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 열차칸이 등장합니다. 창문 밖으로는 유럽의 자연 풍경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덜컹덜컹’ 소음도 생생하게 들려요. 흔들리는 열차의 침실 칸처럼 보이는 이곳은 한국 패션브랜드 ‘아더에러’ 신사동 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된 피팅룸입니다.

최근 피팅룸의 반란이 심상치 않아요.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공간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어요. 심지어 옷이 아니라 피팅룸을 보려고 매장을 찾는 고객까지 생겨날 정도라고요! 대체 이곳에 뭐가 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요? 궁금한 건 못 참는 팝콘, 오늘은 피팅룸이 핫해진 이유에 대해 파헤쳐 보려고요.


코로나19가 유행시킨 #대신입어드립니다

그동안 피팅룸은 주목 받는 공간이 아니었어요. 흰 벽에 커튼, 옷걸이 몇 개 갖추고 있으면 소임을 다 한 거였죠. 흔히 옷 가게에서 가장 구석진 위치에 비좁게 만들어진 공간이 피팅룸이었어요. 그런데 최근 이런 피팅룸의 위상을 뒤흔들어 놓을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그 주역이랍니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3년 동안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향하던 발길이 ‘뚝’ 끊겨버린 거죠. 옷을 입어보려면 피팅룸 앞에 줄을 서야 하고, 또 갈아입는 동안에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오프라인 의류 매장도 그 타격을 피해 가지 못했어요.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 2년 간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대요.

온라인 플랫폼에 점점 그 자리를 내어주던 오프라인 매장들. 좁아지는 입지에 헐떡이던 이들에게 구세주 같은 한 마디가 전해 내려왔는데요.

“그래도… 옷은 입어보고 사야지!”

온라인 상세 페이지가 아무리 자세해도 절대 충족시킬 수 없는 소비자 경험, 이를 파고드는 콘텐츠가 등장했어요.

옷 가게에 가는 걸 꺼리는 다수의 사람을 대신해 몇몇 소셜 크리에이터가 직접 매장에 가 피팅룸에서 옷을 입어보고 이를 촬영해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이 옷 입는 걸 누가 볼까…’ 싶지만 놀랍게도 이런 콘텐츠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상세 페이지 속 현실감 없는 모델 핏과 전문적인 설명보단 보정 없는 날 것의 리뷰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에 호응했거든요. 비슷한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업로드 되면서 MZ 세대 사이에서 ‘피팅룸 인증 사진 남기기’가 일종의 놀이처럼 퍼졌답니다.

‘대신 입어 드립니다’, ‘신상 입어보기’ 등을 검색하면 피팅룸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어요. 유명 인플루언서 뿐 아니라 유튜브를 전문적으로 운영하지 않는 사람들의 콘텐츠도 있는데요. 그만큼 MZ 세대에게 피팅룸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건 일상적인 일이 되었거든요. 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피팅룸에서 사진을 찍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요.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퍼진 코로나19 기간 동안 매장에서 대신 옷을 입어보는 포스팅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진 찍기 좋은 피팅룸 만드는 브랜드들

트렌드를 읽은 브랜드들은 아예 사진 찍기 좋은 피팅룸 만들기에 나섰어요. 기존엔 피팅룸을 옷을 갈아 입는 기능적 공간으로만 치부했다면, 이젠 이곳에 체험 요소를 두고 소비자의 인증을 유도하는 마케팅적 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거죠. 특히 이 과정에서 피팅룸이 지닌 폐쇄성도 큰 몫을 하고 있다는데요.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얼마나 독특한 경험을 줄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조금 더 알아보면,

고객: “개성을 맘껏 뽐낼 수 있어!”. 프라이빗한 피팅룸에서 고객들은 과감한 의상에 도전하고 자유로운 포즈로 사진을 남기는 등 자신의 개성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고요.

