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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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매력도 최하위였던 지방 도시 마에바시에 안경 브랜드 진스(JINS) CEO 다나카 히토시가 300년 역사의 시로이야 료칸을 매입하고,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와 협업해 호텔로 재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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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이야 호텔을 시작으로 진스 파크(JINS Park), 마에바시 갤러리아 등 ‘건축, 아트, 음식’을 축으로 한 장소들이 도심에 들어서며 외부 브랜드의 자발적 참여까지 이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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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뿐 아니라 비전(메부쿠), 재단, 창업 교육까지 소프트웨어 기반을 갖추며 10년에 걸친 도시재생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인구 이동의 방향이 급격히 재편되었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교육과 일자리를 따라 지방을 떠난 젊은 세대가 돌아오지 않는 흐름은 이미 구조적 현상이 되었고, 빈 점포의 증가와 생활 기반 축소는 지역 사회의 지속성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지역의 문화, 장소의 역사, 일상의 감각을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힘을 얻고 있다. 획일화된 대도시의 소비 환경 속에서, 특정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유한 결은 더 중요해진다. 그곳만의 서사와 뿌리는 향토성 회복을 넘어, 한 사회가 어떤 풍경과 정신을 만들어 갈지 가늠하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일본에서 특히 주목받는 사례가 있다. 한때 ‘일본 국내 매력도 최하위 도시’로 꼽히던 군마현의 중심, 마에바시. 이곳에서는 한 기업가의 장기적 비전과 도시 재생의 실험이 맞물리며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나고 있다.
‘일본 국내 매력도 최하위 도시’로 꼽히던 마에바시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약 두 시간. 내륙 평야에 자리한 마에바시는 오래전부터 누에고치와 생사의 집산지로 성장해 온 도시였다. 메이지 초 일본 최초의 관영 기계제사 공장이 세워질 만큼 산업 기반이 탄탄했고, 전후까지 지역 경제를 떠받쳤다.
그러나 인접한 타카사키에 신칸센이 개통되고 이동과 소비권이 빠르게 도쿄로 집중되면서 마에바시는 중심 기능을 잃어갔다. 외부에서는 ‘방문 동기와 매력을 찾기 어려운 도시’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이는 지역 주민들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아이웨어 브랜드 진스(JINS)의 CEO 다나카 히토시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별다른 추억이 있던 것도 아닌 고향 마에바시는 이제 끝났구나 정도의 감각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한 시대를 이끌던 산업도, 도시의 활기도 사라졌다. 마에바시는 조용히 과거형의 도시로 남았다.


가능성의 부재에서 시작된 비전
전환의 계기는 예기치 않은 자리에서 찾아왔다. 2011년 다나카는 ‘EY Entrepreneur Of The Year’ 세계대회에 일본 대표로 참석했다. 그곳에서 많은 기업가들이 성공을 사회적 기여로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 모습을 보며, 일본 기업문화와의 간극을 실감했다. ‘성공 후 무엇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 일본에는 그 길을 보여주는 롤 모델이 없었다.’ 이 자각이 결정적이었다.
마침 같은 해 3월 11일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 전후로 마에바시에는 젊은 세대와 크리에이터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구심점 역할을 할 상징은 여전히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300년 역사의 시로이야 료칸이 도쿄 자본에 넘어가 아파트로 전환된다는 소식은 다나카에게 마지막 신호처럼 다가왔다. ‘이것까지 사라지면 마에바시는 정말 끝이다’라는 마음으로 그는 매입을 결단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열 곳의 컨설턴트에게 호텔 재생 방안을 의뢰했지만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호텔은 마을과 함께 공존하는 것인데, 마에바시라는 마을의 인상이 전혀 없다.”

