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올해로 88세인 노먼 포스터는 건축가에게 허락된 거의 모든 명예와 커리어를 스스로 성취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프리츠커 건축상,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메달, 미국건축가협회(AIA) 골드메달 등 소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전 세계 몇 안 되는 건축가죠.

  • 노먼 포스터는 새로운 기술과 공법을 도입하는 하이테크 건축의 특성에 ‘지속가능성’이란 화두를 긴밀히 결합하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발전시킨 설계로 유명한데요.

  • 4월 25일부터 7월 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 열리는 노먼 포스터 전시를 기념해 노먼 포스터의 건축 특징과 대표작, 그리고 서울에 들어설 예정인 새 건축물까지 정리해 봤습니다.

4월 25일부터 7월 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이례적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다. 제목 그대로, 영국의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와 그가 이끄는 설계사무소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지난 50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전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대표 프로젝트를 돌아보는 전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올해 초 서울시립미술관의 연간 전시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 갔다가 본관에서 열리는 블록버스터 전시의 주인공이 노먼 포스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한국 국공립 미술관의 캘린더는 순수미술에 대한 전시로 가득 차기 마련이라, 건축 전시, 그것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기회가 황홀했다. 작년 5월~8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노먼 포스터의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이 열릴 때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침만 삼켰기에 더욱더.

올해로 88세인 노먼 포스터는 건축가에게 허락된 거의 모든 명예와 커리어를 스스로 성취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영국 왕실에게 세습 불가능한 일대 귀족으로서 남작 작위를 받은 것은 맨체스터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이라는 출신 성분을 생각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영국이 건축을 대하는 인식이 성숙하다는 특성도 있겠지만, 그만큼 건축가로서 쌓은 공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프리츠커 건축상,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메달, 미국건축가협회(AIA) 골드메달 등 소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사람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 중에서도 극히 드문데, 포스터가 그중 한 명이다. RIBA가 매해 가장 훌륭한 건축물에 수여하는 스털링상, 이슬람 문화권에 끼친 사회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3년마다 특정 건축물에 수여하는 아가칸 건축상, 그리고 노벨상이 없는 예술계를 타깃으로 일본예술가협회에서 선정하는 프리미엄 임페리얼 예술상까지… 이쯤 되면 전생에 어떤 공덕을 쌓았나 궁금해진다.

건축가에게 허락된 거의 모든 명예와 커리어를 스스로 성취한 노먼 포스터 경.

혁신적인 기술과 지속가능성의 조화

그러나 운명론적 관점으로 넘기기에 포스터의 건축은 대단히 명확하고 탁월하다. 포스터 하면 보통 ‘하이테크 건축’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여기서 말하는 하이테크는 우리가 생각하는 동시대 앞선 기술에 대한 선구안 혹은 모험심이 아니다. 1970년대 발생한 건축 사조 중 하나로, 기존에 시도하지 않은 기술과 공법으로 건축물의 기능, 재료, 구성, 시공을 새롭게 탐구하는 움직임이다.

하이테크 건축이 유행한 시발점은 포스터와 함께 ‘팀4’로 활동했던 리처드 로저스가 친구인 렌초 피아노와 공동 설계한 파리 퐁피두센터다. 이들은 건물 내부에 숨겨두던 배수관, 가스관, 통풍구 등을 ‘마치 내장을 몸에서 꺼내듯’ 외부에 설치해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면모를 부여했고, 건물을 지탱하는 철골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유리로 외면을 처리해, 내외부가 뒤섞여 경계가 흐릿하도록 투명성을 극대화했다.

포스터는 이런 하이테크 건축의 특성에 ‘지속가능성’이란 화두를 긴밀히 결합하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발전시켰다. 특히 미려하면서도 간략한 형태가 신선한 공법과 결합해 탄생하는 건물의 미적 완결과 구조적 안정, 재료와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친환경, 헤리티지와 문화를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주파수를 맞추는 공전 등 건물, 사람, 환경, 사회, 문화를 가로지르며 지속가능성이 당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는 능력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포스터의 대표 건축물 8점 분석

