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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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싱가포르, 도쿄는 도시의 위기 앞에서 플레이스메이킹을 선택했고, 그 전략의 중심에는 민간 디벨로퍼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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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킹스크로스, 싱가포르 PLQ, 도쿄 마루노우치 사례는 플레이스메이킹이 자산과 도시의 가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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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김정빈 도시공학과 교수가 세 도시의 전략과 디벨로퍼의 역할을 분석하고, 지금 서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합니다.
런던, 싱가포르,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성공적인 개발사업을 이끈 디벨로퍼들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 지역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에 집중해왔다. 이들은 공공공간 활성화와 지역 정체성 형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계 구축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이상주의나 도시를 사랑하는 낭만적 열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그들을 변화시켰다. 기존 개발 방식은 한계에 직면했고, 공실률 증가, 인구 및 인재 유출, 문화적 활력 저하 등 도시 쇠퇴의 징후는 민간 디벨로퍼들에게도 근본적 전환을 요구했다.
과연 이러한 변화의 전환점에서 각 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떠한 상황들이 수익 중심의 디벨로퍼들로 하여금 도시의 ‘정체성’과 ‘공공성’을 고민하게 만들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들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대 초반, 각 도시가 직면했던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WHY 1. 공실의 증가와 도시의 위기
[런던] 현재 모리도시연구소의 도시경쟁력 지수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런던.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런던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1990년대 후반 IT 붐과 경제 성장으로 런던 도심의 오피스 수요는 급증했고, 공실률은 2000년경 약 2%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2001년 닷컴버블 붕괴와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상황은 급변했고, 2003년 무렵에는 도심 오피스 공실률이 약 15%까지 치솟았다. 이는 공급 과잉과 수요 위축이 동시에 발생한 결과였다.
수요는 줄었지만, 이전에 착공된 오피스 건물들이 속속 완공되며 공급 과잉 현상이 이어졌고, 이는 임대인 간 출혈 경쟁으로 번졌다. FPDSavills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동안 프라임 오피스 임대료는 평균 20% 하락했고, 2003년 상반기에도 추가로 7%가 더 떨어졌다. 당시 런던은 심각한 부동산 침체에 직면해 있었다.1
이 시기 런던의 국제적 위상도 흔들렸다. 9·11 테러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빠르게 회복하며 런던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고, 도쿄는 장기 불황을 벗어나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의 재부상을 추진하고 있었다. 유럽 내에서도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테르담 등이 런던의 높은 임대료와 공실 문제를 기회로 삼아 적극적인 기업 유치에 나섰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로화 도입과 함께 ECB(유럽중앙은행)를 유치하며 금융 허브로 성장하고 있었고, 파리는 라 데팡스(La Défense)의 현대식 오피스와 국가 차원의 인센티브로 기업을 끌어들였다. 암스테르담은 영어 사용 환경과 법인세 혜택을 앞세워 기업 유치 경쟁을 가속화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03년 런던의 위상에 대한 논의에서 “런던의 성공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로 이어졌고, ‘글로벌 금융센터 1위’라는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2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런던—잘 정비된 거리, 활기찬 공공공간, 아름다운 공원이 어우러진 도시—는 당시와는 거리가 있었다. 2000년대 초 도심은 극심한 차량 정체와 매연, 방치된 공공공간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컸고, 도시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이 본격적으로 고조되었다.
당시 도시 환경을 진단한 도시계획가 얀 겔(Jan Gehl)은 “런던은 여가와 보행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었으며, 거리에서 어린이와 노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보고서는 도시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했고, 이는 오랜 시간 방치되어 온 도시 공간의 개혁 필요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도시 침체와 환경 위기는 런던이 기존의 물량 중심 개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싱가포르] 2022년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GFCI)에서 싱가포르는 마침내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1위의 금융 허브에 올랐다. 비록 2024년에는 다시 홍콩에 이어 4위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 하나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24시간 살아 있는 CBD’와 연간 4,500만 명을 끌어들이는 마리나베이샌즈 개발은 이러한 도시 역동성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기 20여 년 전, 싱가포르의 상황은 어땠을까?
