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맨해튼 핵심 상권의 1층 가용 공간이 2021년 고점 대비 41% 줄며, ‘좋은 1층’의 희소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 경험형 업종이 빈 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있으며, 피클볼·파델 같은 소셜 스포츠부터 메타의 체험 매장까지 ‘몸이 참여하는 경험’이 오프라인의 핵심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 한편 상권 간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세계관이 또렷한 브랜드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Editor’s Note

지난 3월,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허드슨 야즈, 브룩필드 플레이스, 록펠러 센터 같은 상징적인 상업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출장의 목적 중 하나였는데요. 이 글은 그때 거리에서 관찰한 장면과 현지 자산운용사 대표, 건축가와 나눈 대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관련 보고서와 기사를 찾아보며 정리한 기록입니다.

1부는 리테일(맨해튼의 1층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은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2부는 도시 구조(빈 오피스가 집으로 바뀌는 전환이 거리와 동네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룹니다.

뉴욕 맨해튼의 평범한 고층 빌딩 1층에 작은 옷 가게가 붙어 있는 걸 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거대한 건물의 꼬리(tail)에 달려 있으니까 리테일(retail)이라고 부르는 걸까?

어원을 찾아보니 아니었다. 리테일은 앵글로 프랑스어 retailler에서 유래한 말로, ‘다시 자르다’ 혹은 ‘조각내다’라는 뜻이다. 도매(wholesale)가 큰 단위로 거래하는 것이라면, 소매(retail)는 상품을 잘게 나눠 최종 소비자에게 파는 행위다. 큰 것을 잘게 나눠 사람에게 닿게 하는 일. 그런데 내 엉뚱한 상상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거대한 자산 아래 붙은 작은 소비 단위라는 이미지는 현대 복합개발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다만 뉴욕에서 리테일은 때로 건물의 꼬리가 아니라 건물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매디슨 애비뉴와 5번가 사이 57번가를 걷다가 멀리서도 예사롭지 않은 건물을 발견했다. 트렁크 가방이 큼지막하게 쌓여 있는 형상. 알고 보니 루이비통 건물 리뉴얼 기간 동안 공사 가림판을 브랜드의 상징인 트렁크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공사 중인 건물조차 브랜드의 무대가 된다.

공사 중인 건물조차 브랜드의 무대가 된다. 리뉴얼 중인 루이비통 건물. (사진=손현)

1층이 어떤 브랜드로 채워져 있느냐가 그 건물의 성격을, 나아가 그 거리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그리고 지금 뉴욕에서는 그 1층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좋은 1층이 귀해지고 있다

CBRE에 따르면 맨해튼 16개 핵심 상권(corridor)의 1층 직접 가용 공간은 2021년 2분기 290개에서 2026년 2분기 170개로 41% 줄었다. 전면 가시성 기준의 가용률도 24.4%에서 14.8%까지 내려왔다. 팬데믹 직후 비어 있던 점포들이 빠르게 채워졌다는 의미다. 공급이 가장 빠듯한 상권에서는 체결 임대료가 호가의 90%에 달하며, 임대인의 협상력이 강화된 모습이다.

맨해튼 내 핵심 상권 16곳 (자료: CBRE, Manhattan Retail Figures Q2 2026)
맨해튼 16개 핵심 상권의 1층 직접 가용 공간은 2021년 고점 대비 41% 줄었다. (자료: CBRE, Manhattan Retail Figures Q2 2026 · UNFOLD 재가공)

브랜드들이 1층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대규모 내부 공사가 필요한 공간보다, 비교적 바로 열 수 있는 ‘턴키 스페이스(turnkey space)’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공사비와 오픈 리드타임이 길어지면 마케팅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지금의 리테일은 단순히 임차 경쟁이 아니라 개점 속도 경쟁이기도 하다. 바로 촬영하고, 바로 오픈하고, 바로 화제를 만들 수 있는 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단체 REBNY의 2026년 상반기 보고서도 같은 흐름을 짚는다. 소호와 매디슨 애비뉴에서 실제 마케팅 중인 매장은 20개가 채 되지 않고, 자리를 못 구한 임차 수요는 주거 지역과 신흥 지구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귀해진 1층에 어떤 브랜드들이 들어오고 있을까.

