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프랑스 아를의 복합 문화 단지 루마 아를(LUMA Arles)은 방문객 수가 아닌 ‘체류의 질’을 자산 전략의 핵심으로 삼습니다.

  • 레지던시·연구·교육이 결합된 연중 운영 구조가 비수기 수요를 안정시키고, 도시 전체의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입니다.

  • 한국 도시 개발에도 같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이 오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

경험은 언제부터 자산의 변수였을까

도시 개발에서 ‘경험’은 오랫동안 부수적 요소로 취급돼 왔다. 공간의 매력을 높이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장식적 개념에 가까웠다. 프랑스 아를1에 위치한 루마 아를(LUMA Arles)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루마 아를은 스위스 후원가 마야 호프만이 아를의 폐쇄된 철도 정비창 부지(약 3만 평)를 재생해 만든 초대형 복합 문화 예술 단지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56m 높이의 비틀린 은빛 타워가 상징이며, 단순한 미술관을 넘어 예술·인권·환경을 주제로 한 실험적인 전시와 연구가 이루어지는 창의적 캠퍼스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서 경험은 감정적 만족의 문제가 아니라, 자산 가치 형성의 핵심 변수로 다뤄진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마 타워. 여러 전시관과 연구 시설이 흩어져 있는 옛 철도 공장 단지를 하나의 문화 구역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기준 구조물이다. ©Luma Arles

경험 기반 자산화2란, 자산의 가치가 면적·용적률·입지 같은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축적되는 사용 경험의 질과 시간에 의해 형성된다는 관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인상’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어떤 성격의 사용자가 그 공간을 점유하는가다.

루마 아를은 이 질문에 명확한 방식으로 답한다. 이곳은 방문객 수를 최대화하지 않는다. 대신 체류 인구의 성격과 체류 기간을 설계한다. 전시 중심의 문화 시설이 만들어내는 것은 일시적 유입이지만, 레지던시·연구·교육이 결합된 구조는 반복적 체류를 만든다. 이 반복성은 곧 도시 자산의 성격을 바꾼다.

체류가 도시 재무 구조를 바꾸는 세 가지 방식

체류가 늘어나면, 도시의 수익 구조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변한다.

첫째, 수익의 시간 분포가 평탄해진다. 시즌 중심의 관광 도시는 수익 변동성이 크지만, 연중 체류 인구가 존재하는 도시는 숙박·식음·교통·상업 전반에서 예측 가능한 흐름을 만든다. 아를 관광청의 2025년 비수기 조사는 이 변화를 수치로 보여준다. 전통적 비수기인 9~10월에도 응답자의 76%가 방문객이 유지되거나 늘었다고 답했고, “문화 프로그램 확대가 체류 연장에 기여한다”는 응답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시즌에 집중되던 수요가 연중으로 분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도시 단위의 현금 흐름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아를 관광청의 2025년 비수기 조사. 파란색은 증가, 빨간색은 유지, 노란색은 감소를 뜻한다. 왼쪽부터 9월·10월(방학 전)·가을방학·비수기 전체 순이다. 비수기 전체 기준 76.2%가 2024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방문객이 유지 또는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둘째, 자산의 가격 기준이 바뀐다. 단기 방문객 중심 도시는 ‘회전율’이 중요하지만, 체류 중심 도시는 ‘점유 시간당 가치’가 중요해진다. 이 전환은 인근 상업 자산과 숙박 자산의 임대 기준, 투자 회수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비 단가가 아니라 시간당 가치(time-based value)가 자산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셋째, 도시의 이용 인구 위계가 재편된다. 루마 아를이 끌어들이는 것은 대중 관광객이 아니라 예술가, 연구자, 큐레이터, 학자, 문화 기관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소비 규모보다 체류의 깊이와 반복성으로 도시와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이용 인구의 변화는 도시의 브랜드 인식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주거·업무·상업 자산의 성격까지 바꾼다.

루마 아를은 문화·예술 인프라를 대체자산(alternative asset)3으로 전환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과는 입장권 매출이나 리테일 수익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예술을 통해 형성된 체류 네트워크, 반복 방문, 국제적 인식이 도시 전체의 자산 프리미엄을 누적시키는 구조를 만든다. 이는 단기 수익이 아니라 중·장기 가치 상승을 전제로 한 설계다.

건축은 상징을 만들고, 운영은 시간을 확보한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전환이 건축 그 자체가 아니라 운영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연중 운영, 레지던시와 연구의 상시화, 교육과 컨퍼런스의 결합은 모두 경험을 이벤트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는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이 체류를 시작하게 만드는 촉발점으로 기능4한다. 도시와 투자자가 즉시 이해하는 상징 자산이 먼저 시선을 확보하고, 그다음 단계에서 루마 아를이 설계한 연중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시간을 붙잡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순서다. 게리의 타워는 “이곳에 가봐야 한다”는 욕망을 만들지만, “여기서 머물러야 한다”는 이유는 건축적 미감이 아니라 운영에서 나온다. 상징적인 건축물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운영은 사람을 붙잡는다. 두 단계가 정교하게 확립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랜드마크는 일회성 방문으로 끝난다.

