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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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15분 안에 주거, 일, 여가가 가능한 ‘15분도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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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실제로 도입된 이 개념은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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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학교 박태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가 전하는 글로벌 도시 전략의 흐름, 도시공간에 투자하는 이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도시공간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고밀도 도시를 예찬하고 추종했던 관성에서 벗어나,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도시가치를 재발견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심보다는 생활거주지를 바탕으로 하는 생활권의 재발견이다. 이른바 ‘슬세권’, 즉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산책하고 맛집을 찾는 새로운 도시형 라이프스타일은 자동차 없이 동네에서 소비와 여가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상권지형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생활권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한층 가속화되었다. 팬데믹 당시 외출과 이동이 제한되면서 많은 도시민이 자택 주변에서의 소비, 여가, 운동 등 일상 활동을 해결하게 되었고, 이는 생활권 단위의 도시공간 활용 방식이 재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팬데믹이 종식된 지금에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고 있다.
개인 마이크로 모빌리티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더욱 성장했다. 서울시 공공 자전거 ‘따릉이’의 누적 가입자는 약 300만 명(2024년 기준)을 넘어섰다. 이는 서울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자동차나 대중교통 중심이었던 기존 이동수단과 더불어 개인 모빌리티가 도시 생활의 실질적인 인프라로 자리잡은 것이다. 개인 모빌리티의 확산은 일상 이동의 자유도를 높이며, 그에 따라 생활권 중심 공간의 접근성과 활용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기후변화, 도시가 직면한 구조적 리스크
도시는 팬데믹 이후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지만, 그보다 더 장기적인 리스크가 우리 곁에 도달해 있다. 기후위기다. 과거의 도시는 재난 이후에도 일정한 회복력을 보였으나, 지금의 기후변화는 도시 자체의 면역력과 회복력을 초과하는 구조적 위협으로 작동한다. 이는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도시의 운영방식, 정책, 경제 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도전이다.
2024년 서울의 여름은 기후재난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벚꽃 개화와 눈보라가 동시에 발생하는 이상기후도 빈번해졌다. 딜로이트-소트랩 글로벌 도시 서베이(2022.12)에 따르면, 기후위기는 이제 전문가 집단을 넘어 도시 시민들이 정부에 직접적으로 대응을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도시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새로운 도시공간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프랑스의 15분 도시정책 실험
프랑스 파리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 전략으로 ‘15분 도시(La Ville Du Quart d’Heure)’ 개념을 도입했다. 안느 이달고(Anne Hidalgo) 시장이 추진한 이 정책은 탄소 저감과 건강 도시 구현을 목표로, 도보와 자전거 중심의 근접 생활권을 기반으로 한다. 학교, 상점, 병원, 문화시설, 직장 등 생활 필수시설을 보행과 자전거, 대중교통만으로 15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파리시는 도시 구조를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정책 실현을 위해 이달고 시장은 약 3억5,000만 유로(약 5,000억 원)를 투자했다. 이는 서울시 강남구청의 1년 예산(약 5,000억 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단일 인프라가 아니라 도시 전역의 보행 동선을 전면 재구성하는 데 드는 이 비용은,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도시 운영 방식 자체를 전환하려는 파리시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달고 시장은 보행자 전용 도로를 대폭 확충하고, 2024년까지 시내 전역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대하며, 도심 내 주차장 6만 개를 감축하는 혁신적인 정책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는 여의도 전체에 소형차를 가득 주차할 수 있는 면적에 해당하는 규모로, 차량 공간을 걷어낸 자리에 시민의 보행과 활동을 위한 공간을 다시 배치한 셈이다. 그 결과, 차선을 줄이고 자전거 이용 공간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근접성과 다양한 목적을 충족하는 마을 조성’이 추진되었다. 학교는 낮과 밤을 구분해 생활권의 중심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학교 주변에는 어린이 전용 보행도로가 조성되었다. 차량이 점유하던 광장은 공연장으로 전환되어 시민들이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미니메스 지구(Minimes Barracks)는 이미 15분 도시 개념이 활성화된 동네다. 