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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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센터부터 센터필드까지 40여 년간 지속된 초대형 복합개발 프로젝트들은 강남을 서울 최대 업무 중심지이자 글로벌 기업들이 선택하는 프리미엄 오피스 시장으로 완성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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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개통과 1984년 테헤란로 도시설계가 강남을 단순 주거지에서 금융·업무 도심으로 전환시켰고, 격자형 대로와 역세권 중심의 대규모 필지 구조가 현재 강남의 기본 골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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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센터부터 센터필드까지 40여 년간 지속된 초대형 복합개발 프로젝트들은 강남을 서울 최대 업무 중심지이자 글로벌 기업들이 선택하는 프리미엄 오피스 시장으로 완성시켰습니다.
강남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요? 강남의 범위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먼저 행정구역으로서의 강남구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남을 이렇게 정하면 도심뿐 아니라 강남구 남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녹지를 포함하게 됩니다. 대모산, 구룡산 같은 산도요. 아파트 시장에서 불리는 강남은 또 다릅니다. 현시점 신축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비싼 동네는 서초구 반포동에 있거든요. 강남구와 서초구를 묶어 강남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요. 확장판 개념으로 강남3구라는 표현도 부동산 시장에서 자주 쓰입니다. 강남구, 서초구에 송파구까지 합친 경계죠. 누군가에게는 강남역 주변이 강남일 수도 있고, 인문사회학에서 다루는 강남은 어쩌면 지역이 아닐 수도 있고요. 이쯤 되면 강남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걸까요?
도시계획에서는 어떨까요? 서울시는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비롯한 여러 도시계획을 통해 3도심 중 하나인 강남을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남 도심은 동서방향으로는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서초역부터 종합운동장역까지, 남북방향으로는 양재역부터 신사역 정도 되는 축을 영동대로까지 확장한 지역으로 볼 수 있어요. 동으로 치면 삼성동, 청담동, 대치동, 논현동, 역삼동, 서초동, 양재동에 걸쳐 있는 넓은 영역이죠.

굳이 도심으로서의 강남을 살펴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심 지역에 우선 적용되는 정책 때문이죠. 이를 테면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도심은 도심으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하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복합개발을 유도하도록 천명하고 있습니다. 교통 측면에서도 도심으로 통근하거나 통학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요. 따라서 강남 도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영동대로 위 삼성역부터 봉은사역에 이르는 구간에 복합환승센터와 함께 5개 노선이 지나가도록 계획한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지하철 중에서도 강남을 지나는 노선이 부동산 시장에서 프리미엄 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강남 도심의 영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요.
실제로 서울의 3도심(강남, 사대문, 여의도·영등포) 중에서 가장 많은 종사자수가 속한 곳은 강남입니다. 주간인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에도 서초동, 역삼동, 논현동, 삼성동과 같은 강남 도심의 한복판에 있는 곳들이 가장 생활인구가 많습니다. 이는 강남 도심이 생활이동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임을 뜻합니다.

남서울의 탄생: 강북 분산의 꿈
그런데 강남은 언제부터 이렇게 중심이었을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 ‘남서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강남 일대를 일컫는 이곳은 이미 과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북 도심의 인구와 기능을 분산할 지역으로 언급돼요. 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만원’, ‘인구집중억제’와 같은 단어가 종종 보이죠.

