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실질금리와 역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금. 하지만 지난해 높은 실질금리에도 불구하고 금값은 이례적으로 상승했어요.

  • 그 배경에는 금의 수요 증가가 자리하고 있어요. 중국 중앙은행부터 국부펀드, 월가의 자산운용사들이 앞다퉈 금을 사들이고 있죠.

  • 금이 지금 이 시점에 이토록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해 금값은 어떻게 흘러갈지, 이 글을 통해 확인해보세요.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귀금속이 있습니다. 보석 중의 보석이라는 다이아몬드부터 색색의 광석들, 바다의 보물 진주, 오묘한 빛깔의 비취까지. 그러나 이 중에서 귀금속의 제왕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건 단 하나 뿐이죠. 바로 금입니다. 금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금속입니다. 단순 사치품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일부 귀금속과 달리, 금은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죠. 심지어 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부품에도 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금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이거든요. 물론 달러를 포함한 현금이나 채권, 특히 국채 등도 있지만 금만큼 상징적인 안전자산은 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글로벌 경제가 짓눌리고 각종 리스크가 커지는 가운데 또다시 금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부터 국부펀드, 자산운용사까지 금 투자에 뛰어들고 있죠.

지난해 최고의 시간을 보낸 금

그야말로 ‘금값’입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금 시세가 무섭게 뛰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2000달러 선에서 거래됐습니다. 한 달 사이 8.19% 상승한 가격이죠. 이 정도로 가파른 가격 상승률을 기록한 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인해 은행 위기가 불거졌던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입니다.

지난해 11월과 12월을 거치며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1월 16일(현지시간) 기준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2052.1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는 다소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우선 금 가격과 실질금리의 상관관계부터 살펴봅시다. 금은 이른바 안티 달러(anti-dollar)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금 가격은 달러라는 화폐 가치를 나타내는 척도인 미국의 실질금리와 역행해요. 쉽게 말하면 실질금리가 오르는 국면에서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금보다 달러에 투자심리가 쏠린다는 겁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금과 금리의 상관관계 Bloomberg

따라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금값이 하락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최근 고금리가 유지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은 완화되며 실질금리가 오르고 있거든요. 특히 지난해 9월 실질금리는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날 금 가격은 0.5% 하락하는 데 그치면서 하방 지지가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과거 실질금리가 이 정도로 높았던 때에는 금 가격이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며 “기존의 방정식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어요.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걸까요?

정답은 사실 명백하죠. 가격이 오른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즉 금에 대한 매수세가 몰리면서 금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매수세를 주도하는 건 하나의 집단이 아닌데요. 중국을 필두로 한 중앙은행부터 국부펀드, 월스트리트의 자산운용사들, 그리고 기회를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까지 일제히 금 투자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곳간 가득히 채우는 금, 금, 금!

지난해 10월 1일(현지시간) 세계금협회(WG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무려 800톤에 달하는 금을 순매수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14% 늘어난 숫자죠. 분기 별로 보자면 1분기에는 288톤이었고 2분기에는 175톤, 3분기에는 337톤으로 집계됐습니다. 즉 최근 들어서 각국 중앙은행이 이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금을 매입했다는 얘기입니다.

중국 인민은행의 금 보유량 Financial Times

가장 많은 양의 금괴를 사들인 것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었습니다. 이 은행은 올해 181톤의 금을 사들여 금 보유량을 외환보유액의 4%까지 끌어올렸어요. 11개월 연속 금을 사들인 덕분이죠. 게다가 중국이라는 국가의 특성상, 실제 금 매입 규모는 이 수치보다도 클 수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중국 중앙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보고하는 금 매입량에 비해 실제로 더 많은 금괴를 사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했고요.

이외에도 폴란드, 튀르키예 등 국가의 중앙은행도 활발하게 금을 매입했습니다. 특히 튀르키예는 불안정한 세계 경제 속에서 통화 약세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금 투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여요. 이는 다른 신흥국 역시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중앙은행의 금 사재기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7월 인베스코는 약 21조 달러의 자산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57개 중앙은행과 85개 국부펀드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과반수가 넘는 58%가 금의 매력이 높아졌다는 데 동의했으며, 상당수의 중앙은행은 향후 3년 동안 금을 더 많이 매입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발 빠르게 움직인 건 중앙은행이나 국부펀드만이 아닙니다. 자산운용사들도 금을 주목하고 있어요.지난해 8월 블룸버그에 따르면, 12개 자산운용사들은 향후 12개월 동안 금에 대한 노출을 최소 유지하거나 늘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산운용사의 3분의 2 이상이 금 가격의 추가 상승을 예상했죠. 독일 자산운용사 DWS 그룹의 상품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다르웨이 쿵은 “억눌린 금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금 투자에 있어서)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이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시장을 움직이는 소위 큰손들이 일제히 금 투자에 뛰어드는 이유, 그건 바로 금의 안전성 때문입니다. 금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는 실물자산입니다. 즉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화폐 대체수단이라는 거죠. 물론 대체할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통화로든 현금화하는 것도 용이하고요. 게다가 공급량이 한정되어 있어 신용 리스크나 카운터파티 리스크 등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세계정세가 불안정할수록 금의 가치는 상승합니다.

최근 금에 대한 수요가 상승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죠. 한번 살펴볼까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동에서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게다가 주변국들의 참전 가능성도 있어, 확전의 불씨도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강해지면서 두 국가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고요. 쉽게 말하면,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에 위험회피의 필요성이 높아진 겁니다.

게다가 투자자에게 있어 금의 역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위험회피를 위한 피난처로만 여겨졌다면, 이제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데 유효한 투자처로 자리매김한 거죠. 특히 월스트리트의 전통적인 투자 전략인 60/40 포트폴리오(주식 60%, 채권 40%)가 무너지면서 그 빈 공간을 금이 채우고 있습니다. WGC의 재스퍼 크롤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기존 투자 자산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찾고 있다”며 “금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올해도 금은 ‘금값’일까?

현재 금에 대한 투자심리가 뜨거운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앞으로의 전망이에요. 만약 지금이 금 가격의 정점이면, 다들 금을 사들인다고 추종 투자해 봤자 손해만 볼 테니까요. 따라서 금 가격의 상승 여력이 남아있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한데요. 월스트리트에서는 여전히 금 투자 기회가 남았다고 말합니다. 금값을 끌어올린 불안요소들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금 가격에 그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인물의 생각부터 살펴볼까요? 세계 최대 금 채굴 기업인 뉴몬트의 최고경영자(CEO) 톰 팔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금값이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나리오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그가 주목한 것은 중동 전쟁입니다. 그는 중동 전쟁이 발발한 이후 금 선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 요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봤어요.

중동 분쟁 발생 이후 급등한 금값 Financial Times

TD은행의 바트 멜렉 글로벌 원자재 전략 책임자 역시 이러한 전망에 힘을 더했는데요. 그는 “확전 가능성에 따라 금값이 급등하고 있다”며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금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단기적으로 금 가격에 대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요소들도 분명 있습니다. 금과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의 수익률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 국채 수익률이 안정화되며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는 점, 중동 전쟁을 계기로 짧은 기간 내에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 등인데요. 중요한 건 금의 투자매력은 여전히 훼손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즉 불안요소가 불거지면 언제든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의미예요. 그야말로 그 무엇보다 안전한 피난처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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