브랜드: “내 맘대로 꾸밀 수 있어!”. 본 매장과 분리된 공간인 덕에 브랜드 역시 이곳에서 시즌이나 이슈 등을 고려한 다양한 구성을 선보일 수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어요.

아더 신사 스페이스의 우주선 내 침실 콘셉트 피팅룸 (사진출처: 아더에러)

사진만 찍고 가면, 매출에 악영향은 없을까?

여의도 IFC몰에 오픈한 <발란 커넥티드 스토어>는 피팅룸 마케팅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에요. 매장 정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이곳의 피팅룸은 문을 여는 순간 파란 타일과 갈대, 황금빛 변기가 시선을 사로잡아요. 전체 매장 콘셉트가 여행인 것을 고려해 피팅룸 역시 ‘고급 호텔의 화장실’처럼 꾸몄다는 이곳은 벌써 수많은 인증 사진을 남기며 핫플이 되었어요!

외관만큼이나 독특한 화장실 콘셉트의 발란 피팅룸 (사진출처: 발란)

그런데 방문객이 사진만 찍고 가면 매장 매출에 안 좋은 영향을 주진 않을까요? 이런 생각 하셨다면 그 걱정 넣어두세요! 발란 커넥티드 스토어는 오픈한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누적 매출이 20억 원을 넘어섰대요. 특히 최근 들어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월 매출만 10억 원에 이르기도 한다는데요. 이게 다 ‘피팅룸’ 덕분이래요!

발란 관계자는 고객이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얻어 더 많은 사람이 매장을 방문한다고 설명했어요. 또한 브랜드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힙한 분위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대요.

그렇다면 전문가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조금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스위트스팟 김현민 이사님을 모셨습니다.

Q

SNS에 ‘피팅룸’ 태그만 5만 건에 달할 정도로 요즘 피팅룸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업계에서 피팅룸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나요?

A

예전에는 피팅룸이 그저 ‘옷을 갈아입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고객이 구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이젠 신규 매장 오픈과 관련해 전체 매장 콘셉트를 정하거나 인테리어 디자인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피팅룸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고 있어요.

또한 많은 브랜드들이 트렌드에 따라 기존 매장의 피팅룸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도 수없이 고민하며 노력을 쏟고 있죠.

Q

최근 발란을 포함해서 무신사, 나이키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이색 피팅룸 오픈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요,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쌓아 올린 이들이 피팅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온라인 쇼핑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매출과 브랜드 경험 측면 모두에서 여전히 오프라인 스토어는 높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런 오프라인 스토어 중에서도 피팅룸은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있죠.

피팅룸은 고객이 처음으로 제품을 착용하고 거울을 보는 공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품 구입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공간이에요.

게다가 지금은 피팅룸이 ‘착샷 촬영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잖아요? ​고객들은 매장에서보다 피팅룸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공유하죠.

여러 스타일을 입어보고 비교샷을 포스팅하거나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쇼핑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더 나아가 이곳에서 틱톡 영상을 촬영하는 등 짧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고요.

​즉, 피팅룸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높은 광고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죠.

이런 차원에서 고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이들에게 보다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고픈 브랜드에게 피팅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어요. ​이곳에 예뻐 보이는 거울과 색감·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조명 등을 배치하고 피팅룸 자체를 촬영에 적합한 넓은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고객 경험으로 이어지죠.

또한 최근에는 테크놀로지 요소가 도입되면서 피팅룸의 쓰임 역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는데요. 이젠 피팅룸 안에서 직원에게 사이즈나 스타일 교체를 요청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옷은 바로 온라인에서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등 그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Q

고객이 피팅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A

오프라인 매장의 목적은 더 이상 매출 확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브랜드의 이미지와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경험 공간’으로서의 중요성이 더 커졌어요.

고객이 피팅룸을 포함해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브랜드를 더 다양하게 경험할수록 장기적으로 브랜드 인지도 및 호감도 확대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매출 상승으로도 이어지고요.

