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런던, 싱가포르, 도쿄는 도시의 위기 앞에서 플레이스메이킹을 선택했고, 그 전략의 중심에는 민간 디벨로퍼가 있었습니다.

  • 런던 킹스크로스, 싱가포르 PLQ, 도쿄 마루노우치 사례는 플레이스메이킹이 자산과 도시의 가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서울시립대학교 김정빈 도시공학과 교수가 세 도시의 전략과 디벨로퍼의 역할을 분석하고, 지금 서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도시는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는 위기를 만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주요 도시들은 각기 다른 위기를 마주했다. 산업구조의 변화, 공실률 증가, 인재 이탈, 도시 이미지의 침체⋯. 그러나 이 도전은 곧 전환점이 되었다. 도시들은 전통적인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을 시도했는데, 중심에는 ‘플레이스메이킹(placemak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의 주도권을 정부나 학계가 아닌 민간 디벨로퍼들이 쥐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글은 이러한 민간 디벨로퍼들의 전략적 진화가 어떻게 세 도시의 미래를 바꾸었는지를 살펴본다.

런던 킹스크로스- Related Argent의 사례

한때 런던에서 가장 황폐한 지역으로 손꼽히던 킹스크로스(King’s Cross)현재 가장 성공적인 플레이스메이킹 사례이자, 도시재생의 혁신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 지역에는 세계적인 예술 대학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Saint Martin Art school)이 둥지를 틀었고, 구글, 페이스북, 유니버설뮤직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하고 있다. 일자리 수는 2011년 8,000개에서 2019년 27,000개로 대폭 증가했다.

‘개발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는 사무실 임대료다. 킹스크로스의 오피스 임대료는 2010년 당시 런던 도심 평균보다 48% 낮았지만, 2022년에는 오히려 19%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며 큰 성장세를 기록했다.1

킹스 크로스 내 위치한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 (출처: BAM homepage)

이러한 성공의 중심에는 디벨로퍼 릴레이티드 아르젠트(Related Argent)가 있다. 공동대표 닉 설(Nick Searl)은 단순히 건물과 공간을 짓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모이고 머무르는 ‘장소’를 만드는 철학, 즉 플레이스메이킹(placemaking)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그는 여러 인터뷰와 발표에서 킹스크로스 개발의 핵심을 “사람 중심의 장소 만들기”라고 설명하며, 도시재생에 있어 플레이스메이킹이 갖는 결정적 역할을 역설했다.

“런던의 모든 사람이 가고 싶어하는 곳을 만드는 것” — 이것이 아르젠트의 핵심 철학이었다.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원칙에 충실한 개발 전략은 한때 ‘No-go area’였던 킹스크로스를 런던에서 매력적인 지역 중 하나로 탈바꿈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개발 중 세인트 마틴 스쿨을 유치하고 집객의 광장을 만든 개발 공간 일부

싱가포르 파야 레바 쿼터 – Lendlease의 사례

싱가포르 동부의 전통 상업지역이었던 파야 레바(Paya Lebar)는 한때 노후한 기반시설과 낡은 상업용 건물들로 인해 활력을 잃고 있었다. 이에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은 2008년 마스터플랜을 통해 이 지역을 새로운 상업 허브로 전환할 계획을 수립했고, 현재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활기찬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2019년 말 개장 당시, 오피스와 리테일 공간의 90%가 이미 임대 완료 또는 최종 협의 단계에 있을 정도로 높은 높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약 200개 이상의 매장이 입점한 PLQ(Paya Lebar Quarter) 몰은 연간 4,500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을 유치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2

200개 이상 매장이 입점한 PLQ(Paya Lebar Quarter) 몰의 놀이터

이러한 성공의 중심에는 호주 기반 글로벌 디벨로퍼 그룹 랜드리스(Landlease)가 있다. 이들은 2015년 URA로부터 부지를 99년 임대 조건으로 약 16억 7천만 달러에 매입해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다소 낙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고가 입찰에 대해, 프로젝트를 이끈 랜드리스의 리처드 페인(Richard Paine) 상무는 “우리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차별점은 플레이스메이킹에 투자한다는 점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3

