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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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전 등장했던 플레이스메이킹이 지금, 전 세계 도시 개발의 필수 키워드로 재부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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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공간 설계를 넘어,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이 개념이 자산 가치를 높이고 도시를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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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김정빈 교수가 안내하는 플레이스메이킹의 세계, 그 흥미로운 여정을 지금 시작합니다.
플레이스메이킹, 전 세계 도시 개발업계가 주목하는 화두
영국 왕립 도시계획가협회는 2017년 권위 있는 골드메달을 영국 건축가 테리 패럴(Terry Farrell)에게 수여하며, 그의 “플레이스메이킹에 대한 뛰어난 영향”을 선정 이유로 언급했다. 패럴에게 플레이스메이킹이란 새로운 개발 속에서 도시의 기존 맥락을 재현하고 여기에 역사적 서사를 더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영국 도시 건조 환경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이와 같은 사례는 런던의 도시설계 및 건축 회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많은 회사들이 자신들의 플레이스메이킹 전문성을 강조하며 브랜딩에 나서고 있다. 런던의 건축설계사무소 PLP 아키텍처(PLP Architecture)는 작년 도쿄에서 미쓰이부동산이 시작한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 ‘도쿄 크로스 파크 비전’에 마스터 디자이너이자 플레이스메이킹 전략가로 참여한 사례를 대표적인 성과로 내세운다.
뉴욕 세계금융센터로 알려진 브룩필드 플레이스(Brookfield Place) 재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브룩필드 프로퍼티(Brookfield Properties)는 플레이스메이킹이 프로젝트의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었다고 강조했다. 브룩필드 부사장 켈리 헤인스(Callie Haines)는 2023년 더 플레이스 이코노미(The Place Economy)와의 인터뷰에서 14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오피스 공간을 당초 예상했던 3~4년이 아닌 단 18개월 만에 임대할 수 있었으며, 이는 자산 가치를 크게 높이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만약 우리가 플레이스메이킹 이니셔티브를 실행하지 않았다면, 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은 지금보다 40% 정도 가치가 낮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비전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이 장소는 사실상 완전히 실패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침몰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켈리 헤인스, 브룩필드 프로퍼티 부사장
최근 10년 간 영국의 주요 연구 문헌과 언론에서 ‘플레이스메이킹’이 언급된 빈도를 살펴보면, 이 개념의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산하 연구실 베터 시티 랩(Better City Lab)은 영어권 부동산 전문 언론과 학술지에서 지난 10년간 ‘플레이스메이킹’ 언급 빈도를 분석했다.
예를 들어,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에서는 2014년 단 2건에 불과했던 관련 기사가 2023년에는 37건으로 증가했다. 영국 에스테이츠 가제트(Estates Gazette)에서도 2014년 10건에 머물렀던 플레이스메이킹 관련 기사가 2023년에는 60건 이상으로 늘어나며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학술지에서도 같은 기간 동안 이 주제를 다룬 연구가 4배 이상 증가하며 학계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플레이스메이킹이 학술적, 실무적 영역 모두에서 점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공공 섹터와 도시 건축 관련 기관들에서도 플레이스메이킹과 관련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선 샌프란시스코는 창의적인 거버넌스 혁신을 선도하며, 2016년 의회의 만장일치로 플레이스메이킹 조례를 제정했다. 이는 미국 최초의 플레이스메이킹 관련 조례로, 정부, 민간, 시민 모두에게 도시 조성 관행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30년간 런던의 개발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아젠다를 수립하기 위해 뉴 런던 아키텍처(New London Architecture, NLA)는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토론, 심의를 진행해왔다. 특히 지속 가능성과 번영을 위한 도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플레이스메이킹 요소를 핵심으로 다뤄왔다.
2020년에는 NLA가 런던에서 플레이스메이킹 관점의 ‘최우수 플레이스메이킹 프로젝트(Top Placemaking Project)’를 선정했으며, 그래너리 스퀘어 파빌리온(Granary Square Pavilion)이 1위를 차지했다. 이 상은 런던시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한편, 싱가포르 도시개발청(URA)도 다양한 플레이스메이킹 기관 및 기업과 협력하며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스메이커 로렌조 페드릴로(Lorenzo Pedrillo)는 런던센터(London Centre)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 동안 플레이스메이킹이 싱가포르의 공공 및 사적 공간을 활성화하는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도시 조성과 변화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또한 싱가포르 도시개발청은 지속적으로 플레이스메이킹 사례와 도시 연구를 출판하며 관련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2021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도 도시 개발의 플레이스메이킹 흐름을 인지하고, 플레이스메이킹과 장소 중심 도시 개발 전략(PLACE-Led Development)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한 포괄적인 가이드를 편찬했다. 이 가이드는 플레이스메이킹을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 경제적·사회적으로 유익한 도시를 창출하는 전략적 투자로 제시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최근 여러 도시의 민간 및 공공 부문 도시 공간 조성 사업에서 플레이스메이킹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 여러 도시 설계자들이 번역한 <도시설계 – 장소 만들기의 여섯 차원>이라는 번역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이후 2011년에는 플레이스메이킹 개념을 정립한 미국 공공 공간 프로젝트(Project for Public Spaces, PPS)의 신시아 니키틴(Cynthia Nikitin) 부회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대학교 등에서 강연회를 열며 이 개념을 확산시켰다.