1975년 영국 입스위치에 선보인 초기 대표작 ‘윌리스 빌딩’은 보험회사 WTW의 사옥으로 클라이언트가 중시한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면모를 갖췄다. 중세도시의 도로 패턴이 낳은 비정형의 대지를 그대로 수용하며 구불구불한 외형을 갖춘 4층 규모의 건물 외벽은 거대한 착색 반사유리로 마감한 덕분에 낮에는 오래된 거리 풍경을 반사하고, 밤에는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 행인과 도시 사이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윌리스 빌딩 외관. ⓒFoster+Partners

1층 로비부터 4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연이어 배치해 사람들이 건물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동선을 고려했다. 1층 안쪽에 직원 부대시설과 수영장을 놓았고, 2층과 3층에 자리 잡은 사무공간은 별도의 방을 없애고 활짝 열어놓아 공간의 민주화를 도모했다. 4층에는 쉼터를 설치하고 이와 맞닿은 3층 지붕 대부분은 루프 가든으로 활용했다. 4층 천장의 스페이스 프레임을 통해 자연광이 연속된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확보한 아트리움으로 쏟아지며 친환경을 지향한다. 준공 16년 만인 1991년 역대 최단기로 1등급 등록건축물이 된 작업이다.

1985년 당시 6억 달러에 달하는 준공 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단일 건물이었던 ‘HSBC 홍콩 본점’은 풍수지리를 중시하는 현지 클라이언트가 용이 산에서 내려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길목 격인 해당 부지의 1층을 비워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서 1층 필로피를 오픈 스페이스로 처리한 후 해먹처럼 아래로 불룩한 형태의 유리 지지체로 천장을 만들고 1층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2층 영업장으로 곧장 진입하도록 설계했다. 1층은 공공에 개방돼 현지인이 쉼터로 애용 중이다.

HSBC 건물 외관. ⓒFoster+Partners

47층 높이의 건물은 현수교의 공학적 원리를 활용해 거대한 기둥 사이로 건물을 위로 잡아 올리듯 연결하는 구조를 취하고, 이와 동일한 구조물을 겹겹이 나열해 빅토리아 하버를 바라보는 북쪽 공간, 빅토리아 피크를 바라보는 남쪽 공간, 그리고 10층 높이의 아트리움을 비롯하여 고층 사무실로 활용하는 중간 공간으로 정리했다. 남쪽 외벽에 태양 고도를 자동으로 계산하는 집광판을 설치하고 유리로 처리한 아트리움 천장으로 패스해 내부를 자연광으로 풍부하게 밝히는 지속가능성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건물을 구성하는 각종 부분을 해외에서 만든 후 홍콩 부지에서 조립하는 프리 패브리케이션 방식을 선택한 건물은 40년 전에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미래적이다.

1985년 당시 6억 달러에 달하는 준공 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단일 건물이었던 HSBC 홍콩 본점. 지속가능성 설계와 첨단 기술을 선진 도입한 건물이다. ⓒFoster+Partners

이후 포스터의 건축은 곡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외형적으로 간결하면서 세련된 미감을 추구하고, 태양, 비, 바람 등 대지의 자연 특성을 활용하는 각종 기술을 도입해 하이테크 건축의 신기원을 열었다. 21세기에 걸맞은 각종 공학 기술을 집대성해 지속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시도가 동시대의 큰 공감을 산 것이다.

2004년 런던 금융 지구에 스위스리 사옥으로 지은 ‘30 세인트 메리 액스’는 통통한 몸체가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모습 때문에 ‘오이지’(gherkin)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주변 풍속을 계산해 이에 대한 저항값을 줄이는 최적의 방식으로 설계한 결과였다. 덕분에 지상층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압력 차이를 이용한 자연 환기 시스템이 가능해졌다. 입면에 쓰인 이중유리 속 공기는 외부 온도보다 높아서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데, 이 흐름을 막으면 겨울철 천연 단열재로 변신해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통통한 외관으로 야채절임 ‘오이지’라는 별명이 붙은 30 세인트 메리 액스. 이러한 형태는 에너지 절감을 비롯한 여러 여건을 고려해 정해졌다. ⓒFoster+Partners
마름모꼴 그리드 안쪽에는 태양열 흡수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고성능 코팅이 부착된 이중 유리 패널이 설치됐다. ⓒFoster+Partners

