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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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고엔지의 90년 된 동네 목욕탕, 고스기유(小杉湯)를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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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대째 운영되는 목욕탕 ‘고스기유’는, 목욕탕을 넘어 공유 오피스, 예술가 및 브랜드 협업행사 등을 여는 지역 커뮤니티 중심지로 발전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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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형 디벨로퍼 ‘도큐부동산’이 하라주쿠에 만든 대형 복합문화공간에 2호점을 내며 해당 건물의 핵심 시설로 떠오르기도 했지요. 욕실 없는 집을 찾기 어려운 요즘, 옛 목욕탕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일본의 MZ세대 사이에서 핫한 장소는 어딜까요?’ 대부분 사람이 시부야의 새로 생긴 쇼핑몰이나 신주쿠의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도쿄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은 목욕탕이 인기라면 어떨까요? MZ세대의 발길을 이끄는 색다른 목욕탕을 소개합니다.
젊은 층이 찾는 90년 된 동네 목욕탕
신주쿠에서 4정거장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엔지(高円寺)는 도쿄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동네입니다. 골목 곳곳에 자리한 빈티지 의류점, 서점, 카페 등이 주는 소소한 매력에 이끌려 젊은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이죠.
고엔지 역에서 도보 5분 정도 거리의 주택가에는 고스기유 (小杉湯)라는 대중목욕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려 90년의 세월 간 변치 않고 동네 주민들을 맞이합니다.


한때 일본 전역에 ‘센토(銭湯)’라 불리는 대중목욕탕이 빠르게 보급되었지만, 가정마다 욕조가 보급되면서 점차 그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도쿄 내 목욕탕 수는 1965년 약 2,700개에서 현재 약 450개로 감소했으며, 하루 평균 방문객 수도 1968년 530명에서 150명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고스기유는 예외입니다. 평일에는 400~500명, 주말과 공휴일에는 800~1,000명이 방문하며, 특히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우나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평범한 동네 목욕탕이 이 정도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느슨한 관계를 맺는 공간, ‘사일런트 커뮤니케이션’
노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동네 목욕탕이 젊은이들의 핫 스폿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대부분의 가정에는 샤워 시설과 욕조가 갖춰져 있는데, 왜 목욕탕을 찾는 걸까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2016년 고스기유 대표로 취임한 히라마쓰 유스케(平松佑介)씨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단골끼리 가볍게 대화하고 인사는 하지만, 너무 친밀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이 있다.”
고스기유에서는 ‘느슨한 관계’가 가능합니다. 목욕탕을 자주 방문하다 보면 익숙한 얼굴들이 생기고,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게 됩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단골들 사이에서 흐르는 대화가 귀에 들어오고,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들지요.


이름도 나이도 직함도 모르지만, 얼굴은 알고 있습니다. 말없이 혹은 조용히 주고받는다고 해서 우리는 이를 ‘사일런트 커뮤니케이션 (silent commun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점이 목욕탕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라마쓰 유스케(平松佑介) 대표, 일본경제신문 인터뷰 중
현대 사회에서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이 사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고스기유는 젊은이들에게 ‘느슨한 유대감’을 제공하며, 소속감과 안도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젊은이들에게 ‘얼굴’과 ‘얼굴’의 관계를 느낄 수 있는 목욕탕은 안도감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장소가 아닐까요?
히라마쓰 유스케(平松佑介) 대표, 일본경제신문 인터뷰 중