경기도 광주군과 과천군의 일부였던 일대가 서울이 된 것도 이즈음입니다. 1969년 12월 25일 준공된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다리, 제3한강교. 바로 ‘한남대교’의 건설은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의 출발점이자 지금도 강남 도심과 사대문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다리죠. 참고로 한강대교를 제1한강교라고 볼 수 있고요, 제2한강교는 현재의 양화대교입니다. 제3한강교는 한강에 세 번째 놓인 다리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의 건설은 당시로서도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이었습니다. 동시에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이는 비정형 또는 무질서한 형태로 형성된 필지를 정리하고 기반시설 계획을 세워 격자형으로 또는 지형과 용도에 맞게 시가지를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토지 소유주는 사업에 드는 비용만큼의 면적을 빼고 땅을 돌려받지만, 대신 필지가 정형화되고 기반시설이 확보됨에 따라 토지 활용도나 가치가 상승하니 이득입니다. 건물이나 집을 짓기에도 쉽고요. 공공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조성된 토지 일부는 남겨두었다가 매각하며 여러 비용을 충당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도시를 개발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계획 수단의 하나로 볼 수 있겠죠.
영동1지구, 영동2지구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는 강남 개발의 시대였습니다. 강남 일대에서 추진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은 기존까지 서울시가 다른 지역에서 정돈된 주거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행한 것과 달리, 처음부터 강북 도심의 인구와 기능을 분산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하진 않았어요. 공무원아파트나 시영아파트를 우선 공급하며 인구유입을 추진했지만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갖춰지지 않아 금세 강북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명문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정책입니다. 이미 도서관으로 너무 익숙한 북촌의 정독도서관은 경기고등학교, 안국역 부근의 현대사옥은 휘문고등학교였고요. 서울고등학교는 원래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 경희궁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파트와 지하철이 만든 영동
학교와 함께 고속버스터미널과 법원·검찰청 이전도 실시되었습니다. 물론 계획 발표와 함께 단번에 이전한 건 아닙니다. 주로 1970년대에 이전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 자리를 옮긴 건 1980년대였으니까요.
무엇보다도 강남으로의 이동을 가속화한 것은 집중적인 아파트 건설이었습니다. ‘아파트지구’의 등장인데요. 이름처럼 오직 아파트만 지을 수 있는 구획을 설정하기 시작합니다. 압구정, 반포, 청담, 도곡 등 현재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남아있는 곳들인데요. 여전히 목적은 강북 인구의 분산이었습니다. 강남 최남단의 개포동 일대에 이르기까지 아파트 건설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서울 전체의 과밀을 막을 순 없었지만 적어도 강북의 기능 분산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내기 시작한 1977년, 서울시는 서울의 중심 기능을 3개 핵으로 분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주거지 위주로 시작한 강남 개발의 축을 중심지로 상향, 확대하겠다는 것이죠. 기존의 강북 도심은 국가의 중심으로, 여의도·영등포는 산업의 중심으로 강남은 금융업무 기능 분산이라는 방향성을 정했습니다. 이러한 3핵 도시의 논리로 추진된 지하철 2호선 개통은 주거 외 기능이 강남에 집중적으로 도입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테헤란로 도시설계: 도심 강남의 설계도
2호선이 관통하는 강남의 대로 삼릉로는 1977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의 자매결연을 기념하며 ‘테헤란로’로 명칭을 바꾸게 됩니다.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생겼고요. 2호선과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무역센터가 계획되고 서울 곳곳으로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강남은 점점 강북과 대등한 도심으로 성장합니다. 처음에는 강북을 연결하는 남북방향 도로의 통행이 많았지만 점점 동서방향의 테헤란로를 통한 이동도 증가하기 시작했고요.
1984년도에 세워진 <테헤란로 도시설계>를 살펴보면 지금 강남 도심의 계획 요소가 그대로 나타나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도시설계 도면입니다. 크게 세 곳의 교차로가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이어집니다. 강남역 사거리, 역삼역 사거리, 센터필드 교차로인데 유달리 큰 필지로 계획된 곳들이 있습니다. 바로 역삼역과 센터필드 주변이죠.


테헤란로 도시설계는 주거 위주로 시작된 개발이 중심지 위계로 올라가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테헤란로 일대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시작이 됩니다. 테헤란로에 서면 느끼게 되는 고층 건물들의 질서 정연함과 넓은 차도와 보도, 역세권마다 자리 잡은 대규모 빌딩들까지. 지금의 지구단위계획과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건물의 규모와 외관, 주차, 진입로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좀 더 넓게는 업무/상업 위주의 토지이용 체계와 교통 체계를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위의 계획도에 언급된 역 주변 필지는 일명 특수개발구역, 현재의 특별계획구역으로 불립니다. 이 필지들은 각종 규제를 지침 수준으로만 제안하여, 보다 유연한 도시계획을 통해 창의적 개발이 이뤄지도록 하였습니다.
강남 도심을 완성한 주요 오피스 및 복합개발 프로젝트
당시 강남에 들어선 대표적인 건물들을 살펴보면, 강남의 역사가 그대로 보입니다. 주요 오피스 및 프로젝트들을 살펴볼게요.
무역센터
먼저 강남의 동쪽에서 개발을 이끌었던 한국종합무역센터입니다.
이미 먼저 들어선 전시장과 입체적으로 연결되는 55층의 건물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인터컨티넨탈 호텔, 공항터미널과 함께 하나의 단지 형태로 지어진, 복합개발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아셈 회의를 기점으로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아셈타워가 세워지며 2차 개발이 이어졌고, 2010년대에 들어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증축과 코엑스 리모델링, 파르나스타워로 다시 개발이 이어졌습니다.