당시 플레이스메이킹은 도시 설계와 건축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었고, 도시 전반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시들에서 플레이스메이킹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 개념이 다양한 분야에서 다시금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를 통해 플레이스메이킹이 과거보다 더 광범위한 관심을 받으며 도시 개발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플레이스메이킹이 도대체 뭐길래?
그렇다면 도대체 이 플레이스메이킹(Placemaking)이 무엇이길래 주목받고 있을까?
런던 킹스크로스(King’s Cross) 개발로 플레이스메이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 네덜란드 OMA의 파트너 레니어 데 흐라프(Reinier de Graaf)는 영국의 저명한 건축 잡지에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플레이스메이킹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I have a confession to make: I have no idea what placemaking is)」라는 글을 기고했다(관련 기사).
이 글은 해당 잡지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Top 10 기사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는 플레이스메이킹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만큼 이 주제가 화두로 떠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고 작은 기관과 기업들이 각자 플레이스메이킹을 정의하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플레이스메이킹의 기원과 정의에 있어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PS(Project for Public Spaces)
플레이스메이킹이라는 개념을 검색하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이름은 PPS(Project for Public Spaces)이다. PPS는 1975년 도시계획가 프레드 켄트(Fred Kent)가 설립한 단체로, 사람들이 공공 공간을 중심으로 모이고 교류하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PPS는 플레이스메이킹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이를 단순한 물리적 공간 설계를 넘어서는 접근 방식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공공 공간이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며, 지역 주민, 기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공 공간은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 ULI(Urban Land Institute)
플레이스메이킹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정의는 ULI(Urban Land Institute)에서 제시된다. ULI는 1936년에 설립된 글로벌 연구 및 교육 기관으로, 지속 가능하고 번영하는 커뮤니티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ULI는 플레이스메이킹의 기원을 1922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Kansas City)의 컨트리 클럽 플라자(Country Club Plaza) 개발 사례에서 찾는다. ULI 창립 멤버인 J.C. 니콜스(J.C. Nichols)가 스페인 세비야(Sevilla)의 건축 양식을 모방해 디자인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매력적인 공간을 조성했던 사례다. 이는 최초의 교외 쇼핑센터로 기록되며, 플레이스메이킹 개념의 초기 적용 사례로 꼽힌다.
ULI는 지속적으로 플레이스메이킹에 관한 연구와 보고서를 출간해왔다. 특히, 2020년에 발간된 ‘크리에이티브 플레이스메이킹(Creative Placemaking)’ 보고서에서 플레이스메이킹을 다양한 환경 요소를 매력적으로 결합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과정으로 정의하며, 부동산 개발의 본질적인 역할임을 강조했다. 이 과정을 통해 조성된 공간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자주 방문하며,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는다고 설명한다.
이 보고서를 주도한 후아니타 하디(Juanita Hardy)는 2010년 미국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을 위해 작성된 앤 마크센(Anne Markusen)과 앤 가드와 니코데무스(Ann Gadwa Nicodemus)의 논문을 자주 인용하며, 창의적 플레이스메이킹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창의적 플레이스메이킹은 공공 및 사적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건물과 거리 풍경을 재생하며, 지역 비즈니스의 생존 가능성과 공공 안전을 개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축하하고, 영감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플레이스메이킹에 대한 정의를 두 갈래로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이 멋진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해 그 의미가 명확히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는 위에 언급한 OMA의 파트너 레니어 데 흐라프의 고백처럼, 무엇인지 알 듯하면서도 확실히 이해되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두 갈래의 정의를 살펴보며 그들이 말하는 화려한 수사를 제거하고 본질만 남긴다면, 플레이스메이킹의 핵심은 ‘사람을 모으고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흥미롭게도 플레이스메이킹의 정의를 탐구하다 보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이 개념을 각자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는 PPS(공공 비영리기관 및 활동가 네트워크)처럼 풀뿌리 운동을 기반으로 공공성과 거리 이벤트, 작은 도시의 변화를 강조하는 접근법이다. 다른 하나는 대규모 개발 및 부동산업계 중심의 ULI와 같은 단체에서도 오랜 고민과 경험을 통해 정의된 접근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놀라운 점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단체들이 같은 단어를 공유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정의하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정의의 결이 다를지라도 결국 한 단어, ‘플레이스메이킹’으로 표현된다는 점은 이 개념의 독특한 매력을 드러낸다.
이와 관련해, 위에 언급한 레니에 데 흐라프(Reinier de Graaf)의 글 「사실 저는 플레이스메이킹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에서 나오는 의문점에 대한 실마리를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고백 속에서 자신이 참여했던 도시 프로젝트 경험을 이야기하며, 심의와 토론을 거치며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플레이스메이킹은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목소리로도, 비판하는 목소리로도 활용될 수 있는 용어였다. 얼마나 놀라운가! 어쩌면 이것이 바로 플레이스메이킹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명확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 간의 합의를 가능하게 하고, 결국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될 수 있었음을 설명하며 오히려 그 용어의 모호함이 불러오는 혼란이 합의을 향한 마법이 되었음을 설명한 것이다.
플레이스메이킹은 요즘 하나의 마법의 단어처럼 보인다. 그 이유를 추적해보면 앞서 언급한 두 갈래의 정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세계의 요구가 하나의 단어로 통합되어 표현된다는 것, 이를 통해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표가 돈이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함이든, 더 나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공통된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 과정에서 ‘플레이스메이킹’이라는 단어가 공감과 실행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 플레이스메이킹 시리즈
① 세계 주요 도시의 화두가 된 플레이스메이킹
② 플레이스메이킹을 완성하는 요소 3가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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