루마 아를의 내부 동선은 단일 관람 루트를 전제하지 않는다. 방문자는 전시, 공간, 이동 경로를 선택적으로 경험한다. ©김양아

루마 아를은 관람객들의 일회성 방문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전시를 잘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을 확보하는 기관’으로 설계되었다. 전시 중심 시설은 보통 연중 캘린더에 의해 움직인다. 오프닝과 폐막 사이에 사람이 몰리고, 그 사이의 공백은 도시가 떠안는다.

옛 철도 공장 부지를 보존·재구성한 파크 데 자틀리에(Parc des Ateliers). 기존 산업 인프라 위에 문화·연구·전시 프로그램을 중첩한 개발 방식이다. ©김양아

반대로 루마 아를은 이러한 연중 캘린더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레지던시는 일정 기간 도시를 점유하는 사용자를 만든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구는 어떠한 결과물을 바로 소비로 환산하는 대신 체류 시간을 길게 만든다. 교육과 세미나, 컨퍼런스는 다시 돌아올 이유를 만든다. 전시는 그 체류를 외부로 가시화하는 장치이며, 루마 아를이 확보한 시간과 관계성을 세계와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랜드마크 이후’를 계산하는 루마 아를의 전략

많은 도시 개발 프로젝트는 상징적 건축물을 세우는 순간을 목표로 삼는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이름과 명성, 인지도가 높은 디자인, 사진으로 소비되기 좋은 형태. 그러나 부동산 관점에서 보면, 랜드마크는 자산 전략의 완성이 아니라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출발점에 가깝다.

문제는 그 이후다. 랜드마크가 도시의 현금 흐름과 수요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계산이 부재할 때, 건축은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한 채 운영·유지비 부담만 누적되는 고정비 자산으로 남는다.

루마 아를은 다른 선택을 했다. 건축은 아를이라는 도시로 들어오는 첫 관문이자, 이곳에서의 체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기능한다. 즉,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단기 유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지가 아니라, 연중 운영과 반복 체류가 가능하도록 유입되는 수요의 성격을 선별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루마 타워는 도심 중심부가 아닌, 외곽 산업 지대에 위치한다. 이 배치는 기존 도시 구조를 대체하기보다, 외연을 확장하는 전략에 가깝다. ©김양아

이러한 차이는 자산 전략에서 결정적이다. 랜드마크 중심의 개발은 사람들의 방문을 전제로 한다. 방문은 숫자로 측정되지만, 지속성은 담보하지 않는다. 반면 루마 아를은 초기 인지도에 따른 단기 유입에 기대지 않고, 연중 반복 사용을 전제로 한 운영 구조를 먼저 정교하게 설계했다. 레지던시, 연구, 교육, 컨퍼런스가 연중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건축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장소가 된다. 이때 건축은 더 이상 단일 자산이 아니다. 도시 전반의 체류 수요를 견인하는 앵커 자산(anchor asset)으로 전환된다.

멀리서 보면 조형적 아이콘으로 읽히지만, 가까이에서는 출입·동선·체류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건축이다. ©김양아

이 앵커는 주변 자산의 성격을 바꾼다. 단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숙박은 장기 체류형 숙박으로 이동하고, 상업은 기념품 판매에서 일상의 소비로 이동한다. 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임차인의 교체 주기가 느려지고 계약 기간이 길어지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수익의 총량보다 수익의 질이 개선된다. 랜드마크 하나로는 만들 수 없는 변화지만, 체류를 전제로 한 운영이 결합될 때만 가능해지는 변화다.

비정형 파사드는 특정 파사드 리듬이나 도시 축에 정렬되지 않는다. 알루미늄 패널은 빛과 각도에 따라 표면 인식이 달라지는데, 고정된 아이콘보다는 시간에 따라 인식이 변화하는 외피를 의도한 설계다. ©김양아

루마 아를이 보여주는 계산은 명확하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을 먼저 세우고 이후 수익 모델을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연중 반복 사용이 발생하는 수요 구조를 전제로 한 뒤 그 구조를 견인할 수 있는 수준의 건축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기존 랜드마크 개발과 다르다. 이때 건축은 단일 시설의 수익을 책임지는 대상이 아니라, 체류 인구의 성격과 사용 밀도를 규정함으로써 도시 자산 전체의 평가 기준을 상향시키는 레버리지로 기능한다. 이것이 루마 아를이 랜드마크 프로젝트가 아니라, 도시 자산 전략으로 읽혀야 하는 이유다.

