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일본 안경 브랜드 진스(JINS) CEO 다나카 히토시는 건축보다 ‘길’을 먼저 정비하며 마에바시 재생의 두 번째 장을 열었습니다. 실크 산업 시절의 벽돌로 바바카와 거리를 재포장하고, 2,300명의 기부자 이름을 새겨 시민의 자부심을 거리 위에 심었습니다.

  • 민간이 먼저 리스크를 감당하고 행정이 뒷받침하는 새로운 협업 구조가 자리 잡았습니다. 기업 기부 네트워크 ‘태양의 모임’이 약 3억 엔을 모아 공공 도로를 정비한 사례는 일본에서도 유례가 드뭅니다.

  • 마에바시역에서 현청까지 1.5km를 잇는 ‘크리에이티브 시티’ 구상이 국제공모를 거쳐 진행 중이며, 2026년 국제 예술제까지 도시 스케일의 실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에바시에서 지난 10년간 일어난 전환은 한 기업가의 신념에서 출발했다.

“지방의 재생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 다나카 히토시 JINS CEO (이하 생략)

안경 브랜드 진스(JINS)를 일본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킨 CEO 다나카 히토시는 대도시 중심의 소비 구조만으로는 일본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생산과 산업을 떠받쳐온 지방에 다시 잠재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믿었다. 인구 감소와 경제 축소로 지방이 약화될수록, 일본 전체의 지속 가능성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식은 기업 경영을 넘어 ‘마을이 어떻게 유지되고 재생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약 두 시간 거리, 스러져가던 마에바시 구도심에 건축, 예술, 시민의 작은 행동이 켜지기 시작한 것도 여기서부터였다. 일상의 실천이 거리를 바꾸고, 그 축적이 도시를 깨우는 연쇄적 움직임. 다나카가 확신한 것은 이런 회복의 메커니즘이었다.

지난 1편에서 마에바시에 위치한 시로이야 호텔을 중심으로 건축 및 공간 단위의 마을 재생을 다뤘다. 2편에서는 마을 단위의 시도를 넘어 도시적 스케일로 확장된 협업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나카가 말하는 ‘지방이 눈부신 미래와 100년 후의 삶’이라는 질문과 만나게 될 것이다.

길에서 시작된 회복의 감각

다나카의 시야는 처음부터 크고 거대한 개발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환경, ‘길’이었다. 그는 여러 도시, 특히 유럽 구시가지 자갈길의 질감, 자연스러운 보행 리듬, 중세의 흔적을 품은 골목 감각 등이 도시 분위기와 생활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했다. 마에바시에 그런 구시가지는 없는 대신 오래된 상점가가 남아 있었다. 그는 이곳을 새로운 뿌리로 삼기로 했다.

과거의 바바카와 거리. 확연한 보차분리와 좁아 보이는 거리 (출처=송영대)

“길이 좋지 않다면 그 위에 어떤 아름다운 건축을 지어도 엉망이네요. 아름다움은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주민들의 미의식이 만들어냅니다.”

다나카는 거리 표면부터 손보기로 결정했다. 과거 마에바시가 실크 산업으로 번영하던 시절, 창고 건물에 쓰이던 벽돌을 가져와 바바카와 거리를 재포장하고, 2,300명의 기부자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넣었다. 이는 지역만의 오래된 기억을 길 위에 부착하는 시도였다. 시민 스스로가 공공의 지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길은, 책임감과 자부심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었다.

정비된 바바카와 거리. 더 연속적이고 넓어 보이는 현재 모습 (출처=maebashidc.jp)
마에바시 재생을 응원하는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 (출처=teikin.co.jp)

200m의 거리 정비는 이후 국토교통성의 ‘선진적 마을 만들기’ 최고상인 국토교통대신상을 포함한 수많은 디자인 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다나카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처음의 아주 소박한 행동, 길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쌓였던 이곳을 그저 깨끗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돈하자, 사람들의 태도도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건축 하나하나가 도시를 만든다기보다, 건축이 놓일 바탕이 정돈되어야만 비로소 공동체의 미의식이 형성된다는 통찰이었다.

이 감각은 중심 시가지를 넘어 도시 전체로 번져갔다. 마에바시 시내에서 군마현의 상징인 아카기산까지 이어지는 이동 환경을 재편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일상 공간과 자연을 하나의 경험축으로 연결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된 것이다. 길은 더 이상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사람과 장소가 관계를 회복하는 매개로 재해석된 셈이다. 마에바시의 재생은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통해 그다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열린 플랫폼으로 재탄생한 거리

단차가 사라진 바바카와 거리는 열린 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났다. 보도와 차도의 경계가 흐려지자 사람들은 자동차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머물기 시작했고, 이동 중심이던 거리는 만남과 머무름의 장소로 회복되었다.

