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애플은 자신의 리테일 공간에 큰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심지어 ‘스토어’라는 말도 쓰지 않죠. 애플은 리테일 공간에 ‘스토어’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거든요.

  • 지난 20여년 간 애플 리테일 공간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크게 3가지 세대로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공식적으로’ 애플 스토어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은 어디일까요? 기업의 가치를 시가총액으로 환산한다면 미국의 IT기업 애플이 1위입니다. 애플이 자신의 비즈니스 영역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공식 웹사이트의 회사 소개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오늘날 Apple은 iPhone, iPad, Mac, Apple Watch 및 Apple TV로 세계 혁신을 이끌어갑니다. (⋯) App Store, Apple Music, Apple Pay 및 iCloud는 사용자에게 획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다양한 물리적 제품과 경험 및 서비스를 판매하는 애플은 자신의 리테일 공간을 애지중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애플 스토어입니다. 사실 ‘공식적으로’ 애플 스토어는 존재하지 않아요. 2016년 8월부터 리테일 공간을 호칭할 때 스토어를 빼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2018년 한국 가로수길에 처음 오픈한 애플의 리테일 공간 이름은 ‘애플 스토어 가로수길’이 아니라 ‘애플 가로수길’입니다.

이런 소소한 것까지 따지면 피곤하지 않을까 싶지만, 스토어라는 단어를 붙일 때 서비스의 범위가 제한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애플로 통합할 경우 온오프라인 소매 경험을 온전히 결합하는 일이 가능하니까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정교하게 엮인 생태계를 지배하는 애플의 위엄이 새삼 대단합니다.

애플 하면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하면 혁신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애플은 시장을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는 역사를 써왔어요. 그런데 의외로 애플의 리테일 공간이 그 범주에 든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스토어를 처음 시작한 게 무려 2001년인데도 말이죠.

애플의 리테일 공간은 경영학 서적에서 필수로 다루는 혁신의 대표 사례입니다. 미국의 경제지에 따르면 단위 면적 당 매출이 가장 높은 리테일 공간이죠. 2023년 현재 전 세계에 500곳이 넘는 애플의 점포는 대부분 목 좋은 쇼핑몰에 들어가 있지만, 단독 건물로 구축한 경우도 적지 않아요. 보기만 해도 감탄사가 나오는 미적 감각, 효율적으로 배치한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까지 애플이란 브랜드의 정수를 녹여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애플이 운영하는 공간을 보면 애플의 진면모를 살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고고한 독창미를 뽐내는 잡스의 공간

애플의 리테일 공간은 스티브 잡스의 오랜 갈증에서 시작된 산물입니다. 20세기 애플은 PC를 파는 회사였어요. 보통 PC는 전자제품 소매점에서 취급하죠. 잡스는 바로 그게 싫었어요. 애플의 특별한 제품이 도떼기시장에 묻힌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소비자에게 애플 제품을 제대로 선보이며 브랜드를 구축하는 야망을 꿉니다. 미국대형마트 중 차별화에 성공한 타겟(Target)의 마케팅 임원이었던 론 존슨(Ron Johnson)을 영입해 애플만의 스토어를 구상하기에 이르죠.

당시 전문가들은 헛돈 쓴다고 생각했는데요. 전례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존슨이 시장을 조사해보니 애플의 고객은 단순하고 사용 편의성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단순깔끔, 군더더기 없는 매장 환경을 조성하면서 마음껏 제품을 써볼 수 있고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조언받을 수 있는 똑똑한 직원을 배치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냈죠. 지금도 애플 매장하면 떠오르는 미니멀한 공간 디자인, 널찍한 테이블에 놓인 제품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쓰는 경험, 웃으면서 손님을 돕는 전문 직원 지니어스(genius)의 모습입니다.

2001년 오픈한 첫 번째 애플 리테일 매장 Apple Tysons Corner의 개장 초기 모습 © Apple

첫 번째 매장인 애플 타이션 코너(Apple Tysons Corner)는 당시 미국에서 부유한 지역 중 하나였던 페어팩스 카운티의 고급 쇼핑몰에 위치했습니다. 가격대가 있는 매킨토시를 살만한 부유한 사람이 감각적인 애플 매장을 발견해 안으로 들어가서 제품을 써보다 이것저것 궁금증을 해결한 후 구입하면, 그때부터 진정한 비즈니스가 시작됐습니다. PC에 문제가 생겨서 매장에 가면 전문가가 고쳐주고, 남는 시간에 진열된 다른 상품을 경험하며 또 샀거든요. 게다가 주기적으로 세미나와 커뮤니티 이벤트도 열리니 이건 물건 파는 상점이 아니라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어요.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애플의 리테일 경험이 소문나면서 주변 사람들이 들리는 명소가 되었죠.

