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건축가는 종종 “규제가 창의력을 제한한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건축가가 근사한 건축물을 짓고 싶어도 고도 제한이나 건물 간격 등의 제한으로 획일화된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 하지만 “규제 덕분에 창의력이 촉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도시계획을 따르면서도 상업적 측면까지 만족시킨 건축 프로젝트들을 두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한정된 토지를 두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공존하는 도시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도시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시정부가 정한 설계 규칙이나 건축가 스스로 찾은 도시의 질서를 따르면서도 상업 경쟁력을 놓치지 않은 민간 건축물을 두 편에 나누어 소개한다. 1편은 싱가포르의 사례, 2편은 국내 사례다.

(1편으로 돌아가기)

인사동 쌈지길, 골목 걷는 재미를 건물에 반영하다

도시의 질서를 따르면서도 높은 건축적 가치와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사례를 우리나라에서 꼽으라면 인사동 ‘쌈지길’이다.

쌈지길은 상점들을 연결하다 만들어진 공간 같기도 하고 길로 모여든 사람들이 또 다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장소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의 지역적 맥락으로 ‘골목’을 지목한다. 그런데 자잘한 땅들을 하나로 합쳐서 커다란 건물을 지으면 그 과정에서 골목이 사라진다. 정부는 이 점을 우려해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에서 각 구역별로 최대 개발 규모를 설정해 놓았다. 인사동 길과 그 안쪽의 한옥관리구역의 최대 개발 규모는 각각 320㎡ 이하와 240㎡ 이하다. 그리고 이미 큰 규모의 건물이 있었던 땅에는 골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특별계획구역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쌈지길이 있는 옛 영빈가든 부지다.

영빈가든 부지는 영빈가든(마당이 있는 한옥으로 된 갈빗집)과 공예점·표구사 등 12개 가게가 모여있던 부지다. 하지만 2001년 4월 이곳 일대가 화재로 피해를 입으면서 정비가 시급했다. 서울시는 이 부지를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인사동길을 따라 1층(6m이하)의 저층 영역을 설정하고 대지면적의 20% 이상에 중정 형태의 마당을 설치하는 지침을 제시했다.

이 부지를 매입한 쌈지의 천호균 대표는 건축가 최문규에게 건물 설계를 맡겼다. 사실 서울시의 지침만 따라도 건물의 윤곽이 나온다. 더군다나 이곳에 들어서는 건물은 임대면적을 최대화해야 하는 판매시설이었다.

최문규 건축가는 특별계획구역에서 제시하는 지침을 반영하기에 앞서 사람들이 인사동을 방문하는 이유를 고민했다. 그는 인사동이 그나마 서울에서 편하게 걸으면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고 자답하며, 인사동을 걷는 재미가 건물 안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인사동길에 면해 있었던 12상점의 위치를 그대로 두었다. 외관은 바뀌었지만 위치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과거 12상점을 기억하는 사람은 익숙함을 느낀다. 인사동길에 면한 12상점 사이로 난 입구를 통해 안쪽으로 들어오면 경사로로 연결되는 마당이 나온다. 새로 들어선 70여 개의 상점은 이 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로 배치돼 있다. 상점을 연결하는 경사로의 길이는 690m로 인사동길에 버금가는 새로운 길이다. 그래서 이 건물의 이름을 ‘쌈지길’로 정했다.

12상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쌈지길이 큰 변화로 느껴지지 않도록 12상점의 원래 위치를 유지했다.

마당을 향해 열려 있는 폭 1.8m~2.4m의 쌈지길은 인사동길에 면해서는 길과 나란하고 마당에 면해서는 마당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 쌈지길은 인사동길도 되고 마당길도 된다. 그렇게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다 마지막 층에 이르면 하늘과 북한산을 마주한다.

여러 상점이 ‘ㅁ’자로 둘러싼 마당에는 의도적인 무언가가 있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쌈지길은 건축물임에도 건물을 표현하기 위한 디테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인사동의 골목을 배회하다 만나는 변화와 우연성을 담고 있다. 마당에도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의도적인 무언가가 없다. 마당은 그저 상점들을 연결하다 만들어진 공간 같기도 하고 길로 모여든 사람들이 또 다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장소 같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 쌈지길에서 앞서 언급한 특별계획구역의 지침은 생각나지 않는다.

쌈지길 완공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건물 소유자는 몇 차례 바뀌었지만, 인사동길을 건축화한 기본 개념은 바뀌지 않았다. 인사동길의 흐름을 작위적으로 틀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끌어온 설계자의 아이디어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콤포트 서울, “건물 가로질러 편하게 보행하세요”

때로 건축가는 도시계획가도 생각지 못한 도시의 질서를 발견해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건축물들은 대개 도시계획으로 다루기에는 대지의 규모가 지나치게 작은 땅에 들어서는데, 그럼에도 신중히 수립된 도시계획을 따른 건축물처럼 주민들과 사용자들에게 편익을 준다. 그리고 심지어 입주자들에게 금전적인 이득을 제공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용산 후암동에 있는 ‘콤포트 서울(Comfort Seoul)’을 들 수 있다.

콤포트 서울이 들어선 땅은 동쪽을 지나는 소월로와 서쪽을 지나는 두텁바위로60길 사이에 있다. 두 길은 15m 정도 높이로 차이가 난다. 콤포트 서울이 들어서기 전까지 두 길을 오갈 수 있는 방법은 콤포트 서울에서 남쪽으로 350m가량 떨어진 소월로20길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도시계획으로 적당한 위치에 두 길을 연결하는 공공보행통로를 지정하는데 이 일대는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다. 더군다나 콤포트 서울이 들어선 대지는 개인 소유의 땅이어서 특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고 공공보행통로를 지정하기는 쉽지 않다. 대지면적도 384㎡에 불과하다.

하지만 설계를 맡은 경계없는작업실 건축사사무소는 두 길을 연결하는 계단을 새 건물과 함께 자발적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은 콤포트 서울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계단을 통해 소월로와 두텁바위로60길을 오갈 수 있다.

콤포트 서울은 15m의 단차를 이루는 소월로와 두텁바위로60길 양쪽을 연결하는 계단을 품고 있다.
콤포트 서울의 설계자는 이용자들이 계단을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의 폭을 법적 기준보다 넓은 1.5m로 만들었다.

경계없는작업실 건축사사무소가 두 길을 연결하는 계단을 자발적으로 만든 이유는 콤포트 서울이 전시공간과 판매시설 그리고 카페가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콤포트 서울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이 됐든 주변을 걷는 보행자들이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동네 주민들뿐만 아니라 입주 업체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콤포트 서울의 계단은 건축물이 문을 닫는 월요일에도 두 길을 이용하는 주민들과 보행자들을 열심히 연결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로 콤포트서울은 202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4개 층을 관통하는 계단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대지 양쪽을 지나는 두 길을 잇고 있다.

흔히 민간이 짓는 상업건축물에 도시계획이 제시하는 지침을 적용하기 위해 용적률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행위를 ‘Carrot and Stick’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개념은 민간의 이익(Carrot)과 도시계획에서 제시하는 지침(Stick)이 상반되는 듯한 인식을 준다. 하지만 영리하게 설계된 몇몇 상업건축물은 도시의 질서를 따르고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방안이 건축물을 활성화하는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업건축물이 늘어날수록 민간의 이익과 도시계획 지침 간의 관계는 ‘Carrot and Stick’이 아닌 ‘Win-Win’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퍼질 것이다.


(1편으로 돌아가기)

해당 콘텐츠는 외부 필진이 작성한 글로 당사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및 투자 권유, 종목 추천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상기 내용은 2023년 11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