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팬데믹 이후 부동산 개발에서 생활권과 여가권을 통합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 예전에는 출근해서 일하는 동네와 여가를 즐기는 동네가 달랐다면, 이제는 생활과 여가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동네가 인기를 끌고 있죠.

  • 최근 일본 시모키타자와에 부동산 개발 주체가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생활과 여가를 모두 만족시킨 거리가 들어서 화제입니다. ‘상냥한’ 부동산 개발로 주목 받는 이곳을 직접 방문해 살펴봤습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철도 강국입니다. 오래 전부터 철도가 여객을 나르는 주요 교통 수단으로 자리잡았는데요. 일본의 철도회사들은 철도를 운영할 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 및 임대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에서는 탑승객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철도회사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선로 근처에 상업시설 등을 만들어 철도 이용을 촉진하는 동시에 부대 수입을 얻습니다. 실제로 철도회사들은 일본의 스카이라인과 지역 개발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요. 현재 도쿄의 명소가 된 일본 최고의 전망 탑인 ‘스카이트리’도 토부 철도가 개발한 시설입니다.

지금까지 철도회사가 지역을 개발하는 방법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상업시설을 만들고 철도를 이용해 사람들을 수송하는 형태였습니다. 상업시설에는 전국적으로 운영되는 프랜차이즈 점포들을 들이고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교외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는 이러한 개발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역 개발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상업 시설을 일방적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그들이 참여하는 개성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시모키타자와(下北沢)입니다.

선로 지하화에 따라 생긴 선로거리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시모키타자와는 신주쿠에서 전철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인근 지역입니다. 원래 헌 옷이나 중고 레코드를 파는 빈티지 가게와 인디 밴드의 공연장이 모여 있어 젊은이들로 붐비는 곳이었죠.

전철 오다큐선과 이노카시라선이 만나는 이곳에는 철도가 지상으로 달리고 있었는데요. 선로를 지하로 이동시키는 프로젝트가 완공되면서, 철도가 사라진 지상 공간에 약 1.7km에 달하는 ‘시모키타 선로 거리(下北線路街)’라는 이름의 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시모키타자와 내 철도가 사라진 1.7km의 거리가 신흥 상권으로 변모했다. (사진출처=senrogai.com)

해당 부지는 오다큐 전철이 소유한 땅으로 시부야와 가까운 좋은 입지를 통째로 개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오다큐 전철은 기존의 도시 개발 방정식인 대규모 상업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닌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모키타자와를 개발했습니다.

오다큐가 세운 콘셉트는 ‘지역이 원하는 도시를 만든다 (地域が求める街をつくる)’. 가장 먼저 시모키타자와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친척이나 친구들이 왔을 때 머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녹지가 많은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와 같은 의견을 수렴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어떠한 모습이 가장 ‘시모키타자와다울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다큐 지역사업창조부의 하시모토(橋本) 과장은 “아침, 점심, 저녁, 비 오는 날과 주말을 포함해 어떤 사람들이 어디를 걷는지 동네 주민들의 습관을 파악했다. 주민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지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고 다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재개발 과정을 설명합니다.

접근 가능한 임대료, 3층 이하 건물이 가능한 이유

그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새로운 시모키타자와는 어떤 모습일까요?

시모키타자와역을 중심으로 다이타역, 히가시키타자와역의 세 역을 잇는 선로 거리 중심에는 독특한 복합 시설 ‘보너스 트랙’이 들어섰습니다. 매장 주인이 1층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위층에 거주할 수 있는 2층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층에는 음식점과 잡화점, 갤러리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단층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어 오래된 동네 상점가에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매장 주인이 1층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윗층에는 거주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든 복합 건물 ‘보너스 트랙’. 지속가능한 시모키타자와를 유지시키는 핵심이다. ⓒ정희선

오다큐는 주민들과 소통하며 시모키타자와에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형 체인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재개발을 통해 멋진 상업 시설이 들어서는 것도 좋지만 그럴 경우 ‘시모키타자와스러움’을 잃기 쉽다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소규모 점포들이 시모키타자와의 임대료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다큐 철도는 보너스 트랙을 설계하기 전 입주 희망자에게 지불할 수 있는 임대료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임대료에서 역산해서 투자 금액을 설정한 후 건물을 짓는 독특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보너스 트랙 내 점포의 임대료는 33제곱미터에 월 15만 엔 (약 140만 원)으로 다른 도쿄 지역에 비해 저렴한 편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건물 2층에 주택이 있어 임차인이 주택 임대료로 또 다른 수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보너스 트랙의 끝자락에는 료칸(일본식 여관)인 유엔 벳테이 다이타(由縁別邸代田)가 들어섰습니다. 지역 주민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료칸을 만든 것인데요. 오래된 주민인 한 할머니의 ‘예전에는 시모키타자와에도 료칸이 있어서 다들 거기서 묵었어. 그런 게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사해 보니 시모키타자와가 위치한 세타가야구에는 호텔이 거의 없었습니다. 100만여 명이 사는 구에 숙박시설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료칸을 만들었다고요.