또한 고객들이 피팅룸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촬영하고 포스팅한다면, 브랜드 입장에선 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광고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셀레브리티보다 또래 친구나 자신이 평소 팔로우하는 ‘지인’의 착샷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Q

매장 내 공용 공간과 비교해 피팅룸이 갖는 강점이 있을까요?

A

고객들에게 피팅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은밀한 공간’으로 여겨져요.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지는 요즘, 피팅룸은 고객이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죠.

또한 브랜드에게 피팅룸은 고객과 1:1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브랜드는 이곳에서 고객이 가지고 들어온 제품들과 유사하거나 함께 매치할 수 있는 제품을 추천할 수 있고, 조명이나 액세서리 등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는 요소를 추가하면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루이비통이 호텔, 레스토랑,카페, 초콜렛 숍으로 확대하는 것처럼,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고객이 브랜드의 다양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카테고리 확장도 점차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전망합니다.


서울에서 찾은 피팅룸 맛집

노래 한 곡 부르고 가요 ‘아더 성수 스페이스’

유니크한 브랜드가 넘치는 성수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아더 성수 스페이스. 콘셉트 장인이 한 땀 한 땀 가꾼 매장 답게 피팅룸에서 풍기는 기운도 심상치 않아요. 당장이라도 드러눕고 싶게 만드는 아늑한 방 콘셉트부터 우주선, 유럽 횡단 열차 등 각기 다른 피팅룸에는 콘셉트와 어울리는 영상이나 노래가 흘러나오고 피팅룸에 맞는 향이 매칭되어 있어요. 특히 노래방 콘셉트의 피팅룸에서는 진짜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답니다.

실제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아더 성수 스페이스 피팅룸 (사진출처: 아더에러)

라이브 방송에 최적화된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

셀프 스튜디오, 대형 거울, 퍼스널 컬러, 릴스.

MZ 세대가 좋아할 키워드를 싹쓸이 한 이곳!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의 라이브 피팅룸이에요. 스튜디오 보다 더 스튜디오처럼 꾸며진 이곳은 고객이 자기 마음대로 조명의 색과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인데요. 입고 있는 옷 스타일과 자신의 퍼스널 컬러를 고려해 적절한 조명을 켤 수 있어 MZ 세대 사이에서 핫해요. 스마트 디스플레이도 설치되어 있어 실제 라이브 방송을 하기에도 유용하고요.

조명 조절 기능 등으로 라이브 방송 하기에 유리한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 피팅룸 (사진출처: 무신사)

배경과 스티커 붙인 나만의 룩북 ‘나이키 스타일 홍대’

나이키가 세계 최초로 서울 홍대에 오픈한 체험형 매장 나이키 스타일 홍대는 제품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취향대로 나이키 제품을 매칭해 자신만의 룩북을 만들 수 있어요. 스튜디오처럼 꾸며진 피팅룸 덕에 가능하죠. 피팅룸 사이에 자리 잡은 ‘콘텐츠 스튜디오’에서는 배경, 필터, 렌즈, 스티커 등을 자기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어 사진 촬영에 서툰 사람도 수준급 퀄리티의 인증 사진을 들고 갈 수 있다고 하네요.

손쉽게 사진 합성이 가능한 나이키 스타일 홍대 피팅룸 (사진출처: 나이키)

고급 호텔의 드레스룸호텔드앤유

방송인 김나영씨를 모델로 기용하며 유명해진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 앤유는 압구정에 오픈한 쇼룸 덕에 더 유명해질 거 같아요. 건물이 통째로 유럽 호텔 콘셉트로 꾸며졌는데요. 피팅룸도 콘셉트를 이어받아 고급 호텔의 드레스룸이나 엘리베이터처럼 꾸며져 있답니다. 피팅룸을 넘어 피팅 건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옷을 입어보고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이곳은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 있어서 고객들이 더 오래 머무르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호텔 드레스룸처럼 꾸며진 압구정 호텔드앤유 피팅룸 (사진출처: 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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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내용은 2023년 1월 26일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