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이민자 커뮤니티가 밀집된 런던 남서부 브릭스톤은, 치안 문제로 악명이 높았던 동네에서 이국적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힙한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 공공 건축물, 커뮤니티 주도의 프로그램, 지역화폐 등을 통해 공간 사용자와 지역이 모두 만족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지요.

  • 젠트리피케이션의 압력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는 브릭스톤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봅니다.

런던은 다인종과 다문화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여기서 ‘국제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영국인이 외국인에게 관대하다는 뜻이 아니라, 런던이라는 도시 자체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의미입니다. 생각보다 어눌한 영어를 구사해도, 런던에서는 눈에 띄게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영국 섬 밖, 혹은 런던 밖에서 이주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10년 넘게 이곳에서 살면서, 런던은 어느새 저에게는 하나의 ‘세계 축소판’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인이 모여 사는 동네, 포르투갈 가정이 밀집한 거리, 중동계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 중국 커뮤니티, 그리고 물론 한인타운까지—이 도시에는 서로 다른 문화가 얽히고설켜,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런던의 인종적 경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뚜렷하고 날카로웠습니다. 직장 초년 시절 비교적 월세가 저렴한 동네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캐리비안과 나이지리아 커뮤니티가 밀집된 동네에 산 적이 있습니다.

이 동네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활기찬 전통시장, 브릭스톤(Brixton) 마켓이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큰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 과일과 생선을 사고, 가끔 외식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익숙지 않은 문화와 언어, 생김새 속에서 처음엔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마켓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오히려 따뜻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날의 날씨를 이야기하며, 같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죠.

시장 끝자락에 다다르면 램버스 구청 맞은편, 작은 비석과 광장이 있고 그 뒤편에 제가 무척 좋아하는 건축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흑인문화 기록 보관소(Black Cultural Archives). 어느 날 그곳에서 본 전시에는 캐리비안에서 배를 타고 영국으로 넘어온 사람들의 흔적, 일상, 차별의 기록이 담담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오면 어딘가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방인의 삶이자, 결국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브릭스톤은 바로 그런 동네입니다. 1948년부터 캐리비안 아프리칸 이민자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이곳은, 한때는 빈곤과 인종차별, 폭동의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건축과 지역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태어난 곳입니다.

그림을 파는 브릭스톤 골목길 풍경 (London – Pop Brixton, Fred Romero, CC BY 2.0)

이주민들의 도착, 브릭스톤의 시작

브릭스톤은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1900년대 초 템스 강 남북을 잇는 다리가 건설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산층의 유입으로 주거 지역이 확장되었고, 런던 남부의 쇼핑 중심지로 떠오르며 상업적 활기를 띠었습니다. 그 시기에 설립된 모올리즈(Morleys) 백화점은 130년이 지난 지금도 브릭스톤의 주요 쇼핑거리인 하이스트리트에서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Morleys 백화점, 출처 : Londonist, ‘Inside the Brixton department store with 130 years of history’ 2016.07.13

1948년에는 서인도 지역에서 온 캐리비안계 아프리칸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됩니다. 영국 왕립 그리니치 박물관(RMG)에 따르면, 6월 22일 틸버리 항에 도착한 윈드러시 호는 영국 사회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이 장면은 당시 보도 전문 제작사였던 파테뉴스(Pathé News, 1910–1970 활동)에 의해 촬영되고 기록되었습니다.

“1948년 6월 22일, 윈드러시 호가 틸버리 항에 도착했다.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도 있었지만, 그들은 희망을 품고 영국으로 향했다. 대영제국의 시민으로서 ‘모국’에 발을 디딘 이들의 출발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캐리비안 이민자들이 ‘영국 시민’으로서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섰던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며, 정부는 이들을 노동력으로 환영하는 동시에, 급격한 문화적 변화를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Windrush Generation, 출처 : The Telegraph, ‘Windrush Generation : They thought we should be planting bananas’, 2015.06.22

이후 클랍함과 브릭스톤 지역에 정착한 캐리비안계 아프리칸 이민자들은 인구 구조를 크게 바꾸었고, 실업률 상승과 주거 부족, 편의시설의 낙후화 같은 사회적 문제를 동반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결국 1981년의 브릭스톤 폭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경찰의 과잉 단속과 차별적 대응은 젊은 흑인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이는 이후에도 반복된 갈등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995년 또다시 폭동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흑인 공동체를 겨냥한 폭탄테러도 벌어졌습니다.