료칸은 높은 가동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방문객의 90%가 세타가야 구민이라고 건데요. 교외에 위치한 료칸까지 이동하기 힘든 고령자들의 재방문율이 높다고 합니다.

도심에 나타난 온천 여관, 유엔 벳테이 다이타 (사진출처=senrogai.com)

보너스 트랙 뿐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상업 존인 리로드(Reload)에는 개성 강한 편집숍,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한 카페 등이 저층 건물이 이어져 있습니다.

ⓒ정희선

이 외에도 현대적인 호텔, 공유 오피스, 주민들을 위한 교육 시설인 시모키타 컬리지, 작은 공원, 팝업 카페나 푸드 트럭, 미니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광장 등 다양한 시설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어우러져 있습니다.

외지인을 위한 도시형 호텔, 머스타드 호텔 시모키타자와 ⓒmustard hotel
고등학생, 대학생부터 사회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함께 살며 배우는 거주형 교육시설, 시모키타 컬리지 (사진출처=senrogai.com)
라이브 공연 등이 이뤄지는 엔터테인먼트 카페 ADRIFT(왼쪽), 아이들을 위한 보육원

여태까지의 도시 개발은 수직으로 솟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는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모키타자와에서는 어느 곳을 걸어도 3층 이상의 높은 건물을 볼 수 없습니다. 저층 건물들이 수평으로 펼쳐져 골목길을 만들고, 개성 있는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죠.
건물 중간 중간에 배치한 벤치와 테라스도 수직으로 개발되는 상업시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국내 디자인 전문지<월간 디자인>이 리로드를 디자인한 오호리 건축가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길고 좁은 시모키타선로 거리에 커다란 수직형 건물이 들어서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에, 테넌트 공간을 15㎡에서 130㎡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로 구상한 뒤 이를 엇갈리게 배치하고, 중첩하거나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합니다.

ⓒ정희선

오다큐 철도의 ‘지원형 개발’, 앞으로 새 모델 될까

오다큐는 주민의 눈높이에 맞춘 이러한 재개발을 ‘지원형 개발’이라고 부릅니다. 마을의 주인은 주민과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들이 ‘만들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입니다. 개발업체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발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되고 개발사인 오다큐는 단지 지원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개발이죠.

흥미로운 점은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을 만들자 결과적으로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개성과 재미 가득한 지역이 탄생해 외부 사람들을 시모키타자와로 끌어들인다는 겁니다.

철도회사의 도시 개발은 도심에 백화점이나 대규모 오피스 빌딩과 같은 박스 형태의 건물을 만들고 철도를 통해 외곽의 주민을 대량 수송하여 도심으로 불러들이는 모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다큐는 신주쿠를 거점으로 삼아 ‘어떻게 하면 멀리에서도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오다큐 지역사업창조부의 하시모토(橋本) 과장, 닛케이 인터뷰

오다큐가 다른 개발 모델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고 소비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쇼핑몰을 만드는 것으로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밀집된 공간을 피하고자 하는 소비자들과 재택근무의 정착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행동반경을 크게 바꿨습니다. 예전에는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했습니다. 출근해서 일하는 공간과 여가를 즐기는 동네는 다른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이러한 경계가 불분명해진 지금, 생활과 여가를 한번에 즐길 수 있는 동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정희선

오다큐는 시모키타자와에서 시도한 이러한 ‘지원형 개발’이 앞으로 도시 개발의 새 방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모키타자와 선로의 개발은 약 5년에 걸쳐 총 90억 엔 (약 820억 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개발 후 시모키타자와역의 승하차 인원은 16만 명 증가했습니다.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전환된 2022년, 오다큐선 전체의 평균 수송 인원이 전년 대비 30.4% 증가한 반면 시모키타자와역은 평균을 상회하는 38.9% 증가했습니다.

시모키자와의 선로 개발 사례는 지역 주민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자 마을의 매력이 올라가 다시 새로운 활기와 수익이 만들어지는 선순환을 보여줍니다.

  • 해당 콘텐츠는 외부 필진이 작성한 글로 당사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및 투자 권유, 종목 추천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상기 내용은 2023년 10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