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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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층 이상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쿄역 주변은 일본을 대표하는 업무, 상업 권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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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관의 파격적 규제 개혁에 힘입어 민간 사업자(디벨로퍼)들이 ‘도쿄 대개조’를 추진했지요. 도쿄역 서부 역세권에 이어 도쿄역 동부 역세권에서 초고층 빌딩숲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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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수도의 관문인 서울역을 나서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서울의 얼굴’을 바꿔 도시 경쟁력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일본 도쿄역의 선례를 살펴봅니다.
‘도쿄는 대개조 중.’ 일본 도쿄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시부야, 아자부다이힐즈 등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도쿄 재개발 씬(scene)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관문 역할을 하는 도쿄역입니다. 도쿄역은 기차와 신칸센이 하루 3천 회 오가며 전국을 연결하는 일본 최대의 터미널입니다.
도쿄역이라 불리는 곳은 크게 마루노우치(丸の内), 그리고 야에스(八重洲) 지역으로 나뉘는데, 2000년 경부터 마루노우치를 중심으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야에스 쪽으로 개발 붐이 옮겨왔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하는 도쿄역 재개발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 정리해 봅니다.
마루노우치의 주인, 재개발의 포문을 열다
도쿄역 재개발은 마루노우치 일대에서 일본 부동산 회사 미쓰비시지쇼에 의해 시작됩니다. 마루노우치는 도쿄역과 황궁 사이에 위치한 지역인데요. 이른바 일본의 월 스트리트로, 일본에서 가장 큰 은행 1~3위가 몰려 있습니다.
미쓰비지쇼(三菱地所)는 도쿄역을 중심으로 30동이 넘는 빌딩을 가지고 있으며 미쓰비시 그룹 내 주요 기업들의 본사 빌딩이 마루노우치에 모여 있기에 ‘마루노우치의 주인’이라고도 불립니다.
미쓰비시지쇼는 1998년부터 2017년까지 20년에 걸쳐 9,500억 엔 (약 9조 원)을 투입해 재개발을 진행했습니다. 우선 10년 간 마루노우치를 대표하는 마루노우치 빌딩, 신 마루노우치 빌딩 등을, 그리고 2009년부터 오테마치 파이낸션 시티 노스타워를 포함한 다수의 빌딩을 재건축했지요.
이러한 재개발에는 건축 규제의 완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재개발 전에는 중요 문화재인 도쿄역 주변에 약 31m가 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규제가 있었지만 용적률 이전(토지의 건축물이 갖고 있는 이용하지 않는 용적률을 인근 토지에 이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 제도를 도입하면서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재개발 전 마루노우치는 ‘낮의 거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평일 낮에는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회사원들로 붐비지만 야간과 휴일에는 거의 사람을 볼 수 없는 유령 타운이었습니다.
이에 미쓰비시지쇼는 마루노우치를 365일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방문해 쇼핑하고 즐기는 곳, 낮과 밤 상관없이 활기가 도는 지역으로 바꾸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를 위해 마루노우치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가로수를 많이 심고 곳곳에 벤치를 놓습니다. 주변의 레스토랑은 노천에 테이블을 놓아 마치 유럽과 같은 분위기를 내기도 합니다. 게다가 미츠비시 이치고칸 미술관을 포함한 다수의 미술관을 재개발 건물 내에 만들어 문화의 지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루노우치는 20대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일하고 싶은 동네’이자 주말에는 멀리서 일부러 쇼핑과 식사를 즐기러 오는 동네로 변신합니다.
현재 진행형인 야에스 재개발, 미쓰이 부동산의 도전
도쿄역 서부인 마루노우치 지역은 에도시대부터 무가(武家)의 넓은 저택들이 자리 잡았던 반면, 도쿄역 동부인 야에스 지역은 상인들이 살았던 지역이라 좁게 나뉜 구획에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아직도 야에스 뒷골목엔 오래된 식당과 이자카야가 산재한 옛 풍경이 남아있지요. 같은 이유로 대규모 오피스 개발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곳으로 여겨집니다. 도쿄역 바로 앞이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이 이제서야 진행된 이유입니다.
야에스 재개발은 일본의 부동산 회사 미쓰이 부동산이 개발한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가 2023년 3월 모습을 드러내며 막을 올립니다.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는 총 사업비 약 2, 438억엔 (약 2조 3천억 원)을 들인 지하 4층~지상 45층 (240m) 규모의 복합 빌딩입니다.
미쓰이 부동산은 도쿄 심장부에 랜드마크를 만드는 미드타운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이전에 만든 롯본기 미드타운, 히비야 미드타운이 크게 흥행한 상태였죠. 미쓰이 부동산은 3번째 미드타운을 야에스에 개발하면서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둡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리얼(real)’의 중요성을 재인식했습니다. 우리가 개발하는 시설을 단순한 하드웨어(건물)가 아니라 ‘일하고’ ‘놀고’ ‘생활하는’ 즉, 사람들의 행동을 풍요롭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로 생각한 것이죠. 상업 시설뿐만 아니라 텔레워크 공간, 공공 휴식 공간 등 사람들이 모이고 싶어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모다 마사노부(駒田正信) 미드타운 야에스의 사장, 일본경제신문 인터뷰 중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에는 한 층이 약 4천 ㎡ 로 도쿄역 주변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모든 공간이 터치 없이 출입이 가능하도록 얼굴 인식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고층부에는 입주한 기업 직원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헬스장과 라운지를 갖추고 공유 오피스를 마련하였습니다. 재개발 부지에 있던 초등학교도 이전하지 않고 미드타운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최근 재개발되는 복합 빌딩의 특징 중 하나는 해외의 최고급 호텔 유치에 힘을 쏟는다는 것인데요. 이는 새롭게 개장하는 빌딩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마케팅에도 도움이 됩니다.