그 순간부터 다나카는 스스로 마을의 비전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20대부터 건축과 예술에 관심을 가져왔고, JINS에서 건축가들과 협업해 온 경험을 고향에 돌려주기로 했다.
여기서 그는 오랫동안 주목해 온 젊은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에게 연락을 취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호텔을, 마에바시의 중심에 다시 세우고 싶습니다.” 이것이 쇠퇴의 길목에 있던 마에바시에 새로운 축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되었다.
건축이 도시에 되돌려준 감각
후지모토의 합류를 계기로 시로이야 호텔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6년에 걸친 리노베이션과 신축 과정 속에서, 오래된 여관은 마에바시라는 도시의 잠재성을 다시 질문하는 실험의 장이 되었다.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 본 호텔은 평범한 객실들로 차 있는 4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에 불과했지만, 후지모토는 이 틀을 과감히 비틀었다. 내부 바닥을 걷어내고 기존 구조를 노출시키며 건물 중심에 큰 아트리움을 만들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거실’을 마을 안에 심자는 제안이었다.

비록 객실 수가 줄어드는 비효율적 선택이었지만, 다나카는 주저하지 않았다. 새 공간이 지역의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가 되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아트리움은 수직으로 깊이를 내고, 노출된 구조와 식물, 가구가 어우러지며 공간에 새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그 안을 관통하는 계단은 거리를 걷듯 흐르는 동선을 만들어내며 호텔의 핵심 풍경이 됐다.

이 과정에서 기존 건물은 최대한 살리고, 그 옆으로 식물이 덮인 언덕 형태의 신축동을 더해 도시와 자연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입체적 단면을 만들어냈다. 25개의 객실과 내부 공간에는 레안드로 에를리히, 스기모토 히로시 등 세계적 아티스트의 작업이 배치되어 체류 경험의 결을 다층적으로 확장했다. 메인 다이닝은 군마의 식자재로 풀어낸 이노베이티브 프렌치가 자리 잡았고, 일본 지방 도시로는 첫 출점인 블루보틀 커피 역시 이 흐름에 합류했다.

시로이야 호텔은 리노베이션과 신축, 예술과 일상이 포개지며 도시를 다시 숨 쉬게 하는 개방된 플랫폼이 되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에바시 중심가는 이 호텔을 통해 바람이 드나드는 상태가 되었고, 그렇게 도시가 잃어버렸던 감각이 조용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건축에서 문화로, 도시로 스며드는 변화
시로이야 호텔의 재생은 마에바시가 스스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도시의 중심을 가득 메우던 빈 부지들은 ‘건축, 아트, 음식’이라는 명확한 방향 아래 하나씩 새로운 장소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주체들이 이 도시의 가능성에 반응하며 연쇄적으로 움직였다.
개발보다 생활의 기반을 새로 짜는 움직임이 도심 전반으로 번지는 시점에, JINS는 창업지 마에바시의 오래된 로드사이드 점포를 단순히 교체하는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안경을 파는 일로 마에바시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공유가치창출(CSV) 철학, 일본 상업 전통의 윤리적 감각과 맞닿은 질문이었다. 새 플래그십 스토어는 이를 공간으로 증명하는 장이 되었다.
나가야마 유코가 설계한 진스 파크(JINS Park)는 안경점을 넘어 지역에 열린 공원 같은 장소로 설계되었다. 잔디 마당과 개방형 내부, 지역 이벤트가 어우러지며 방문의 성격을 ‘소비’에서 ‘경험’으로 바꿨다.

이어 조성된 마에바시 갤러리아는 히라타 아키히사가 설계한 프로젝트로 ‘나무 아래에서 활동이 자라나는 건축’이라는 개념을 풀어냈다. 작은 상자들을 겹겹이 쌓아 지역 특유의 소규모 건축 결을 현대적으로 잇는다. 저층부의 갤러리와 레스토랑, 상부의 주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앞서 형성된 건축, 아트, 음식의 결을 도심 속 생활 단위로 확장했다.


이 흐름은 외부 브랜드의 자발적 참여까지 이끌어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건너온 핸드 크래프트 파스타점 그라싸(GRASSA), 카이센동으로 유명한 츠지항, 마에바시 본점으로 시작해 도쿄 신주쿠 이세탄에도 입점한 화과자점 나카마타 등, 지역과 감각을 공유하는 브랜드들이 잇달아 합류했다. 이들은 단순한 테넌트가 아니라, 새롭게 조직되는 도시의 흐름을 읽고 스스로 참여한 파트너들이었다. 각 브랜드는 건축가와 협업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며, 마에바시의 문화적 두께를 함께 쌓고 있다.