다양한 교류와 이벤트가 태어나는 새로운 바바카와 거리 (출처=mebuku.city)
시로이야 호텔 언덕길부터 연속되는 벽돌. 건축과 거리가 하나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출처=mebuku.city)

이 과정에서 건축과 디자인 역시 길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재스퍼 모리슨이 설계한 공공 화장실은 거리의 분위기와 조화롭게 놓이며 기능 그 이상의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재스퍼 모리슨 디자인의 공공 화장실 (출처=gqjapan.jp)
시로이야 호텔 옆에 신축된 JINS 위성 오피스. Suppose Design Office 설계 (출처=bunganet.tokyo)

이어서 시로이야 호텔 옆에 들어선 진스(JINS)의 마에바시 위성 오피스는 호텔의 연장선으로 자리했다. 여기에 미나 페르호넨이 디자인한 레지던스 룸과 브랜드의 마에바시점 오비(OVI)가 문을 열면서, 이 일대는 지역성과 감수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결을 갖추게 되었다.

위성 오피스에 있는 미나 페르호넨 레지던스 룸 (출처=shiroiya.com)
위성 오피스 1층에 입주한 미나 페르호넨 마에바시점 OVI (출처=mina-perhonen.jp)

바바카와 거리는 하나의 선형 공간이 여러 주체를 이어주는 공동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건축, 지역 기업, 디자이너, 주민, 그리고 자연까지, 모든 요소가 이 길을 축으로 서로를 잇고 확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보도 정비처럼 보였던 일이, 지금은 마을 전체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자리 잡았고, 마에바시의 재생은 지금도 길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민간이 먼저 움직이고 행정이 뒷받침하는 시스템

바바카와 거리 정비는 지금 보면 자연스러운 진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행정의 관행과 구조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도로라는 공공영역은 하천, 공원, 건설, 정비 등 여러 부서가 얽히며 작은 결정 하나도 복잡한 조율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될 수 있었던 것은, 다나카가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주민 스스로의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원칙을 명확하게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 재생을 행정이 주도하고, 민간이 보조하는 기존 구도에서 떼어내어, 민간이 앞서고 관이 뒤에서 지원하는 구조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이를 설득한 방식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다나카가 시로이야 호텔을 직접 매입해 재생한 사례는 민간이 스스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다는 실질적 증거였다. 이 경험이 쌓이면서 행정 내부의 경계도 서서히 풀렸고, 민간 주체가 도시의 중심에 서는 새로운 질서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뢰를 쌓아야 하는 대상은 행정만이 아니었다. 민간이 도시를 움직이는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지역과 리스크를 공유하는 수평적인 구조가 필요했다. 2016년 그는 기업들이 순이익의 1% 혹은 100만 엔을 기부하는 ‘태양의 모임’을 결성해, 보상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장기적 도시 투자 구조를 만들었다. 이 모임은 바바카와 거리 재생에 약 3억 엔을 기부하며, 민간 자금으로 공공 도로를 정비한 거의 유례없는 사례가 탄생했다. 보조금에 기대지 않고 민간이 먼저 변화를 감당하는 방식은 행정의 관성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민간에 대한 확신과 신뢰 기반이 더욱 단단해졌다.

이 흐름은 2019년 행정의 제도적 기반으로 이어졌다. 도시 재생을 총괄하는 마에바시 디자인 커미션(MDC)이 설립되고, 관민 제휴 도시개발 지침인 ‘마에바시 어반 디자인’이 책정되면서 민간과 행정이 하나의 전략을 공유하는 체계가 갖추어졌다.

이후 태양의 모임은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60여 명 규모의 네트워크로 확장되었고, 상점가의 커뮤니티 디자인부터 신규 점포 개업을 위한 매칭 펀드까지 다층적인 도시 지원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에바시 디자인 커미션(MDC) (출처=maebashidc.jp)

마에바시 크리에이티브 시티

마에바시는 민간이 먼저 실천하고 행정의 신뢰와 제도적 기반을 얻으며 이제는 도시 스케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전환점이 ‘2025 마에바시 크리에이티브 시티’ 구상이다.

군마현, 마에바시시, 국토교통성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는 일본에서도 드문 수준의 민관 협업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마에바시역부터 시로이야 호텔을 지나, 군마현청을 잇는 1.5km의 6차선 도로를 자동화 버스와 보행이 공존하는 새로운 공공축으로 재구성하는 계획이다.