몸이 참여하는 경험이 들어온다

팬데믹 이후 뉴욕의 리테일은 경험형 업종이 이끌고 있다. CBRE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맨해튼에서 파인아트·엔터테인먼트 업종은 약 130만 sf(약 12만 m²), 95건의 계약을 기록했다. 2024년 한 해에만 약 66만 sf를 임차해 연간 리스 물량의 19%를 차지했고, 2026년 2분기에도 엔터테인먼트 업종은 약 10만 8천 sf를 임차해 F&B에 이어 두 번째로 활발한 업종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풍선을 소재로 한 체험형 전시 벌룬 뮤지엄(Balloon Museum)이다. 8월 초 로어맨해튼 시포트 지구의 틴 빌딩(Tin Building)에 미국 첫 상설 플래그십을 연다. 이곳은 원래 스타 셰프 장 조지(Jean-Georges Vongerichten)가 약 2억 달러를 들여 만든 푸드홀이 4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난 자리다. 바로 옆 피어 17에는 몰입형 아트 기업 미아울프(Meow Wolf)가 75,000sf를 임차했는데, 지난해 맨해튼 최대 규모의 리테일 계약이었다. F&B가 떠난 자리를 ‘체험’이 채우는 셈이다.

심지어 메타(Meta)는 5번가 697번지에 15,000sf(약 1,400m²) 규모의 리테일 매장을 열었다. AI 안경과 VR 헤드셋을 직접 체험하는 공간인데, 2025년 팝업으로 시작해 하루 1,000~1,500명이 찾아오자 10년 장기 임대로 전환했다. 소셜미디어의 대명사가 물리적 매장을 낸 것 자체가 흥미롭다.

야외 공원에서나 볼 법한 스포츠도 상업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근처 빌딩 1층 일부를 실내 피클볼 클럽 피클원(Pickle1)이 임차해 운영 중이었고, 윌리엄스버그를 걷다가 들른 파델 하우스(Padel Haus)에서는 클럽 간 교류전이 한창이었다. 파델 하우스에는 식음료와 휴게 공간이 있었고 라켓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래 머물수록 식음료, 패션, 웰니스 소비도 따라붙는 구조다.

월스트리트 근처 빌딩 1층 일부를 임차하여 운영 중인 실내 피클볼 클럽 피클원(Pickle1) (사진=손현)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좋아하는 건 뭘까. 맛있는 걸 먹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함께 웃거나 무서워하거나. 이런 것들은 여전히 디지털로 대체되기 어렵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볼 수는 있어도, 좀비 장면에서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치며 동시에 폭소하는 건 극장에서만 가능하다. 피클볼 영상을 유튜브로 볼 수 있어도, 땀을 흘리며 득점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건 현장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오프라인이 살아남는 영역은 ‘몸이 참여하는 경험’이다.

비 오는 날의 매장

매장도 마찬가지다. 보디(Bode)에서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로어맨해튼에 위치한 여성 매장을 보고 차이나타운을 건너 동쪽의 남성 매장으로 갔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향 내음이 풍겨왔고, 우산을 접고 물기를 털고 나니 또 다른 물소리가 들렸다. 매장에 있는 작은 분수 장식에서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차이나타운 근처의 보디(Bode) 남성복 매장 (사진=손현)

점원이 인사를 건넸다. 적당히 다정한 톤으로.

“비 많이 오네. 천천히 둘러보다 가.”

보디는 에밀리 애덤스 보디 아줄라가 2016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빈티지 퀼트나 앤티크 레이스 식탁보 같은 소재로 재킷을 만드는, 독특한 세계관의 남성복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로어이스트사이드에 남성 매장, 슈즈, 테일러링 매장을 나란히 열면서 그 일대를 하나의 인디 리테일 상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쇼핑만 하는 동네가 아니라, 장도 보고, 세탁소도 들르고, 운동도 하는 동네에 있는 게 중요하다.”

창업자의 말이다. 그날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그 매장의 향기, 물소리, 점원의 말투를 기억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온라인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SNS에서 엿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시각에 국한된다. 오프라인 리테일의 경험은 접객하는 사람이 완성한다. 말투, 시선, 행동의 디테일. 처음부터 그 브랜드의 페르소나에 가까운 삶의 양식을 지닌 사람을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중간이 사라진다

그러면 뉴욕의 리테일이 ‘다 살아났다’고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살아난 곳과 고전하는 곳의 차이가 크다.