그의 말처럼, 랜드리스는 약 10만 제곱피트(약 9,300㎡) 규모의 개방형 녹지 및 공공 공간을 조성하여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휴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어린이 놀이터, 야외 피트니스 공간, 넓은 광장 등을 갖춘 이 공간은 세대와 연령을 아우르는 커뮤니티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오피스 임대의 성공뿐 아니라 주거시설의 분양성과로도 이어졌다. 복합단지 내 주거시설은 1차 분양분이 하루만에 완판되었고, 2차 분양분 역시 전체의 84%가 첫 주말에 판매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도쿄 마루노우치 – 미쓰비시지쇼의 사례

버블 붕괴 이후 빌딩의 노후화와 경기 침체로 인해 업무시간 이후에는 거의 텅 비어 있던 도쿄 마루노우치 지역은, 이제 일본 최고 수준의 토지가치를 유지함과 동시에, 업무 종사자 뿐 아니라 가족, 관광객, 예술가 등 다양한 방문객이 찾는 활기찬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일본 최대의 부동산 디벨로퍼 중 하나인 미쓰비시지쇼는 이 지역 토지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며, 2024년 3월 기준 마루노우치에서만 연간 약 2,500억 엔(약 2조 5천억 원)의 임대수익을 올리며 자산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4

2000년 이후 마루노우치 빌딩, 마루노우치 파크 빌딩 등 주요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오피스 면적은 2000년 이전 대비 약 1.8배 증가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양질의 기업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하였다. 특히, 2014년부터 2023년 사이—코로나 시기를 포함하여—이 지역의 사업체 수는 약 4,300개에서 5,000개로 약 20% 증가했으며, 종사자 수도 28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기업의 집적은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고용 창출로 이어졌고, 마루노우치는 현재 일본 GDP의 1/5 이상을 창출하는 핵심 경제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5

마루노우치 지역을 찾은 시민들 (출처: LIGARE)

이러한 성공의 중심에는 130년 넘게 마루노우치를 관리해온 미쓰비시지쇼가 있다. 이들은 매년 발표하는 사업결산보고서를 통해 자사의 경쟁력과 비지니스 전략을 설명하며, 플레이스메이킹의 핵심요소인 에리어 매니지먼트(area management)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마루노우치 지역에서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재개발과 임대수익 확대는 단순한 개별 건물이 아닌, 지역 전체를 고려한 종합적인 전략과 운영에 기반한 결과이다. 이는 미쓰비시지쇼만의 독자적인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또한 비즈니스 전략 측면에서도, 재개발을 통한 용적률 상향과 임대수익 극대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개별 자산의 가치 제고를 넘어 지역 전체의 콘텐츠와 운영 서비스를 향상시키며, 마루노우치 전반의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명확한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마루노우치 겨울 축제 (출처: LIGARE)
  1. https://www.centreforcities.org/reader/making-places/learning-from-kings-cross-regeneration/#:~:text=failures,term%20profit ↩︎
  2. https://www.lendlease.com/sg/media-centre/media-releases/plq-mall-set-to-welcome-shoppers-on-30-august/?utm_source=chatgpt.com ↩︎
  3. https://www.edgeprop.sg/property-news/paya-lebar-quarter-%E2%80%94-catalyst-future-commercial-hub?utm_source=chatgpt.com ↩︎
  4. 2024년 3월 3분기 미쓰비시 부동산 사업결산 설명자료 발췌 ↩︎
  5. 2023년 미쓰비시 주식회사 통합보고서 ↩︎

▶ 플레이스메이킹 시리즈
① 세계 주요 도시의 화두가 된 플레이스메이킹
② 플레이스메이킹을 완성하는 요소 3가지
③ 글로벌 디벨로퍼들이 말하는 플레이스메이킹의 효과
글로벌 디벨로퍼들이 플레이스메이킹을 찾은 이유 (1)
⑤ 글로벌 디벨로퍼들이 플레이스메이킹을 찾은 이유 (2)
(계속 이어집니다)

본 콘텐츠는 외부 필진이 작성한 글로 주관적 견해를 포함할 수 있으며, 당사의 공식적인 의견 표명이나 견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본 콘텐츠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및 투자 권유, 종목 추천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본 콘텐츠는 2025년 6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