고스기유의 탈의실 벽면에는 고민 상담 코너가 있습니다. 손글씨로 고민을 써서 게시판에 붙여 놓으면, 이를 본 방문객이 자유롭게 답변하죠.
예를 들어, 여탕에는 ‘현재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사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는 연애 상담이 올라와 있는데요. 이를 본 다른 방문객은 친구의 고민 상담에 응하듯 솔직한 의견을 전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과정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굳이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말을 걸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같은 곳을 다니는 아는 사람들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의 안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히라마쓰 유스케(平松佑介) 대표, 일본경제신문 인터뷰 중
하지만 단지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이들이 고스기유를 방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스기유는 한 발 더 나아가 ‘목욕탕이 있는 삶’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목욕탕이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90년의 역사를 지닌 고스기유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고민하던 히라마쓰 대표는 고스기유에 옆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지은 지 40년도 넘은 작은 아파트는 히라마쓰시의 할아버지가 구입해 고스기유과 연계된 시설로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죠. 재건축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어떤 시설로 만들지 전혀 아이디어가 없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고스기유의 팬이자 커뮤니티 만들기에 능숙한 건축가 가토(加藤) 씨를 만나면서 ‘아파트를 철거하기 전 1년간 다양한 실험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게 무료로 아파트에 거주하도록 하며, 이 콘셉트에 동의한 뮤지션, 아트 디렉터, 편집자 등이 입주해 약 10명 정도가 생활하면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 겁니다.
고스기유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고 예술가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거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는 민박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또한 그림을 잘 그리는 직원이 고스기유를 비롯한 도쿄 내 목욕탕을 일러스트로 설명하는 ‘목욕탕 도해(銭湯図解)’를 제작했는데, 이 책이 SNS에서 화제가 되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이 생겨나면서 고스기유에 활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이후 아파트는 철거되었고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1년간 살았던 멤버들은 목욕탕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이를 사업으로 전개하기 위한 회사를 만듭니다.
이름은 ‘주식회사 센토구라시 (株式会社銭湯ぐらし, 센토는 목욕탕, 구라시는 삶을 의미)’입니다. 이들은 고스기유 옆에 공유 오피스 ‘고스기유 토나리 (小杉湯となり)’를 엽니다. 2층과 3층은 업무가 가능한 공간이며, 1층에는 주방과 큰 테이블, 의자 12석이 있어 작은 모임과 행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월 2만 2천 엔 (약 20만 원)을 내고 공유 오피스의 회원이 되면 업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것에 더하여 월 10회까지 고스기유 목욕탕 이용이 가능합니다. 2층에서 일을 한 후 고스기유에 들러 피로를 풀고, 때로는 1층에서 열리는 이벤트에 참가한 후 고스기유에 몸을 담그는 그야말로 ‘목욕탕이 있는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슨한 교류가 가능한 목욕탕이 있는 업무 공간’이라는 콘셉트가 인기를 끌면서 회원 수가 늘기 시작합니다.
또한 ‘센토구라시’는 매주 주말 아트 전시, 마르쉐, 워크숍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이벤트와 목욕탕을 연계한 기획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예를 들어 수제 맥주 워크숍에서 나온 술 찌꺼기를 탕에 넣거나, 매실 시럽 만들기 체험 후 남은 매실 찌꺼기로 향긋한 목욕탕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고스기유를 방문하는 젊은 층이 늘었습니다.
고엔지 동네 전체가 ‘집’입니다
센토구라시는 더 나아가, 고엔지 전체를 하나의 집처럼 활용하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고엔지 주변에는 목욕탕이 없는 아파트가 여러 채 존재하는데요(1960년대 지어진 아파트 중 당시 급속히 보급된 대중 목욕탕으로 인해 물건 내에 목욕탕을 만들지 않은 아파트가 있습니다). 고스기유와 센토구라시가 목욕탕 없는 인근 아파트를 통째로 빌려서 임대를 놓은 것입니다. 목욕탕이 없는 아파트는 임대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센토구라시는 ‘고엔지 전체를 집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발상으로 ‘목욕탕이 없다’는 단점을 극복합니다.
목욕탕이 없는 아파트에 입주한 거주자에게 고스기유 이용권을 포함한 임대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임대료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확장되는 효과를 얻습니다.
임대료는 5만~6만 엔 정도를 상정하고, 고스기유 토나리의 회원비 약 2만 엔을 더해 총 8만 엔 정도면 살 수 있도록 설정했습니다. 보통 마을 만들기를 역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가 설계하는 새로운 콘셉트에서는 목욕탕이 중심이 되어 마을을 재구축합니다
히라마쓰 유스케(平松佑介) 대표, 일본경제신문 인터뷰 중
최근에는 목욕탕 없는 물건을 일부러 고르는 20~30대도 늘고 있습니다. 월세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집의 기능이나 물건을 줄이고 심플하게 살고 싶다는 미니멀리스트적인 삶을 지향하는 젊은이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는 점에서 시작된다
히라마쓰씨가 대표로 취임할 당시, 고스기유는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도 인기 있는 장소였지만 점점 목욕탕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면서 앞으로 안정적으로 경영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스기유가 앞으로 50년 후에도 100년 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고객층을 개척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라마쓰 유스케(平松佑介) 대표, 일본경제신문 인터뷰 중

고스기유의 1대 대표인 할아버지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만들었고, 2대인 아버지는 다양한 탕을 도입하고 갤러리를 겸한 대기 공간을 만듬으로써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3대인 유스케 씨는 고스기유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정도의 지역 내에서 지역 정보를 발신하고 수신하는 기지가 되는 ‘지역 교류의 장’으로 고스기유를 재정의했습니다. 교류의 장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모이는 포인트를 늘리는 것입니다.
라이브, 이벤트, 워크숍, 카페, 마르쉐 등 이러한 활동이 ‘점(포인트)’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은 고스기유 뿐만 아니라 고스기유에 관여하는 고객이나 기업이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모이는 사람들의 수를 늘릴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히라마쓰 유스케(平松佑介) 대표, 일본경제신문 인터뷰 중
고스기유는 2024년 봄,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하라주쿠의 재개발 일환으로 지어진 새로운 복합빌딩인 ‘하라카도’의 지하 1층에 고스기유 2호점을 오픈한 것입니다. 개관 당시부터 고스기유 2호점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화제였습니다. 동네 목욕탕이 대형 디벨로퍼가 진행하는 재개발 프로젝트에서 핵심 시설로 등장하게 된 겁니다.
재개발을 맡은 도큐 부동산의 젊은 직원이 고스기유에 다니는 팬이었다고 합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역 커뮤니티를 조성하며 새로운 목욕탕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이 ‘커뮤니티’를 하라주쿠에서 재현합니다.

커뮤니티는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업이 억지로 만들려고한다고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히라마쓰씨는 ‘꾸준히 점을 계속 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합니다. 그 점에 사람들이 모이고, 모인 사람들이 교류를 하며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갑니다. 커뮤니티의 수가 늘어나면 고스기유에 오는 손님 수도 늘어나고 이는 고스기유가 존속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이러한 선순환이 지금 고스기유에서 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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