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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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호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솝’을 무려 3조가 넘는 금액에 인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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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은 매출의 75% 이상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오는 흥미로운 브랜드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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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이 컬트적인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를 들여다봤습니다.
지난 4월 4일 뷰티 시장에 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호주에서 시작된 화장품 브랜드 이솝(Aēsop)이 약 3조 3000억 원(25억 3000만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몸값으로 세계 최대 뷰티 기업 로레알에 매각되었다는 것이었죠. 로레알의 M&A 중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이솝을 두고 세계 5위(시세이도), 세계 7위(LVMH) 등 글로벌 뷰티 기업들이 서로 인수하겠다고 손을 들던 차였죠.
이솝은 우리에게 핸드크림으로 익숙한 브랜드인데요. 이솝은 어쩌다 동종업계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게 된 걸까요?
1987년 호주 멜버른의 미용실에서 시작한 브랜드
이솝이란 브랜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솝의 창립자인 데니스 파피티스(Dennis Paphitis)에요. 1987년 멜버른에서 에이미스라는 헤어 살롱을 운영하던 파피티스는 시중에 나온 헤어케어 제품에 짜증이 나 있었어요. 특히 염색약에서 풍기는 암모니아 냄새에 질린 참이었죠. 그래서 제품에 세이지, 로즈마리 및 기타 천연 에센셜 오일을 첨가해 자체 개발에 들어갔는데요. 고객의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내친김에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화학자와 함께 더 다양한 헤어 케어 제품을 소량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제품 개발이 헤어를 넘어 보디, 그리고 스킨 케어까지 확장하자 파피티스는 1996년 헤어 살롱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화장품 사업에 올인하게 됩니다.
파피티스는 자기네 제품을 바르면 주름이 쫙쫙 펴지고, 피부가 하얗게 되고, 여드름이 모조리 사라진다는 식의 화장품 브랜드 캠페인을 혐오했어요. 그는 그리스의 유명한 이야기꾼인 이솝을 떠올리며 회사 이름을 이솝으로 바꾸었어요. 업계에 만연한 허풍을 은밀하게 조롱하는 의미였답니다.
기존 화장품 브랜드의 성공 공식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그의 지휘 아래 이솝은 허례허식 없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화장품 용기로는 빛과 자외선을 차단하는 단순한 형태의 호박색 유리병만 고집하고, 제품 라벨에는 옵티마 서체로 만든 Aēsop이란 로고 타입과 함께 중립적인 서체의 대명사인 헬베티카로 제품 이름과 성분만 간단히 표기했어요. 이솝을 쓰면 이런 효과가 있다고 단정하지 않았고 피부 좋은 사람이 나와서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도 일절 하지 않았죠. 성별, 인종에 상관없는 중립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제시한 셈이에요.
지금까지 없었던 뷰티 브랜드 매장,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
헤어 살롱을 운영해 본 파피티스는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제품의 성능 뿐 아니라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품을 유통하는 리테일러는 제품을 많이 파는 데만 관심을 가졌죠. 그는 결국 고객을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 매장을 열기로 결심합니다. 2003년 멜버른의 갓길 구석에서 시작한 이솝의 매장은 이후 전 세계 도시에서 이솝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이자, 이솝이란 브랜드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백화점에 입점한 이솝 매장 등과 구분해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라는 이름도 붙었습니다.
전 세계 이솝 매장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매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큰 세면대가 존재해요. 다른 화장품 매장 중 제품 진열대가 아니라 세면대가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은 모습을 보셨나요? 아마 이솝이 최초이자 유일한 경우일 거예요. 파피티스는 이솝을 찾는 고객이 제품을 마음껏 써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질감은 어떤지, 기능은 충분한지 직접 써보고 뒷마무리까지 완벽해야만 공간을 찾은 고객에 대한 예의라고 믿었죠.
