체, XR(복합현실)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등 총 17개 사가 크리에이터들을 지원하기 위한 부스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방문했을 때가 오픈한지 한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3층 공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앞으로 더 흥미로운 부스들이 늘어나야 할 겁니다.

2층의 잡지 도서관 ‘커버’ 또한 자칫 단순한 잡지 열람 코너로 끝날 수 있습니다.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지속적인 이벤트가 필요해 보입니다.

“누구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라주쿠를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트렌드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거리로 만들겠습니다. 매력이 높아지면 사람들이 연결되고 경제가 순환하는 도시가 됩니다. 하라카도는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닌 창조 시설입니다.”

위의 말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 하라카도가 앞으로 얼마나 활기를 띨지 기대하며 지켜보겠습니다.

하라주쿠의 새 랜드마크가 될 ‘하라카도’ 랜더링 이미지. ⓒTokyu Land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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