시로이야 호텔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주변 곳곳으로 스며들며, 여러 도전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있다. 마에바시는 오랜 시간 쌓아온 고유한 맥락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삶을 어떤 감각으로 구성할지 탐색하는 열린 무대로 변화 중이다.
비전이 제도로, 제도가 생태계로
마에바시를 움직이는 기반에는 건축이나 시설을 넘어선 소프트웨어 층위가 있다. 그 근본에는 ‘메부쿠(めぶく)’라는 비전이 있다. 메부쿠란 ‘식물이 새싹을 내거나 비유적으로 사물이 새로 생기기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도시의 매력을 과장된 언어로 규정하기보다, 시민 각자가 작은 씨앗을 심고 키워가는 행동에 가깝다.
마에바시 마치나카 에이전시는 이 정신을 실천하는 조직이다. 프로젝트 수익을 임원 보상이 아닌 직원과 지역에 돌려주는 구조로, ‘지역에 대한 책임’을 운영 원칙으로 삼았다. 한때 시민 스스로도 내세울 것이 없다고 느꼈던 도시에서, 이 구조는 자부심을 되살리는 기반이 되었다.

이 정신을 제도화한 축이 다나카 히토시 일반재단법인이다. 다나카는 개인 자금을 사용하지만, 지역에 투자하는 만큼 자금 운용과 의사 결정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며 운영한다. 재단에는 지역 출신 전문가와 전직 공무원 등이 참여해, 외부 이해관계자와 지역 사회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오래 지속되는 공익재단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신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운영을 마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다. 개인 투자와 지역 기여를 동시에 실현하는 모델이다.

그 연장선에서 시작된 군마 혁신 어워드(Gunma Innovation Award, 이하 GIA)와 군마 이노베이션 스쿨(Gunma Innovation School, 이하 GIS)은 마에바시 재생의 또 다른 추진 엔진이 되었다. 첫 회인 2013년에는 단 3건에 불과했던 GIA 응모는 2022년, 2023년엔 500건을 넘었다. 그동안 47개 도도부현 중 30~40위권에 머물며 정체 중이던 군마현의 개업률은 2022년 21위까지 상승, 코로나 이전에 비해 2023년 성장률은 전국 8위를 기록했다.
비즈니스 스쿨이 없던 도시에 문을 연 GIS는 와세다대학 교수진이 매달 찾아와 젊은이들이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교육 생태계를 조성한 곳이다. 지금까지 약 35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다수는 창업과 지역 프로젝트로 활동을 이어가며 또 다른 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구조는 마에바시가 단지 새 건물을 갖춘 도시에 머무르지 않게 한다. 하드웨어의 개별적 갱신을 넘어, 그것을 지속적으로 작동시키는 비전-제도-교육의 삼중 구조다. 도시 재생의 보이지 않는 기반이 마을 전반에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마을 만들기는 100년을 내다보는 일, 천천히 자라나는 마에바시
모두가 등 돌린 도시에 한 기업가가 발을 디뎠다. 아무도 가능성을 이야기하지 않던 마을에 비전의 초석을 놓고, 그것이 건축과 예술, 브랜드, 교육으로 퍼져 도시의 흐름을 되살린 지난 10년은 일본 지역재생에서도 드문 사례다.
다나카의 목표는 단순한 활력 회복이 아니다. 시민이 스스로 거리를 돌보고, 자부심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마을이 가능한가. 이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의 움직임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다. 진정한 전환은 시민 참여가 도시의 일상이 될 때 완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기적 관점이 다나카의 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마을을 돌보며 100년을 내다본 경험은, JINS 경영에도 더 넓은 시야와 조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역을 함께 일구는 과정 속에서 기업과 도시가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변화는 시작의 일부일 뿐. 다음 글에서는 민간과 행정의 협력, 건축을 넘어 거리와 도시 계획으로 확장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따라가 볼 예정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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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5년 12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