이솝 매장의 특이한 점은 이것 만이 아니에요. 보통 화장품 매장에 가면 그들이 밀고 있는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붙여 놓습니다. 매출 증대가 목적이니까요. 하지만 이솝은 달라요. 편집증 환자처럼 오와 열을 맞추며 제품 진열에만 몰두합니다.
여기에는 파피티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가 작용했어요. 헤어 살롱에서 예민한 고객을 수없이 만났던 그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공간을 정돈하는 일이 의외로 고객을 안정시키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그래서 흐트러짐 없는 덩어리로 보이도록 제품 배치를 철저하게 관리했고, 인테리어 또한 최대한 명징하게 했죠. 이솝 매장에서는 복잡한 풍경을 정리하고 눈에 거슬리지 않게 시각적인 통일감을 유지합니다. 선명하고, 명징한 세계에서는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끼면서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더불어 조명의 조도를 낮추어 편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차가운 느낌이 큰 미니멀리즘으로는 얻지 못하는 효과입니다.
이솝 매장의 DNA ①현지의 건축 재료 사용
무엇보다 이솝의 시그니처 스토어의 핵심은 맥락에 있습니다. 그는 매장이 들어서는 지역과 맥락적으로 엮이는 다양한 요소를 활용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매장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각 매장은 하나하나 독립적인 보석처럼 빛났죠. 이솝의 시그니처 스토어는 매장이 들어서는 곳을 잘 아는 현지 건축가를 섭외하고 그 지역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거리에 스며드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런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실현됩니다. 첫 번째는 재료입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인테리어에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곳이죠. 시카고에 지은 시그니처 스토어인 이솝 벅타운(Aesop Bucktown)은 빈티지 느낌이 물씬 나는 벽돌로 내벽과 바닥을 구성했는데요. 이 벽돌은 시카고에서 흔히 쓰이는 종류예요.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로 이름 높죠. 1871년 대화재로 인해 도시 대부분이 불타자 근대 건축 재료로 다시 꾸미면서 마천루로 가득하게 된 역사가 있어요. 이솝은 시카고 도시 곳곳에 쓰인 약 1만 장의 벽돌을 공수해서 내부를 꾸몄어요. 심지어 벽돌이 너무 무거워 하중 문제가 생기니 바닥을 철거하고 벽돌의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콘크리트와 강철로 다시 터를 정리할 정도였습니다. 시카고라는 도시의 역사를 존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일부가 되려는 노력을 보여준 것이죠.
일본 삿포로에 위치한 이솝 삿포로 스텔라 플레이스(Aesop Sapporo Stellar Place)는 눈 덮인 산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는데요. 삿포로의 시적인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삿포로에서 나는 화산석의 일종인 삿포로 프리스톤을 벽면과 진열대에 사용했어요. 프리스톤은 하얀 점이 마치 눈처럼 박혀 있는데요. 프리스톤과 현대적인 스테인리스를 대조시킨 모습은 눈 덮인 산과 현대적인 도시가 공존하는 삿포로의 모습을 닮았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만든 이솝 조지타운(Aesop Georgetown)에는 100년 묵은 나무를 재활용했어요. 조지타운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담뱃잎을 말리는 데 사용하던 남부 소나무 막대기 3만 개를 구해서 벽에 빽빽이 박아버렸죠. 리드미컬하게 배치한 수많은 막대기는 그 자체로 역동적인 물결 느낌을 내뿜으면서 외부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현재는 사라진 프랑스 파리의 매장 이솝 르 마레(Aesop Le Marais)를 살펴 볼까요? 여기는 제품을 올려놓은 진열대와 세면대가 압권이었어요. 서로 다르게 녹이 슨 빈티지 금속의 정체는 바로 파이프 뚜껑입니다. 구불구불한 골목 지역의 배수를 책임지는 파이프의 뚜껑을 모아 재활용한 건데요. 커다란 세면대 또한 원래 기능이 거대한 파이프 뚜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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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내용은 2023년 4월 15일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