한국 도시 개발이 놓친 질문

한국의 도시 개발은 오랫동안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대형 복합 개발, 상징적 건축, 대규모 문화 시설은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프로젝트가 비슷한 한계에 부딪힌다. (굳이 특정 공간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공간은 만들어졌지만, 사람이 머무를 이유는 남지 않는다. 전시는 열리지만 일정이 끝나면 공백이 생기고, 이벤트는 많지만 반복 방문은 적다. 자산은 존재하지만, 도시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문화예술업계 관계자가 아닌 일반 대중이 특정 시설을 습관적으로 재방문하기보다는, 연간 한두 번 방문하는 패턴이 지배적이다. (출처=문화체육관광부 <2023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

이 실패는 콘텐츠의 질이나 건축의 완성도 문제라기보다, 도시 개발 관점에서 자산의 수요를 정의하는 질문 자체의 문제에 가깝다. 대부분의 개발은 여전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 것인가”를 기준으로 설계된다. 이는 방문 횟수를 늘리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체류 시간과 재방문 주기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반면 루마 아를이 설정한 질문은 명확하다. 누가 이 도시에 들어오는가,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 그리고 그 체류가 반복되는가. 이 질문이 빠진 상태에서 아무리 규모가 큰 시설을 조성해도, 수요는 특정 시점에 집중된 채 흩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도시 개발에서 반복되는 또 하나의 구조적 한계는 운영을 사후 변수로 취급하는 방식이다. 건설과 개관이 완료된 이후 운영을 고민하는 구조에서는, 체류를 전제로 한 수요 설계가 불가능하다. 레지던시·연구·교육 프로그램은 비용 항목으로 밀리고, 이벤트는 단기 활성화를 위한 보완재로 사용된다. 그 결과 문화 시설은 연중 동일한 사용 밀도를 확보하지 못하고, 도시는 시간대별·시즌별 공백을 안게 된다. 이 공백은 곧 수익 변동성으로 이어지고, 변동성은 자산 평가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반영된다5.

루마 아를 프로젝트에서 운영은 부속 요소가 아니라 자산 전략의 전제 조건으로 설정되었다. 레지던시·연구·전시·교육이 하나의 구조로 묶인 이유는 방문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중 반복 사용이 발생하는 이용 인구를 고정하기 위해서다.

체류가 반복되면 도시는 단기 방문객이 아니라 일정 기간 공간을 점유하는 사용자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유입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의 안정성을 높이는 문제다. 수요가 안정되면 현금 흐름의 변동성이 낮아지고, 이는 자산 평가에서 리스크 요인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논리는 문화 정책의 언어가 아니라, 명확히 부동산과 재무의 언어에 속한다.

따라서 한국 도시 개발에 필요한 전환은 분명하다. 랜드마크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과 그 시간이 반복되는 구조를 먼저 설계하는 것이다. 얼마나 화려한 공간인가보다,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 공간인가가 중요해진다. 얼마나 많은 방문객을 유치했는가보다, 얼마나 예측 가능한 이용 밀도를 확보했는가가 자산의 성격을 바꾼다. 이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도시의 랜드마크는 계속해서 한 번 방문하고 나면 다시는 찾지 않는 일회성 장소로 소비될 수밖에 없다.

루마 아를은 작은 도시가 어떻게 국제적 문화·연구 거점으로 인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예술의 상징성 때문이 아니라, 체류를 자산의 변수로 다룬 선택의 결과다. 예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고, 핵심은 시간을 점유하는 수요를 도시 안에 고정시키는 구조였다. 한국의 도시 개발 역시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기존 수요를 단기적으로 소모하는 공간을 하나 더 만들 것인가, 아니면 사용이 누적되는 도시를 설계할 것인가.

이 선택은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자산이 어떤 수요 구조를 갖게 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 결정이 도시 자산의 미래 가치를 좌우한다.

  1.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 중 부슈뒤론주에 위치한 도시이자 코뮌. 19세기에 빈센트 반 고흐가 머물면서 300여 점의 작품을 그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
  2. xperience Capitalization. 자산 가치가 면적·입지 같은 물리적 조건뿐 아니라, 체류 시간·반복 이용·사용 경험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는 관점. 최근 도시 재생과 복합 개발에서 임대 안정성, 브랜드 인식, 투자 선호도와의 연관성으로 논의되고 있다. ↩︎
  3. 전통적인 임대 수익 중심 자산과 달리, 문화·예술·공공 인프라와 같이 중·장기 가치 상승과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목적으로 편입되는 자산군. 문화·예술 인프라는 도시 브랜드와 입지 프리미엄을 통해 간접적인 자산 가치 상승 요인으로 작동한다. ↩︎
  4. 프랭크 게리는 상징적 건축을 통해 도시 인지도와 투자 인식을 단기간에 형성하는 효과(검증된 레버리지 자산)를 반복적으로 입증한 건축가로 평가된다. 아이코닉 건축의 도시 파급 효과를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로 부르기도 한다. ↩︎
  5. 부동산 자산은 수익이 ‘얼마나 큰가’보다 ‘얼마나 안정적인가’로 평가된다. 수요가 연중 고르게 유지되는 자산은 리스크가 낮다고 판단되어 위험 프리미엄(risk premium)이 낮아지고, 이는 자본환원율(cap rate) 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관광·이벤트 중심 수요는 시즌에 따라 출렁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평가되지만, 체류 기반 수요는 장기 자산 평가에서 구조적 우위를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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