2000년대 초반, 싱가포르 도심의 오피스 시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지역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 닷컴버블 붕괴, 2003년 사스(SARS) 사태가 연이어 터지며 오피스 수요는 급감했고, 공실률은 급등했다. 2003년 도심 오피스 공실률은 약 18%에 달하며 2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프라임 오피스 임대료는 42%나 하락해 2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3
공실 증가와 임대료 급락은 도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렸고, 싱가포르는 국제 경쟁력 상실에 대한 깊은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게 도심의 경쟁력 저하는 곧 국가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였다.
당시 주요 경쟁 도시였던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에도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싱가포르는 심화되는 공실과 경기 위축 속에서 기업 유치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다. 여기에 상하이 등 신흥 도시들까지 빠르게 부상하면서 싱가포르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2001년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싱가포르 역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되었고, 현지 언론은 국가적 위기를 집중 조명했다. 같은 해 10월《비즈니스 타임스》는 고촉통 총리가 “싱가포르가 1965년 독립 이후 최대의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고 발언한 내용을 보도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4
당시 싱가포르는 ‘깨끗하지만 권위적이고 활력이 부족한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이러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문화적 매력과 여가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인식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도쿄] 도쿄에서도 특히 마루노우치는 현재 가장 활기찬 중심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지가 1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만 연간 약 2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임대수익을 창출할 정도로 기업과 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마루노우치는 ‘항상’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었을까?
이 지역은 메이지유신 이후 미쓰비시지쇼에 의해 일본 근대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일본 경제 전반이 침체에 빠지면서 마루노우치의 위상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직장인들로 붐비는 거리’, ‘중후장대한 대기업들만 모여 있는 무거운 분위기’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과거 젊은이들의 선망 대상이었던 마루노우치에 대한 기대감은 점차 식어갔다.5
오랜 시간 만실(滿室)이 당연시되던 마루노우치 오피스 빌딩에 공실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변화였다. 특히 이탈한 기업들 중에는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가진 신흥 기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도시의 생명력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대두되었다. 당시 미쓰비시지쇼 경영진조차 “정말 충격적이었다. 테넌트가 빠져나갔고, 임대료도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의 마루노우치는 그만큼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위기는 마루노우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불황 이후, 도쿄 전반에서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잃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다. 한때 뉴욕과 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도쿄는, 2000년대 들어서는 오히려 홍콩이나 싱가포르와의 경쟁에서도 뒤처질 위기에 놓였다. 일본 경기 침체와 함께 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대로는 위험하다. 도쿄를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져나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도시경쟁력 회복을 위한 대대적인 전략을 추진하게 되었고, 마루노우치의 중심 주체인 미쓰비시지쇼 또한 단순한 ‘건물 관리’ 수준을 넘어서는 특단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 https://www.globest.com/2003/07/08/central-london-office-take-up-falls-by-half/ ↩︎
- The Global Position of London as a Global Financial Centre Report, 2005년 11월 ↩︎
- https://www.edgeprop.my/content/singapore-property-sector-update#:~:text=consolidation%20of%20Singapore%20banks%2C%20severe,lifted%20the%20factor%20to%2033x ↩︎
- https://www.nlb.gov.sg/main/article-detail?cmsuuid=459b32e3-35c3-4112-9042-94aaa9c13057#:~:text=During%20a%20dialogue%20session%20held,1 ↩︎
- 미쓰비시 지교 이토오 유유케이 이사 ‘선택받는 나라, 선택받는 도시로’ 2008년 발표자료 ↩︎
▶ 플레이스메이킹 시리즈
① 세계 주요 도시의 화두가 된 플레이스메이킹
② 플레이스메이킹을 완성하는 요소 3가지
③ 글로벌 디벨로퍼들이 말하는 플레이스메이킹의 효과
④ 글로벌 디벨로퍼들이 플레이스메이킹을 찾은 이유 (1)
⑤ 글로벌 디벨로퍼들이 플레이스메이킹을 찾은 이유 (2)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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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5년 6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