강남파이낸스센터
이름의 변천사만큼이나 여러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역삼역의 랜드마크, 강남파이낸스센터도 있습니다.
역삼동 737 부지는 1986년 당시 현대산업개발에 매각된 이후 수차례 개발계획이 수립되었지만 추진이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995년 그룹의 사옥으로 사용하기 위해 ‘I TOWER’라는 이름을 갖고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면적으로 설계되어 공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IMF 위기와 현대그룹의 분할로 현대산업개발은 공사만 하고 결국 소유권을 2001년 론스타에 매각하였습니다. 타워 이름은 ‘스타타워’로 바뀌었죠. 장기보유보다는 매각을 통한 차익 실현을 염두에 둔 이들은 다시 싱가포르투자청에 건물을 매각합니다. 이름도 또 바뀌었습니다. 이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매입한 ‘서울파이낸스센터(SFC)’에 이어 ‘강남파이낸스센터(GFC)’로요.
소유권과 명칭은 계속 바뀌었지만 건물의 위상과 입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한 층을 한 기업의 사옥으로 쓰기에 넉넉한 바닥 면적, 지하철역과 직접 연결되는 접근성, 저층부에 자리잡은 리테일까지. 강남에서 오피스를 찾는다면 여전히 이곳은 우선순위가 높은 후보지 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꾸준한 리노베이션과 관리, LEED와 같은 친환경 건축물 인증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 테넌트에게도 잘 알려지게 되죠. 최근 도쿄 시부야 일대가 재개발에 의해 오피스 타운으로 거듭난 사례가 있었죠. 그중 하나인 시부야 스트림에는 구글 재팬이 자리하며 화제가 되었는데요. 구글 코리아 본사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강남파이낸스센터입니다. 한 도시에서 프리미엄 오피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기업들의 선택이 이곳의 위상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성타운
강남 오피스의 완성은 이 두 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강남 도심의 양 끝인 강남역과 삼성역에 위치한 삼성타운과, 이어서 설명할 현대자동차 GBC입니다.