맨해튼 핵심 상권의 평균 호가 임대료는 sf당 678달러. 환율 1,500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평당 월 약 300만 원으로, 서울 명동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전히 2014년 고점 대비 약 39% 낮다.

대신 상권별로 보면 편차가 크다. 5번가(49~59번가)는 sf당 2,540달러로 평당 월 약 1,130만 원. 어퍼 매디슨은 918달러로 전년 대비 4.9% 올랐다. 반면 타임스스퀘어는 1,400달러로 전년 대비 21.2% 하락했고, 헤럴드스퀘어는 394달러로 12.4% 떨어졌다. 같은 맨해튼 안에서 이 정도 차이가 난다.

같은 맨해튼 안에서도 상권별 1층 임대료는 최대 11배 차이가 난다. (자료: CBRE, Manhattan Retail Figures Q2 2026 · UNFOLD 재가공)

잘되는 곳들의 공통점은 세계관이 또렷한 브랜드가 있거나, 일부러 찾아올 이유가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5번가에서는 케링(Kering) 같은 럭셔리 그룹이 핵심 건물을 9억 6,300만 달러에 매입했고, 매디슨 애비뉴에는 케이트(Khaite) 같은 브랜드가 새 매장을 열었다.

가장 어려운 건 중간 지대다. 비싸지도, 싸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포지션. NYT에 따르면 미국 전체 쇼핑몰 약 900개 중 상위 100개가 전체 섹터 가치의 50%를 차지하고, 하위 350개는 10%에 불과하다. A급 몰의 매출은 연 5%씩 성장하는 반면, B·C등급 몰은 연 5%씩 줄어들며 연간 약 40개가 문을 닫는다. 미국은 2013년 이후 쇼핑몰 6개 중 1개가 폐업했다.

허드슨 야즈 일대 (사진=손현)

허드슨 야즈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인 허드슨 야즈의 Phase 1 쇼핑몰은 사실상 전면 리뉴얼에 들어갔다. 뉴욕의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와서 보신 게 정확해요. 허드슨 쪽도 Phase 1은 예상 대비 실적이 저조해서 요즘 전면 리뉴얼하고 있을 거예요. Phase 2로 넘어간 거죠.”

뉴욕 건축사무소 베이어 블라인더 벨(BBB)에서 몰 프로젝트를 경험한 건축가 석원은 미국의 소비 경제가 “K자 형태를 넘어 이게 고정되는 E자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비의 가운데층이 두터워지는 대신 위와 아래로 갈라지다가 그대로 고정되는 형태. 특히 뉴욕은 임대료가 높아 가성비 포지션도 쉽지 않다.

리테일은 무엇을 파는가

과거의 리테일이 무언가를 사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시간을 보내고,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쇼핑은 이미 디지털로 대체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매장에 가는 이유는 다르다.

대대적으로 투자해 상징적인 지위에 오르거나, 어떻게든 매장에 머물 이유를 만드는 경험이 필요하다. ‘누구에게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파는지’가 흐리면 중간 지대에서 가장 먼저 밀려난다. 비단 뉴욕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극장이든, 매장이든, 피클볼 코트든 사람들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한다. 비 오는 날 문을 열고 들어간 매장의 향기처럼.


손현
건축학을 전공하고 공장을 짓다가 에디터로 직업을 바꿔 퍼블리, 매거진 B, 토스를 거쳤다. 2024년 헤르츠앤컴퍼니를 설립해 상업용 부동산부터 미디어까지 여러 기업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있다. <글쓰기의 쓸모>, <아무튼, 테니스>, <경험을 기획하는 일> 등을 썼다.

참고
CBRE, Manhattan Retail Figures Q2 2026 / Manhattan Retail Report, Q4 2025
REBNY, Manhattan Retail Report H1 2026 (2026.6.25)
NYT, “Not All Malls Are Struggling,” Mar 21, 2026 / “America Closed Malls, but China Kept Building Them,” Aug 31, 2025
Forbes, “Balloon Museum Now Has A Location In New York City,” Jul 2, 2026 / The Real Deal (202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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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6년 7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