국제공모전을 열어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갈 건축가를 선정했고, 지금까지 민간이 중심이 되어 이뤄낸 활성화를 행정이 강력히 뒷받침해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적혀 있었다. 다나카가 감동을 느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간의 크고 작은 실천들이 도시계획의 핵심 논리로 승격되는 순간, 도시가 앞으로 나아갈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1등으로 선정된 제안. 능선이 연결되는 마을 만들기. Mount Fuji Architects Studio 설계 (출처=creative-city.pref.gunma.jp)
왼쪽 하단의 마에바시 역부터 오른쪽 상단의 군마현청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공공축 (출처=creative-city.pref.gunma.jp)

공공축이 그리는 마에바시의 미래 풍경은 도쿄의 밀도 높은 활기와는 다른 결을 가진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모으고, 생활이 서서히 배어들며, 도시는 외부로 확장되는 완만한 힘을 얻게 된다. 도로이면서 공원이고, 이동 동선이면서 머무는 무대이며, 학교 및 도서관과 연결되는 학습의 축이 된다. 다나카가 ‘100년 후 도시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도시가 단편적 효율이 아닌 세대 단위의 시간 축에서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거리로 펼쳐지는 순간 (출처=creative-city.pref.gunma.jp)

국제공모 이후의 과정 역시 관계를 다져나가는 시간이다. 건축가는 지역과 워크숍을 이어가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계획에 반영한다. 이는 형식적 의견수렴이 아니라 도시를 지탱할 실질적 결속을 만드는 행위다. 마에바시 마을 재생은 완성된 형태를 겨냥하기보다, 서로가 연결되고 쌓여가는 리듬을 꾸준히 조율해 나가는 진행형에 가깝다.

사람이 도시를 되살리는 순간들

마에바시의 변화는 제도적 개혁과 물리적 정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도시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이며,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서 현실을 단단히 만든다.

상징적인 사례가 마에바시 북 페스티벌이다. 한때 활기를 잃었던 상점가는 이 기간만 되면 가장 생생한 교류의 무대로 바뀐다. ‘책으로 건강해지자’는 명확한 컨셉 아래, 매매가 아닌 교환 방식이 선택된 것도 사람 사이의 직접적 만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규칙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만여 권의 책은 무료로 나누어 주지만, 책을 받으려면 반드시 출전자나 스태프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이 짧은 대화가 상점가 전체를 느슨하면서도 따뜻한 공동체로 전환시키고, 다나카는 이 장면에서 ‘콘텐츠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확인했다. 이 경험은 앞으로의 마을 만들기에 행정뿐 아니라 민간의 자발적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확신을 굳힌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인 마에바시 북 페스티벌 (출처=prtimes.jp)

이러한 움직임은 2026년에 열릴 마에바시 국제 예술제로 이어진다. 예술, 건축, 음악, 영화, 음식 등이 뒤섞이는 이 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마에바시가 걸어온 재생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응축하는 장치다. 특히 ‘고향 납세’를 통해 시민이 예술제와 재생 전반을 직접 후원할 수 있도록 설계한 구조는, 시스템이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이 공간의 감도를 바꾸는 마에바시 고유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 다나카는 이 예술제를 ‘민관이 함께 도시를 고조시키는 기회’로 보면서도, 그가 말하는 ‘국제’는 외향적 브랜드가 아니라 내부 감수성을 바깥으로 여는 태도라고 강조한다.

2026 마에바시 국제 예술제 (출처=maebashi-biennale.com)

“현지 경험과 기억이 글로벌한 질문과 만나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분단과 갈등이 더욱 깊어지는 시대 속에서도 사람들의 상상력이 그 경계를 넘어 흐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련의 흐름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핵심이 사람들이 이어지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시간이 켜켜이 더해질 때, 도시는 재생을 넘어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된다.

태도가 마을을 만든다

오랫동안 사람이 뜸하던 도시, 마에바시를 확실하게 움직이게 한 것은 건축과 시스템을 넘어, 거리 위에서 반복된 작은 만남과 그 경험의 축적이었다. 물리적 변화가 새로운 관계를 열고, 그 관계가 도시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선순환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마에바시는 증명해 냈다.

다나카가 말하는 원동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출발점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진짜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진심에서 나온 행동은 또 다른 행동을 부르고, 그 연쇄가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마에바시 재생의 시작점이 된 시로이야 호텔에서,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와 진스(JINS) CEO 다나카 히토시 (출처=tjapan.jp)

“전 세계 사람들이 ‘Go to 마에바시’라고 동경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어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교육, 문화예술, 음식, 자연,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다섯 가지 축을 중심에 두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선택엔 위험이 따르지만 어중간한 태도로는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네요. 진심으로 마주하는 곳에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리기 때문이죠.”

마에바시의 실험은 한 지방도시가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사례이자, 앞으로 우리가 어떤 새로운 생활의 장면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가능하게 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었다. 그 태도가 지속되는 한 이곳은 계속해서 생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마에바시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장소이며, 우리에게도 지역의 미래를 상상해보도록 과제를 남긴다.


본 콘텐츠는 외부 필진이 작성한 글로 주관적 견해를 포함할 수 있으며, 당사의 공식적인 의견 표명이나 견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본 콘텐츠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및 투자 권유, 종목 추천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본 콘텐츠는 2025년 12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