앞서 보신 테헤란로 도시설계 계획도를 기억하시나요? 테헤란로 역세권 주변의 필지는 대규모로 계획된 반면, 그 외 필지나 대로 이면부의 필지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형 건물 전체를 필요로 하는 대기업 본사나 금융기관 본점은 막상 강남에 자리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연면적 기준으로 몇만 평 단위의 오피스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LG그룹이 오랫동안 사옥으로 사용해 온 여의도 엘지트윈타워의 경우 연면적이 4만 7천 평 정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본사로 사용 중인 양재동 사옥은 연면적이 5만 1천 평입니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건물 대부분은 연면적 1만 평 이하인 경우가 많아 입지는 좋지만 대기업이 본사로 사용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았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그룹 계열사들이 장기간 보유하고 있던 강남역 일대 부지에 사옥을 신축하며 강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가 본사로 사용했는데요. 일명 삼성타운으로 불리는 3개 타워의 연면적은 12만 평 정도로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였습니다. (한때 삼성 내부 경영방침에 따라 건물이 매각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모두 삼성의 계열사 소유로 돌아왔습니다.)
현대자동차 GBC와 강남대로 사옥
현대자동차 그룹도 강남권 요지에 오피스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 매입한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GBC(Global Business Complex)로 개발한다는 방침으로 랜드마크 건축물을 추진 중이거든요. 이 프로젝트는 전면의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와 함께 삼성동 일대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돼요.
GBC만으로는 당장 증가하는 오피스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는지 현대자동차는 일명 ‘강남대로 사옥’을 매입하였습니다. 타이거 318타워에서 스케일타워로, 다시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사옥이 된 이 자산은 보기 드물게 대로변과 이면부의 필지를 통합하여 1,000평의 대지를 만들었고, 용적률 1,000%를 적용해 연면적 1만 5천 평의 오피스를 탄생시켰습니다.
강남파이낸스센터나 삼성타운보다는 작은 면적이지만 강남 핵심 입지에 이 정도 오피스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거든요. 이러한 자산을 놓치지 않고 사옥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결국 자산 전부를 매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도 강남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가격으로요. 입지와 컨디션, 현재 사옥으로 사용 중인 상황 등을 고려하면 당시 투자는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센터필드
마지막 사례로 센터필드입니다.
삼성타운과 현대자동차 사옥의 경우, 그룹사를 위한 개별 사옥인 까닭에 내부가 공개될 일도 적습니다. 출입도 자유롭지 않고요. 저층부에 일반 방문객을 위한 시설이 있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복합 용도로 계획된 오피스에 비하면 외부인 접근이 상대적으로 적죠.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부지에 개발된 센터필드는 복합 용도 성격의 오피스입니다. 연면적 약 7만 2천 평. 각각 지상 36층과 35층인 두 개 오피스 타워는 교차로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을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면에서 살짝 비켜나 서 있습니다.
지상부는 공원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대규모 녹지공간을 계획하고 모두에게 개방하면서 그린 스페이스가 부족한 강남 도심에 새로운 휴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언폴드에서도 조명한 적이 있는 토라노몬힐스와 아자부다이힐스는 모두 부지 안에 대규모 녹지공간을 갖고 있어 오피스 근무자나 방문객은 물론 지나가는 시민들 역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며 도시의 활력을 주었죠. 센터필드 역시 저층부를 개방하면서 오피스뿐 아니라 이 지역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2층까지 4개 층에 걸쳐 ‘더 샵스 앳 센터필드’라는 이름의 리테일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도 합니다. 오피스 근무자 및 방문객 모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식음시설과 편의점, 약국, 골프 아카데미, 와인숍, 이발소, 플라워숍, 안경점, 스파, 피부과에 이르는 다채로운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입주사 직원/방문객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지만 저층부 리테일이 건물 전체의 분위기와 자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감도 높은 브랜드와 업종을 유지해가고 있는 걸로 보여요.
원래 이 부지에 있었던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은 테헤란로 중심에 자리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관했고 2016년 문을 닫았습니다. 국제 이벤트와 글로벌 관광객 유치는 물론, 입지를 활용해 테헤란로 기업들의 미팅과 출장자 숙소로 기능하며 업무 중심지로서의 강남 위상을 뒷받침했고요. 개관할 즈음의 광고를 보면 홍보 문구 중 ‘비즈니스맨을 위한 최고의 호텔’이란 표현이 눈에 띕니다.

현재 센터필드의 오피스 타워 최상층에는 조선호텔 최상위 브랜드인 조선 팰리스 강남이 위치해 있습니다. 도쿄 마루노우치 오피스 복합개발인 오테마치 타워 최상층에 아만 도쿄가, 롯폰기 미드타운 타워 최상층에 리츠칼튼 도쿄가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하죠.
센터필드는 2021년 준공 당시에도 강남권에서 높은 수준의 임대료를 기록했습니다. 임대료는 오피스의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자 매각가를 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오피스도 아파트처럼 신축이 높게 평가되니 최신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건물 연면적이 7만 평에 이르는 트로피 에셋에 해당한다는 그 대표성이 임대료에 반영된 결과겠죠. 강남 한복판 불변의 입지는 오히려 강남 일변도의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그 가치가 더 상승할 걸로 보입니다.

참, 강남 개발사에 계속 등장하는 ‘영동’이라는 지명의 기원도 알고 계신가요? 강북 도심의 인구, 기능 분산을 목적으로 서울시에 편입은 되었지만 여전히 농경지나 시골로 남아있던 이 지역을, 영등포의 동쪽에 있다는 의미로 영동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기차역에 공업 지역까지 위치한 영등포는 강남에 비하면 너무나 도시였던 것이죠. 이후 영동이라는 명칭 사용은 점점 줄어들고, 한강 개발이 시작되고 ‘강남구’가 설치되면서 한강의 남쪽을 의미하는 ‘강남’이 대표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남서울이 영동을 거쳐 강남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돌이켜보며 처음 계획을 세우고 개발에 나선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때보다 보다 발전된 미래를 꿈꿨겠지만, 현재 강남의 풍경이나 강남 도심이 가진 위상까지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미래의 강남은 또 어떤 모습일까요. 강남의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아티클 커버 이미지 제공: 최용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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