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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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채무불이행 사태로 중국 부동산 위기를 촉발한 헝다가 2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번에는 헝다 뿐만 아니라 비구이위안, 완다그룹, 위안양과 같은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일제히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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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에게 자금을 융통해준 금융권에까지 유동성 위기가 전염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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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사뿐 아니라 토지사용권을 판매해 재정을 충당하던 지방정부도 위태로워졌다는 사실. 중국 부동산 위기가 중국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려드릴게요.
‘회색 코뿔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뜻하는 경제 용어입니다. 덩치가 큰 코뿔소가 돌진해오는 것을 보고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들이닥치기까지 시간이 남았다며 미적대는 모습을 경제 위기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죠.
부동산 관련 부채는 중국 경제에 드리운 경제적 불안의 진원지로 꼽힙니다.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과도한 차입으로 인해 기업 부채가 급증하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그림자 금융의 규모가 부풀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3대 회색 코뿔소로는 기업 부채와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이 지목되는데 이는 모두 부동산과 연관돼 있죠.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부채 비율이 제조업의 네 배에 달할 정도로 악화되자 중국 정부는 2020년부터 ‘세 개의 레드라인 정책’이라는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부동산 개발 업체들을 대상으로 ①자산 대비 부채 비율 한도 70% ②자기자본 대비 순 부채 한도 100% ③단기차입금 대비 현금 비율 1배 이상 등을 지키도록 정한 거에요.
하지만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는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설 만큼 부채가 심각했고 결국 채무불이행 우려로 이어졌어요.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해요.
줄지어 유동성 위기 마주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
사건의 시작은 지난 7월 완다그룹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완다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다롄완다 상업관리그룹이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약 4억 달러 중 절반 이상이 부족한 상태라고 채권단에 통보했기 때문이죠. 이후 완다그룹은 계열사 자산을 매각해 간신히 채권을 상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다시 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지난 8월 7일 비구이위안이 만기가 돌아온 달러 채권 2종의 이자 2250만 달러를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30일 간 상환 유예를 신청한 뒤 9월 4일 이자를 지급하긴 했지만, 비구이위안이 앞으로도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비구이위안의 총 부채는 1조 3640억 위안에 달합니다. 이 중 당장 막아야 할 채권 원리금은 157억 200만 위안이죠. 갚아야 할 빚은 산더미 같은데 수익성마저 악화되고 있습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적자를 냈어요. 이에 지난달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비구이위안의 신용등급을 ‘Caa1’에서 ‘Ca’로 3단계 강등하기에 이르렀어요. ‘Ca’는 디폴트를 의미하는 C단계 바로 윗단계로, 비구이위안의 디폴트가 임박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디폴트 위기에 직면한 부동산 개발업체가 여럿이라는 데 있습니다. 지난 8월 14일에는 국유 부동산 개발업체인 위안양그룹이 2094만 달러 규모의 채권 이자를 갚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위안화 채권 거래가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2021년 부동산 위기의 시발점이 된 헝다 또한 17일 뉴욕 법원에 ‘챕터15’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르렀죠. 챕터 15는 외국계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미국 내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하는 파산 절차에요.
금융권까지 뒤흔드는 부동산 불황
이처럼 굴지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잇따라 흔들리면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권도 유동성을 걱정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그림자 금융’으로 불리는 비은행 금융기관, 즉 신탁사가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비구이위안 사태 이후, 운용자산이 1조 위안이 넘는 중국 대형 자산운용사 중즈그룹이 어려움에 직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죠. 중즈그룹 계열사인 중룽국제신탁이 총 규모가 3500억 위안에 달하는 신탁 상품들의 지불을 중단했기 때문이에요.
JP모간은 중룽국제신탁의 총 자산규모는 6290억 위안인데, 그 중 670억 위안이 부동산 관련 대출 자금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JP모간은 이를 두고 “부동산 대출을 받은 차주에 대한 정보가 공시되어 있지 않다”면서 “부동산 관련 대출 전부가 위험하다고 가정하고 있다”고 밝혔어요.