폭동으로 낙인 찍힌 브릭스톤, 반복된 갈등

2015년 기준, 브릭스톤 지역의 캐리비안계 흑인 비율은 런던 평균의 두 배를 웃돌았습니다. 아프리카계 흑인 비중도 높은 편이었고, 반면 아시아계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2016년 <가디언>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의 영국 출신 거주자는 전체 인구의 60% 미만으로 감소했으며, 다인종 공동체의 비중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Ethnic Breakdown of Brixton (출처: The Guardian, How has Brixton really changed? The data behind the story’, 2016.01.14.)

이러한 인구 구성의 변화는 부동산 시장과 지역 치안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 10년간 브릭스톤의 주택 매매 가격은 약 76% 상승해, 쇼디치(62%), 루이샴(67%) 등 런던 내 주요 개발 지역을 웃도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개발과 투자 유입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범죄와 갱단 문제도 함께 부각되었습니다. ‘마약의 수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언론에 의해 덧씌워지기도 했습니다.

1981년 4월, 이 지역은 런던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종 갈등의 현장이 됩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당시 런던 경찰은 ’스왐프 81 작전(Operation Swamp 81)’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거리 단속을 벌였습니다. 기사에서는 이렇게 보도합니다.

“1981년 4월을 앞두고 런던 경찰은 ‘스왐프 81 작전(Operation Swamp 81)’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단속을 전개했다. 약 1,000여 명이 길거리에서 정지당했고, 이 가운데 100명이 체포됐다. 4월 10일, 봄기운이 완연했던 첫 따뜻한 날. 한 경찰관이 한 남성을 제지하려 했고, 이를 지켜보던 군중이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브릭스톤 폭동 (출처: BBC Thatcher ‘considered arming police’ during 1981 riots, 2011.12.30)

이 보도는 당시 과잉 단속으로 인해 시민들 사이에 쌓여 있던 불신과 긴장이 폭발하게 된 과정을 보여줍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경찰의 차별적 대응에 대한 분노가 오랫동안 누적되어 있었고, 이는 결국 폭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질서 문제를 넘어, 인종, 계층, 경제적 불균형이 맞물린 사회적 갈등의 집약체였습니다.

브릭스톤은 이후에도 1995년 폭동과, 그에 대한 반발로 벌어진 폭탄 테러 등 불안정한 시간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단절이 아닌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동네가 가진 사회적 균열을 드러낸 동시에,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과 커뮤니티가 만든 변화

2000년대 이후, 램버스 구청은 브릭스톤의 낙인을 지우고 새로운 지역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재생 프로젝트를 본격화했습니다. 브릭스톤 마켓과 연계한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 흑인문화 기록 보관소, 소규모 갤러리가 잇따라 생겼고,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이벤트와 문화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램버스 청사 맞은편에 위치한 흑인문화 기록보관소는 브릭스톤의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1824년 지어진 조지아식 건물을 2010년 헤리티지 로터리 펀드를 통해 약 500만 파운드 예산을 투입해 보수한 후, 2014년 정식 개관했습니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프링글 리차드 샤렛(Pringle Richards Sharratt)은 보존과 현대성을 조화하면서 전시실, 학습 공간, 카페 등으로 구성해 지역 주민은 물론 방문객에게도 열린 문화 공간으로 완성했습니다. 이후 2015년 뉴 런던 아키텍처 어워드에서 ‘올해의 건물’로 선정되고, 공공 프로그램과 학교 교육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흑인문화기록보관소 (출처: Time Out, ‘Brixton’s Black cultural Archives crowned London’s Best New Building’, 2015.07.19)
영국 흑인 건축가 데이비드 아쟈에가 디자인한 램버스 지방정부청사 앞 파빌리온 (출처; 박종민)