2017년 런던에 완공한 미디어 기업 ‘블룸버그 유럽 본사’는 태양에 노출되는 각도에 따라 크기, 높낮이, 밀도를 달리하도록 건물 각 면에 지느러미 형 청동 가리개를 부착해 자연 환기 시스템을 극대화했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재활용 알루미늄 모듈형 천장을 설치하는 등 지속가능성 건축 조사에서 전무후무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애플파크’(2019) 또한 거대한 도넛 모양을 띤 중심 건물의 안쪽 공간을 캘리포니아 수목으로 가득 채우고, 건물 지붕에 태양광 집열기를 설치한 후 곳곳에 친환경 기술을 적용해 100% 재생에너지로 작동하고 넷제로를 실현한 건물이 되었다.

대중에게 포스터앤파트너스의 이름을 각인시킨 애플파크. 도넛 모양의 안쪽에는 과수원, 연못, 정원 등이 있다. ⓒFoster+Partners
원형 복도는 애플 파크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며, 직원들의 우연하고도 유연한 만남과 의사소통을 유도한다. ⓒFoster+Partners
애플파크는 100% 재생 에너지로 가동된다. ⓒFoster+Partners

포스터 앤 파트너스는 서구뿐 아니라 전 세계를 활동 범위로 삼는다. 이미 아랍 쪽에서는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아랍에미리트(UAE) 토후국 샤르자에 지은 도서관 ‘지혜의 집’(2021)은 사각형 코너마다 거대한 코어를 설치해 내부에 어떠한 기둥도 없는 개방된 공간을 형성하고, 2층 건물 위에 사방으로 15m 돌출한 캔틸레버 구조의 지붕을 덮어 무더운 사막에서 건물 스스로 그늘을 생성하게끔 유도한다.

길게 뺀 지붕이 사막에서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드는 지혜의 집. ⓒFoster+Partners
ⓒFoster+Partners
ⓒFoster+Partners

아부다비에서는 탄소 배출, 폐기물 배출, 내연기관 차량이 없는 3무(無) 도시를 지향하며 도시 에너지 사용량 전부를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는 ‘마스다르 시티 마스터플랜’을 진행 중이고, 오는 2025년 완공 목표인 샤디얏 문화지구의 ‘자이드 국립박물관’은 별도의 에어컨이나 공조 시스템 없이 건물 자체적으로 공기 순환을 통해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파격적인 구상을 현실에 구현 중이다.

서울에서 만나게 될 포스터의 건축

한국에도 노먼 포스터가 참여한 건물이 존재한다. 대전에 자리 잡은 한국타이어 연구소인 ‘테크노돔’(2016)이다. 전체 부지를 덮은 거대한 은빛 타원형 지붕이 인상적인데, 비가 내리면 물이 한쪽으로 모여 전면 하부에 위치한 연못으로 떨어지며 산업용수로 재활용하거나 건물 온도를 조절하는 데 쓰인다

대구에 위치한 테크노 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재활용한다. ⓒFoster+Partners

서울에서도 노먼 포스터의 건축을 곧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산 인근의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 부지 복합개발 사업을 설계하는 건축가로 노먼 포스터가 선정됐기 때문이다. 서울역과 남산을 연결하는 부지랜드마크급 오피스 1개와 호텔·쇼핑몰로 이뤄진 1개동으로 구성된 대규모 복합 시설(약 46만㎡), 그리고 축구장 1개 크기의 공개 녹지(약 7000㎡)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에서도 노먼 포스터의 건물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서울역과 남산을 연결하는 대규모 부지에 들어설 친환경 복합건물 설계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Foster+Partners
부지에는 축구장 1개 크기의 대규모 녹지가 포함됐다.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친환경 건축 설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Foster+Partners

한국인이 선호하는 간결한 외형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현대 기조에 발맞춘 건축을 오랫동안 추구했다는 점에서 노먼 포스터의 건축이 서울이란 지역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완공 예정일은 2029년.

노먼 포스터가 90세를 코앞에 둔 노령이라 걱정되지만 생각해 보니 프랭크 게리는 올해 95세… 유명인사 걱정이 최고로 쓸데없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며, 내 건강부터 챙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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