미드타운 야에스가 러브콜을 보낸 곳은 세계에 7개밖에 없던 불가리 호텔이었습니다. 꼭대기 40~45층에 들어선 세계 8번째 불가리 호텔 도쿄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죠. 특히 40층에 1,000 ㎡ 크기의 불가리 스파는 도쿄의 숨 막히는 경치를 감상하며 트리트먼트를 받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 한 가지 눈 여겨 볼 점은 지하 2층의 고속버스 터미널입니다. 도쿄역 야에스 출구 앞은 각 지방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많아 교통이 혼잡합니다. 버스 정류장을 모두 건물 지하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 중이고 작업이 완료되면 일본 최대 규모의 약 2만 1,000 제곱미터의 거대 버스 터미널이 탄생합니다.
혼잡한 도쿄역 버스터미널, 머무는 공간으로 바꿀 방법은?
야에스 재개발을 기획하던 미쓰이 부동산은 한 가지 고민에 빠집니다. 일본 최고의 교통 거점에 직결되는 시설을 탈바꿈할 기회를 얻었지만, 동시에 유동인구가 너무 많은 혼잡 지역이라는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쿄역은 일본 각지로 출발하는 신칸센, 기차, 버스 등의 교통수단이 집결하는 중심지로 유동 인구가 16만 명에 달합니다. 이들에게 도쿄역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중간에 잠시 거쳐 가는 장소였습니다.
미드타운 야에스의 상업공간 기획을 담당한 미쓰이물산 상업시설 본부 사업추진그룹의 야스다(安田) 씨는 TV 도쿄와의 인터뷰에서 기획 의도를 설명합니다.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에는 버스터미널이 있습니다. 도쿄역과 터미널이라는 교통 거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상업시설 기획과는 다른 발상이 필요했죠. 일본에는 이동 중에 발생하는 짧은 여유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가 생각보다 적습니다. 30~60분 정도의 체류 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방문객이 일부러 들르는 곳을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을까요?
이러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미드타운 2층에 위치한 약 830㎡ 규모의 ‘야에스 퍼블릭 (Yaesu Public)’입니다. ‘퍼블릭’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누구나 들러서 쉴 수 있는 공공 공간입니다.
도쿄역은 일본 전 지역은 물론, 관광 및 비즈니스 목적의 해외 방문객도 많은 곳이죠. 여행이나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즐기고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야에스 퍼블릭입니다.
야에스 퍼블릭은 푸드코트도 조금 다릅니다. 다수의 음식점이 들어섰지만 상업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가와는 다릅니다. 컨테이너를 모티브로 만든 소규모 음식점들이 일정한 규칙 없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고, 그 사이 사이로 고객들이 음식을 먹는 공간과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이 혼재돼 있습니다.
고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형태도 각양각색입니다. 혼자 온 고객, 여러 명이 함께 온 고객, 혹은 음식을 앉아서 먹는 고객, 서서 먹는 고객 등 방문객의 유형과 취향에 맞게 다양한 패턴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섬세한 연출로 인해 방문객은 마치 일본 어딘가의 작은 동네를 방문한 것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을의 한 모퉁이와 같은 느낌으로 연출한 공간,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형태의 좌석은 꼭 음식을 주문하는 고객이 아니어도 편안하게 머물다 가도록 유도합니다. 신칸센 혹은 버스의 환승으로 인해 남는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 설계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드타운 야에스가 위치한 도쿄역과 인근 니혼바시 주변에는 이미 백화점을 포함해 많은 상업시설이 경쟁 중입니다. 상업시설의 격전지라고 할 수 있는 도쿄역에서 새로운 미드타운을 차별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쓰이 부동산은 ‘일본스러움’을 겨냥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한 번은 거쳐가게 되는 도쿄역이기에 일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로 관광객들이 일부러 들르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 겁니다.
이에 미드타운 야에스 1층은 ‘재팬 럭셔리’를 키워드로 ‘요시다 포터(Yoshida Porter)’, 라이프스타일 전문점 ‘호소(HOSOO)’, 다양한 커피 제품으로 유명한 ‘하리오(Hario)’ 등 일본의 장인 정신을 대변하는 매장들로 꾸몄습니다.
야에스 재개발은 진행 중… 2027년 최고 빌딩 완공
미드타운 야에스의 개장으로 모습이 바뀐 야에스의 재개발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미쓰비시지쇼가 또 하나의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2020년 이후 ‘마루노우치 넥스트 스테이지’라는 슬로건 아래 유라쿠초 지역과 도키와바시 지역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는 마루노우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유라쿠초, 긴자, 히비야, 니혼바시, 야에스, 도키와바시 등 도쿄역 주변의 지역을 모두 연결하는 것입니다.
‘마루노우치 넥스트 스테이지’의 핵심이 되는 건물은 니혼바시 앞쪽에 진행 중인 ‘도키와바시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2개의 타워 중 하나인 도키와바시타워(常盤橋タワー)는 2021년 6월에 완공되었으며 지상 38층의 빌딩으로 오피스가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2번째 빌딩인 토치 타워 (Torch Tower)는 2027년 완공될 예정으로 높이 390m, 지상 63층으로 일본 제일의 초고층 빌딩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아자부다이 힐즈의 모리JP타워이지만 3년 뒤에는 토치 타워에게 최고의 자리를 내어주겠죠.
마천루 경쟁에 뛰어든 건 미쓰비시지쇼와 미쓰이 부동산뿐만이 아닙니다. 도쿄 타테모노가 만드는 지상 51층의 고층 빌딩이 2025년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도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있어 조금씩 달라지는 도쿄역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도쿄역은 지금 단지 거쳐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방문하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바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