월스트리트에서는 향후 중국 금융권 전반에 유동성 문제가 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부동산 개발업체는 주로 선분양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부동산 개발업체의 부채에 집중돼 있는 신용 리스크가 저조한 부동산 경기로 인해 더 악화되고 있다”고 짚었어요.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골드만삭스는 중국 부동산 시장 위기로 1조 9000억 위안 규모의 신용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관 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은행은 예상 신용손실 규모의 61%, 신탁사는 28%, 보험사는 5%를 부담하게 될 것으로 예측됐어요. 골드만삭스는 대규모 국영 은행들은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규모 은행과 신탁사는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부동산에 의존해온 중국 경제
중국 경제가 가진 구조적 결함을 고려하면, 연쇄 디폴트 위기는 더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경제 발전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경제 성장을 견인한 주요 동인으로는 수출과 인프라 투자, 부동산 개발 세 가지가 꼽힙니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위한 정부 지출, 부동산 개발에 크게 의존해왔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 성장세가 위축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죠. 인프라 투자와 부동산 개발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이는 토지가 국유화되어 있는 중국의 특수한 제도인 ‘토지사용권’과 관계가 있어요.
토지사용권은 중국의 지방정부가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활용해온 ‘필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부동산 산업은 일반적으로 부동산 개발 업체가 지방정부로부터 토지사용권을 구매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지방정부는 이 수익금을 도로·철도·통신 등 인프라에 투자해왔어요.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 성장률도 폭발적으로 높아졌죠. 이에 중국 정부는 경기 둔화 조짐이 보일 때마다 지방정부들이 인프라 사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전략을 취해왔습니다.
토지사용권 수입 급감한 지방정부
부동산 경기 악화는 토지사용권을 구매하는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방정부는 일반적으로 토지사용권을 팔아 세수의 30~40%에 달하는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토지사용권이 팔리지 않으면, 지방정부가 인프라에 투자할 여유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실물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배경이죠.
인프라에 투자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진 부채도 경제에 부담을 지우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지방정부 자산을 담보로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특수법인인 지방정부융자기구(LGFV)라는 제도가 있는데요. LGFV는 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LGFV의 부채는 지방정부의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른바 ‘숨겨진 부채’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숨겨진 부채 규모가 적지 않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내 LGFV 조달 자금이 2019년 40조 위안에서 2022년 말 66조 위안으로 65%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스위스의 금융그룹 UBS는 LGFV 채권에 대한 은행들의 익스포저가 49조 위안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게다가 전체 LGFV 채권 중 향후 3년간 만기가 도래하는 비중이 30%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세수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위험에 처하게 될 지방정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요.
이처럼 지방정부가 재정 건전성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과거와 달리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부동산 경기가 나아지지 않으면 중국 경제 성장률이 이전보다 크게 둔화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금리 인하보다는 부동산 정책 완화로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중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실제 중국은 지난달 자국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내리는데 그쳤는데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위안화 가치 하락을 방어해야 하다 보니, 금리를 보수적으로 인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보입니다.
대신 중국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부동산 경기를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어요. 인민은행이 지난달 말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를 낮추라는 지침을 내렸고, 이후 중국 주요 은행들은 지난 7일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 대한 모기지 금리를 인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더불어 베이징·상하이·선전·광저우 등 4대 1선 도시를 비롯한 20여 개 도시는 매수했던 주택을 처분한 무주택자가 새로 매수하는 주택을 생애 첫 주택으로 간주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되면 주택 구매 첫 납부금인 ‘서우푸(首付)’ 비율이 대폭 낮아져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고 금리도 낮아져요. 이 같은 조치는 2선 도시를 거쳐, 곧 중소 도시로 퍼져나갈 것으로 보여요.
이 같은 정책 완화로 베이징의 주택 거래도 꿈틀대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동산 조사 업체인 차이나인덱스아카데미에 따르면, 9월 4일에서 10일 동안 베이징의 신규 주택 거래는 매매 면적 기준으로 전주보다 16.9% 늘어났어요.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부동산 거래의 단기적인 반등을 가져올 순 있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까지는 나아가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규모 세계 2위, 글로벌 공급망의 40%, 성장 동력의 30%를 담당하고 있는 중국. 중국의 경제 위기는 크든 작든 영향을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대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더 크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향후 정부와 기업의 대중국 디리스킹 노력이 한국 경제 발전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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