스토어가 미국 전역에 늘어나자 2004년 뉴욕에는 애플 소호(Apple SoHo)가, 영국 런던에는 애플 리젠트 스트리트(Apple Regent Street), 일본 도쿄에는 애플 긴자(Apple Ginza)가 생깁니다. 그리고 2006년 ‘애플의 신전’이라고 불리는 애플 핍스 애비뉴(Apple Fifth Avenue)가 개장합니다.

Apple Fifth Avenue © Apple
Apple Fifth Avenue © Apple

애플 핍스 애비뉴는 애플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플래그십 스토어였어요. 이미 전 세계에 100곳이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아주 특별해야만 했죠. 뉴욕의 금싸라기 땅인 5번가에 유리로 된 정육면체를 세웠습니다. 90개의 유리창을 금속으로 조립한 9.75m 높이의 투명한 큐브에는 사과 로고만 박았어요. 소용돌이 모양의 곡면 유리 계단을 내려가면 그제야 장대한 매장이 지하에 펼쳐졌습니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며 애플이 추구하던 단순함, 우아함, 효율성, 아름다움, 기능성을 응집한 공간은 곧바로 뉴욕의 명물이 됐어요.

이런 경향을 극대화한 곳이 바로 2008년 중국 상하이에 세운 애플 푸동(Apple Pudong)입니다. 뉴욕 5번가에 놓은 게 보석 상자라면, 상하이에서는 바닥에서 솟아 오른 느낌의 장대한 원통형 유리 구조체를 형이상학적인 오브제로 승화시켰어요. 기이할 정도로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애플 푸동은 향후 중국에서 애플의 상징이 됩니다.

Apple Pudong © Apple
Apple Pudong © Apple

버버리 CEO 출신 안젤라 아렌츠의 ‘마을 광장’

그런데 2011년 애플 그 자체였던 스티브 잡스가 사망합니다. 팀 쿡이 CEO 자리를 물려받았죠. 그럼 애플의 리테일 매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앞서 말한 미니멀한 디자인, 고객 경험의 극대화, 친절한 조언을 주는 직원은 매장을 구성하는 핵심 가치로서 유효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리테일 매장 전략을 짜며 공간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팀 쿡은 2011년 그만둔 론 존슨의 리테일 업무를 맡을 적임자를 계속 수소문했습니다. 그러다 전혀 의외의 필드에서 애플 리테일 전략 2.0을 수립할 인재를 찾습니다. 바로 안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입니다.

안젤라 아렌츠는 IT업계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의 CEO였습니다. 당시 시들시들하던 버버리를 진두지휘하며 고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브랜드를 기사회생시킨 주인공이었죠. 그가 버버리의 CEO 자리를 내려놓고 2013년 애플의 리테일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깜짝 조합이었습니다

아렌츠는 고객 경험 전문가였어요. 그래서 리테일 매장에서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매장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전 지구에 퍼진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애플이 고를 만한 여러 선택지 중 지역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렌츠는 애플 매장이 문화적인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을 광장(Town Square)’이 되어야 했죠.

이런 특징을 정확하게 적용한 시작점이 바로 2016년 샌프란시스코에 만든 애플 유니온 스퀘어( Apple Union Square)입니다. 이를 위해 애플 사옥인 ‘애플 파크’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설계사무소 포스터앤드파트너스(Foster + Partners), 애플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와 머리를 맞댔죠.

Apple Union Square © Apple

애플 유니온 스퀘어는 매장을 통해 광장과 길을 연결하는 개방성을 추구합니다. 모여드는 사람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장소가 되었죠. 이에 맞춰 15년 동안 유지하던 실내 구성에도 새로운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역동적으로 변하는 대로변의 윈도 디스플레이에서 영감을 받은 ‘애비뉴(Avenue)’는 애플 제품으로 음악, 창작물, 앱, 사진 등을 구현하는 곳으로, 크리에이티브 아트 전문가인 ‘크리에이티브 프로’가 전문 지식을 전달합니다. 매장 내부에는 살아있는 나무를 들여와 분위기를 상기하며 고객이 지니어스와 편안히 대화할 수 있도록 ‘지니어스 그로브(Genius Grove)’를 만들었죠. ‘포럼(Forum)’이란 공간은 6K 해상도의 비디오 월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인데요. 여러 아티스트, 작가, 개발자, 기업가가 커뮤니티에 참여해 영감을 주고받고 클래스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투데이 앳 애플(Today at Apple)’의 메인 무대입니다. 공용 와이파이를 갖추고 방문자가 공연을 볼 수 있는 ‘플라자(Plaza)’, 기업 고객에게 실무적인 조언을 줄 수 있는 ‘보드룸(Boardroom)’까지 아렌츠가 제시한 다양한 방향성은 돈 귀신이 붙었다며 욕먹던 애플의 이미지를 상쇄하는 데 도움을 줬어요.

Apple Union Square ‘Today at Apple’ 포럼 행사 © Apple
Apple Union Square © Apple
Apple Union Square © Apple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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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내용은 2023년 3월 24일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