이곳에서는 기존 주차장 부지를 공원으로 전환하고, 주변 부지를 주상복합 아파트로 개발하여 주거와 공공기능을 통합한 도시 재구성이 이뤄졌다. 또한 파리시는 2024 파리올림픽의 준비 과정에서도 15분 도시 개념을 적용하여, 신규 개발 대신 기존 건물과 인프라를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탄소저감을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실험은 단지 하나의 도시정책을 넘어, 전 세계 도시들로 확산되는 도시 공간 구조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15분 도시’라는 개념은 프랑스 파리 제1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교수가 주창한 것으로, 도시 설계에 시간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시도다. 단순히 공간의 배치가 아니라, 거주, 업무, 쇼핑, 교육, 여가 등의 주요 활동을 모두 도보 또는 자전거로 해결할 수 있는 거리 안에서 통합하려는 접근이다. 이는 기존의 인프라 중심 공간 구조에서 벗어나, 로컬 단위의 연결성과 공유성을 기반으로 회복력 있는 도시 리듬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보행은 어린이 기준 400m, 성인 기준 1.6km, 자전거 기준 4.8km가 각각 15분 생활권에 해당하며, 이러한 거리 단위가 곧 생활권의 최소 범위로 작동한다. 이 권역 단위가 유기적으로 중첩되고 연결되면서 도시 전체의 크기와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15분 도시는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탄소저감, 사회적 연대, 공공 인프라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도시혁신의 기준을 제공하며, 다양한 도시정책에 접목될 수 있는 실천적 프레임워크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공간 구조는 부동산 시장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중심업무지구(CBD)에 집중되던 전통적인 오피스 수요는 점차 다핵화되고 있으며, 특히 생활권 기반의 자족적 거점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상업시설, 근린형 공유오피스, 생활형 인프라 등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자산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는 흐름에 따라, 부동산 업계에서는 공공교통 접근성과 도보 생활권의 커버리지를 기준으로 입지를 재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 내 분산된 소형 거점 투자 전략에 대해 이해를 요구한다.

공간 단위에서의 실천적 접근
한국 도시에서는 이러한 15분 도시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핵심은 도시공간의 작동 단위를 보다 세분화하여, 필지·지구·도시·기술의 4개 축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이다. 이들 각각의 레벨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간적 해석과 실천 전략이 요구된다.
첫째, 단위 건축 및 필지 차원에서는 자전거 접근이 용이한 진입 동선, 커뮤니티와 연계된 외부 공간, 유연한 활용이 가능한 주차 및 공유 공간 등, 생활권과의 통합성을 고려한 건축적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업무용 자산은 자전거 출퇴근자 대상 편의시설(샤워실, 락커룸 등) 확보가 운용 측면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둘째, 지구 및 단지 차원에서는 보행 중심의 동선 설계와 건축선 후퇴, 대지 내 공지 확보, 용적률 조정 등 도시계획 수단이 입체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생활 기반 시설이 근거리 내 자족 가능하도록 설계되고, 지구단위계획이나 정비계획 등을 통해 공공성과 수익성이 균형 있게 조율되어야 한다.

셋째, 도시 및 광역 차원에서는 퍼스널 모빌리티(PM)와 대중교통의 연계를 전제로 한 통합 교통 인프라 설계가 필요하다. 중심지를 벗어난 지역이 기능 중심지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교통 접근성과 커넥티비티가 자산가치 판단 기준으로 작용해야 한다.
넷째, 스마트 기술과의 융합은 도시 운영의 실효성을 좌우한다. IoT 기반 설비, 자전거 공유 서비스, 공간 분석 데이터 등이 물리적 공간 설계와 결합되어야 하며, 이는 변화 대응 속도와 사용자 중심 운영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도시 설계는 생존 전략이다
15분 도시는 파리시의 실험적 정책이자, 세계 주요 도시들이 실천 가능한 미래 전략으로 주목하고 있는 공간모델이다. 단순한 도시계획 개념을 넘어, 기후위기·공공보건·사회적 연결성 등 복합적인 도시문제를 구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 기능한다. 한국에서는 부산이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제주, 광주, 청주 등이 15분 도시 생활권을 잇달아 준비하고 있다.
이제 도시는 물리적 인프라만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회복력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의 구조와 운영 방식이 사람 중심, 생활권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도시의 생존 가능성과 직결된다. 생활권 단위의 도시 설계는 지역의 자산가치와 공공성과도 밀접하게 연동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 자산운용업계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향후 지역 단위의 공간 수요와 생활권 중심의 자산 전략이 부각될수록, 도시공간을 이해하는 깊이가 곧 투자 기획력과 리스크 관리 능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도시 설계의 변화 흐름을 읽고, 공간 사용자와 지역 커뮤니티의 행동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자산가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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