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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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종종 “규제가 창의력을 제한한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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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건축가가 근사한 건축물을 짓고 싶어도 고도 제한이나 건물 간격 등의 제한으로 획일화된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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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규제 덕분에 창의력이 촉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도시계획을 따르면서도 상업적 측면까지 만족시킨 건축 프로젝트들을 두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도시는 다양한 질서로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이 한정된 공간에 모여 살아야 하니 질서가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도시에 건축물이나 도로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행정가들은 도시 생활에 필요한 모든 환경을 건전하고 균형있게 배치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른바 도시계획이다.
건축가들은 종종 이러한 도시계획이 창의적인 건축설계를 막는다는 볼멘소리를 한다. “도시계획대로 완성한 도시가 정말 살기 좋은가?” 의문을 제기하는 건축가의 말도 이해가 된다. 건축물이 속하는 지구(地區)단위계획이 도시를 계획 구역으로 분절한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잘 짜여진 도시계획은 개별 건축물이 제공하지 못하는 도시 차원의 편익을 시민에게 제공한다.오늘은 싱가포르와 한국에서 도시계획과 상업적 측면 모두를 만족시킨 사례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싱가포르, 도시계획의 정석이 된 도시
도시계획과 설계가 정석대로 작동하는 도시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도시계획에서 가장 인상적인 계획은 1997년 12월 발표된 가이드라인 「Creating a More Beautiful Singapore」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가이드라인은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을 아이덴티티(Identity)있게 만들고 쾌적한 보행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1. 스카이라인
지붕 디자인을 보다 유연하게 하고 지붕 공간이 더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장려하기(Provide more flexibility in the design of roofs and better use of the roof areas).
실행 방안은
① 지붕 덮개(Rooftop Covers)
② 지붕 위 파빌리온(Rooftop Pavilions)
③공중 정원(Sky Terraces).
2. 보행 공간
덮개가 있는 통합된 공공 공간으로 이루어진 포괄적인 보행 네트워크 개발 촉진(Encourage the development of a comprehensive pedestrian network with integrated covered public spaces).
실행 방안은
① 블록을 관통하는 보행로 연결(Through-Block Pedestrian Links)
② 건물 상층부에서 건물 간 연결(2nd Storey & High Level Pedestrian Links)
③ 덮개가 있는 공공 공간(Covered Public Spaces).
사실 도시계획에서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건축물 설계에서 꼭 지켜야 하는 사항이다. 건축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얼핏 제약으로 보이기도 한다. 건물 사용자 뿐 아니라 건물 소유자와 임차인에게 이득이 되도록 설계해야 하는 이 어려운 ‘방정식’을 풀어낸 선례가 있다. 파크로얄 온 피커링(Parkroyal on Pickering) 호텔이 있는 건물이다.
청량함을 주는 파크로얄 온 피커링 호텔 건물
파크로얄 온 피커링 건물은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마천루 밀집지인 래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인근인 홍림공원에 면해 있다. 얼핏 보면 지상에 있는 공원을 공중으로 뜯어 올린 것 같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왕문섬과 리차드 하셀(Richard Hassell)이 이끄는 싱가포르 건축사무소 WOHA다. ‘친환경’과 ‘생태’를 본인들의 건축언어라고 설명하는 WOHA는,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사라지는 녹지보다 더 많은 녹지가 새로운 건축물과 함께 개발되어야 한다는 지형 건축(Topographical architecture)을 추구한다.
WOHA는 이 건물이 공공시설은 아니지만 공공적인 의무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행자나 운전자들이 건축물의 디테일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도록 가로에 면한 부분을 설계했다. 구체적으로 홍림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어퍼 피커링 스트리트(Upper Pickering street)에 면한 저층부를 설계하면서 앞서 언급한 6개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기 위해 덮개가 있는 보행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건물과 보행로 사이에 물을 이용한 조경 공간을 조성했다. 적도 아래에 있는 싱가포르에서 외부 활동은 그 자체로 쉽지 않다. 하지만 직사광을 막는 차양과 조경 요소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국지적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다. 파크로얄 온 피커링 건물의 조경 공간은 보행로의 온도를 미시적으로 낮추어 보행자들에게 청량감을 준다.
조경 공간은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감도 확보해 준다. 만약 조경 공간이 없다면 건물 안 로비나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사람과 보행자 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 서로 불편했을 것이다.
호텔 로비에 앉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느긋한 속도로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호텔이 더 이상 특별한 날을 위한 숙박과 식사의 장소가 아닌, 기분 좋은 자극과 온전한 휴식을 누리는 ‘일상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어느 잡지의 문구를 체감하게 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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