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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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알메르는 자연과 문화시설 모두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중도시로, 언덕형 데크 구조로 차량과 보행을 분리해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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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메르는 6개의 소구역이 각자의 중심을 가진 다핵도시 구조 덕분에 어디서든 녹지와 호수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도심형부터 전원형까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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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만~50만 규모의 중도시는 잘 계획되면 대도시의 편리함과 소도시의 여유를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거주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도시에 산다고 상상해보라. 집에서 동쪽으로 10분만 걸으면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서쪽으로 10분만 걸으면 맛집과 도서관이 나온다. 자연과 문화를 보행 거리 안에 품은 도시. 머리가 복잡하면 숲길을 걸으며 마음을 정돈하고,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다. 어디에 이런 도시가 있을까?
이곳은 네덜란드의 도시, 알메르(Almere).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기차로 40분을 가면 알메르 중앙역에 도착한다. 역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10분 정도 걸었는데 아름다운 호수가 나타났다.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도시 중심부로 돌아오니 도서관이 눈에 띄었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잡지 코너였다. 신문과 잡지가 잘 갖춰져 있어 주변에 사는 노년층이 모여 앉아 뉴스를 살피고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서 구경했는데 손 안의 커피가 아직 따뜻했다. 알메르는 커피 한 잔이 식기도 전에 도서관과 호수를 모두 다녀올 수 있는 도시다.

생활과 사색이 하나로 이어지는 걷기 좋은 도시
대도시에 살면 자연이 멀다. 강변과 공원을 걸어서 10분 거리에 두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소도시에 살면 문화가 부족하다. 도서관, 전시, 즐길 거리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그럼 중(中)도시는 어떨까? 서울처럼 너무 붐비지도 않고, 시골처럼 너무 심심하지도 않은 도시. 적당한 인구와 규모를 가지면서도 보행거리 내에 있을 건 다 있는 도시 말이다.
알메르가 그런 중도시였다. 알메르는 도시 전체가 ‘주상 복합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1층에 슈퍼마켓, 식당, 옷가게가 있고, 2층부터는 주거가 이어진다. 조금 전 갔던 도서관 1층에는 신발 가게가 있어서 신발과 책을 고르는 일을 한 건물에서 할 수 있다. 장을 보러 가는 길과 호숫가로 향하는 길, 생활과 사색이 하나의 산책으로 이어진다.
이 산책은 자동차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호수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 도로를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도시가 데크(deck)라 불리는 거대한 인공 대지 위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공 대지 위로 다니고 자동차는 하부로 지나가게 했다.
이런 설계법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 설계에도 이미 적용되고 있는데, 알메르의 특이한 구조는 ‘언덕형 데크’다. 일반적인 아파트 데크는 단지 가장자리에서 주변 도로와 5~6미터의 단차가 생긴다. 도로에서 단지로 진입할 때 보행자들은 높은 담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알메르는 가장자리가 지면과 접하고 언덕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르듯 지면이 올라와 있다. 보행자들은 데크 경계부에서 계단 없이 자연스럽게 보행 지역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알메르 시내에서는 쓰레기 수거 차량조차 마주치지 않는데, 언덕 하부의 지하 파이프를 통해 쓰레기가 운반된다.

알메르가 10분만 걸어도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이유는 도시의 구조 덕분이다. 알메르는 작은 규모의 마을 여러 개를 연결해서 만들어졌다. 각 마을 중심에는 상업 시설이 자리하고, 구역 사이에는 녹지와 호수가 펼쳐진다. 자연과 문화, 두 가지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
포도송이를 떠올리면 이해가 더 쉽다. 포도는 작은 알맹이들이 각자의 씨앗을 가진 구조다. 작은 마을이 각자의 중심가를 가지고 모여있는 구조. 이런 도시를 다핵도시(多核都市)라 하는데, 알메르는 현재 대략 6개의 포도알이 한 송이를 이룬 다핵도시다.
여섯 개의 알맹이는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수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상업시설이 가까운 도시형 생활을 원한다면 스타드(Stad)에, 텃밭을 가꾸며 여유로운 일상을 원한다면 바위튼(Buiten)에 살면 된다. 암스테르담의 높은 집 값과 번잡함에 지쳐 알메르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여러분 앞에 도심형부터 농촌형까지 6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는 것이다.

대도시와 소도시의 중간, 중도시의 잠재력
알메르는 우리나라의 중도시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대도시와 소도시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논의 밖에 있었던 도시 말이다. 성남, 광명, 구리시처럼 대도시 주거 부족의 해결책으로 계획되었거나, 순천, 안동, 전주처럼 과거 중심지였으나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지방 도시가 그 예다.
대도시의 목표는 명확하다. 과도한 인구 집중을 막되,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는 세계와 경쟁하도록 흥미롭게 개발되어야 한다. 소도시가 풀어야 할 문제도 명확하다. 인구 감소로 인한 소멸에 대응하고 보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살기 좋은 중도시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인구 10만~50만의 중도시야말로 잘 계획되면 자연과 문화를 동시에 품은 매력 도시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느긋함이 맞닿는 곳. 중도시는 자연과 문화를 인간의 속도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도시다. 최근 시니어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와 자연이 섞인 ‘도시골’에 살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 중도시가 잘 계획되면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에게 그런 생각이 든 도시는 파리, 로마, 런던, 도쿄 같은 대도시가 아니었다. 대도시들은 관광객의 입장으로 충분했다. 오히려 눈길이 간 것은 대도시 근교에 조용히 자리 잡고 삶을 받아내는 매력 도시들이었다.
이번 시리즈 연재를 통해 살고 싶은 중도시를 건축가의 관점에서 소개하려 한다. 한국의 중도시가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단서가 되길 바란다.

도시 개발자를 위한 교훈: 주거 단지 상업 시설의 공실을 줄이는 법
알메르는 도시 개발자들이 관심을 두어야 할 개발 기법들이 숨어있다. 위에서 살펴본 다핵도시와 언덕형 데크 외에 도시 개발자가 알아두면 좋을 알메르의 건물을 소개한다.
알메르 한가운데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건물. 2006년에 완공된 데 시타델(De Citadel)이다. 주거와 상업이 결합된 복합 건물로,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르잠파르크(Christian de Portzamparc)가 설계한 도시 전체의 상징 건축이다. 자세히 보면 도시의 직각 체계 속에서 약간 각도가 틀어져 있다. 덕분에 건물 주변에 부정형 모양의 외부 광장이 여러 개 생겼다. 직각 도로에서는 사람들이 흐르지만, 각도가 틀어진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머문다. 1층 상업시설 앞 곳곳에 벤치와 테이블이 놓이고 사람들이 앉아 시간을 보낸다.
‘각도 틀기’는 여러 동으로 구성된 주상복합 건물 개발에서 참고할 만한 기법이다. 중심 건물의 각도를 조금만 틀면 주변에 유럽 도시의 광장 같은 부정형 공간이 생긴다. 최근 골칫거리인 아파트 단지 내 상가 공실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머물고 싶은 주변 공간을 통해 방문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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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5년 11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
커버 이미지: Daria Nepriak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