2000년대 이후, 램버스 구청은 브릭스톤의 낙인을 지우고 새로운 지역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재생 프로젝트를 본격화했습니다. 브릭스톤 마켓과 연계한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 흑인문화 기록 보관소, 소규모 갤러리가 잇따라 생겼고,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이벤트와 문화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램버스 청사 맞은편에 위치한 흑인문화 기록보관소는 브릭스톤의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1824년 지어진 조지아식 건물을 2010년 헤리티지 로터리 펀드를 통해 약 500만 파운드 예산을 투입해 보수한 후, 2014년 정식 개관했습니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프링글 리차드 샤렛(Pringle Richards Sharratt)은 보존과 현대성을 조화하면서 전시실, 학습 공간, 카페 등으로 구성해 지역 주민은 물론 방문객에게도 열린 문화 공간으로 완성했습니다. 이후 2015년 뉴 런던 아키텍처 어워드에서 ‘올해의 건물’로 선정되고, 공공 프로그램과 학교 교육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임시 컨테이너 기반의 복합 문화 공간 팝 브릭스톤. (출처: Popbrixton.org ‘Pop Brixton is an original project that supports local jobs’)

팝 브릭스톤(Pop Brixton)도 재생사업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2014년, 램버스 구청의 공공 부지 활용 공모를 통해 건축가 칼 터너(Carl Turner)와 도시 디자인 그룹이 이끄는 프로젝트가 선정되었고, 비어 있던 공터에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임시 구조물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애초에는 ‘1~2년간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실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브릭스톤을 대표하는 활기찬 공간이자 새로운 지역 커뮤니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소규모 회사와 상점들이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음식과 음악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에 모입니다. 이곳에 들어선 가게 중 다수는 브릭스톤에서 오래 살아온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눈에 띄는 간판도, 화려한 외관도 아닌 재활용 컨테이너로 구성된 팝 브릭스톤은 지역 재생이란 단어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입주 상점 중 다수는 이 지역에 뿌리를 두고 살아온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가게들로, 지 재생이 외부 자본 중심의 개발이 아닌 지역 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팝 브릭스톤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곳에는 식품, 유통, 공예 상점들이 모여 있으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출처; 박종민)

브릭스톤의 또 다른 상징은 지역화폐인 브릭스톤 파운드(Brixton Pound)입니다. 이 화폐는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고 공동체 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로, 지역 내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역화폐를 운영하는 상인회는 공동체 이익회사(CIC)의 형태로 운영되며, 자발적인 기부와 공공 펀딩을 통해 상업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지역화폐 브릭스톤 파운드. 브릭스톤 출신의 세계적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10 단위 지폐에 그려져 있다. (출처 : BBC News, ‘Cash machine for the Brixton pound opens in South London’ 2016.04.12)

정체성을 위협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압박

브릭스톤은 지역 재생의 성과와 함께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고급 주거단지의 등장과 함께 임대료는 상승했고, 기존 주민들은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지역의 활력과 문화 다양성, 공동체 중심의 상징이었던 브릭스톤만의 정체성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2014년 “런던의 펑키한 동네 브릭스톤이 젠트리피케이션화 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에 맞서, 브릭스톤의 주민들은 공동체 활동을 더욱 활발히 벌이고 있습니다. 지역 정부도 임대료 상한제나 공공 지원을 통해 주민 보호에 나서고 있으며, 커뮤니티 주도의 문화 행사와 지역 내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다인종 사회 향하는 한국…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

2025년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내 외국인 주민 수는 약 265만 명에 달하며, 전체 인구의 약 5.17%를 차지합니다. 런던의 작은 동네 브릭스톤에서 벌어진 이 변화의 흐름(이주, 갈등, 재생, 그리고 공존)은, 어쩌면 대한민국 우리 사회의 어딘가에서도 이미 시작되고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한 지역이 낯선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존 커뮤니티가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지. 런던의 작은 동네 브릭스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대응이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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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5년 7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