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JR동일본은 기존의 기차역을 교통 거점에서 생활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
옛 사택을 살린 코엔지 아파트, 코이와이 농장의 팜 리조트, 폐선을 되살린 우스이 고개까지 기존 자산을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합니다.
-
철도 인프라가 주거와 체류, 지역 산업으로 확장되며 도시와 지역의 구조를 다시 짜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일본은 흔히 철도의 나라라 불린다. 촘촘하게 연결된 노선망과 정시성을 기반으로 한 운영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일본의 철도는 일상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해 왔다.
철도 시스템이 단순한 ‘이동’을 위한 수단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어떨까. 철도회사가 역과 그 주변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관여하기 시작한다면, 인프라는 전혀 다른 층위로 확장된다. 기능적 효율을 넘어, 머무름과 소비, 관계와 경험이 중첩되는 하나의 생활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동일본여객철도주식회사(이하 JR동일본)는 그룹 경영 비전 <변혁 2027>을 통해, 철도 중심의 기존 구조를 넘어 ‘생활 만들기’를 핵심 축으로 삼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Beyond Stations’라는 구상은 역을 교통 결절점이 아닌 생활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계획이다.
이번 화에서는 JR동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도전들을 살펴본다. 역세권 개발에서 시작해 구사택과 기존 자산을 활용한 주거 재생, 숙박을 기점으로 한 지역 체류형 가치 창출, 그리고 지역과 함께 산업과 생활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전개되지만 공통 화두가 있다.
철도라는 인프라는, 어디까지 우리 삶에 관여할 수 있을까. 이 인프라는 도시와 지역 구조를 어떻게 다시 조직할 수 있을까.
철도에서 생활로, 다시 그리는 주거
이러한 화두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과거 JR동일본의 ‘스테이션 르네상스’가 역의 매력을 강화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전략이었다면, 이후 제시된 NEXT10은 마을 만들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넓은 범위로 확장한다.
이러한 방향은 주택 사업에서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다. JR동일본은 2016년 대비 2026년까지 임대주택 관리 호수를 5배인 3,000호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를 예정보다 앞선 2022년 말에 달성했다. 현재는 2027년까지 6,000호로 확장하겠다는 새로운 목표 아래 주거 영역을 생활 플랫폼의 핵심 축으로 적극적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도쿄 코엔지에 위치한 코엔지 아파트는 ‘어떤 방식의 주거’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1965년 구 국철 직원들을 위한 사택으로 지어진 단지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역할을 다하며 2016년 문을 닫았다. 이후 JR동일본은 이 부지를 사택으로 재정비하는 대신 일반인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전환했다. 철도 노선을 따라 새로운 인구 흐름과 생활의 밀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리노베이션에서 공들인 부분도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겹쳐질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었다. 주거와 일이 분리된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 점포와 주거가 결합된 공간, 창작과 생산이 가능한 아뜰리에형 주거 등, ‘사는 것과 일하는 것, 그리고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실험했다. 스스로 생활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제안이기도 했다.

변화는 물리적 환경에서도 뚜렷하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건물을 둘러싸고 있던 콘크리트 담장을 철거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외부와 단절된 채 존재하던 단지는, 급격히 다른 인상을 갖게 된다. 폐쇄적이고 희미했던 경계는 사라지고, 대신 열린 시선과 흐름이 만들어지며, 내부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지역과 연결된다. 단지라는 이름 아래 고립되어 있던 공간은, 그 순간부터 마을의 일부로 다시 편입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기존 집합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리인의 개념 역시 새롭게 정의된다. 코엔지 아파트의 관리인은 시설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거주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관계를 매개하는 존재로 참여한다. 건물은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교류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비로소 작동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2025년에는 인접 부지에 ‘코엔지 아파트 2.0’이 계획되며, 기존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주거 유형이 추가되고 있다. 싱글부터 패밀리까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수용하는 동시에, 1층의 상업 공간과 거리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주거와 도시가 다시 맞물리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마을을 만들어간다. 인프라가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는 하나의 환경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동의 끝에 머무름을 만드는 이유
주거를 통해 일상의 내부에 닿기 시작한 기류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사는 방식이 아니라, ‘머무는 방식’이다. 철도가 이동을 전제로 한 인프라라면, 그다음 단계는 이동의 목적을 만드는 일이다.
JR동일본은 중장기 성장 전략 ‘Beyond the Border’를 통해 이 지점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동량을 늘리는 대신, 왜 이곳에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계하는 쪽이다. 자연과 문화, 산업과 일상이 축적된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경험으로 재구성하면, 철도는 이동 수단에서 한 발 나아가 목적지로 사람을 이끄는 매개가 된다.

이 방향이 가장 또렷하게 구현된 영역이 숙박 사업이다. JR동일본은 세계적인 호텔리어이자 아만(Aman) 창립자인 아드리안 제카(Adrian Zecha)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리조트 브랜드 아즈마 팜(AZUMA FARM)을 출범시키며, 이동과 체류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축을 구축하고 있다. 이 브랜드는 일본 각지의 자연과 풍토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을 전제로, 농업과 식문화, 그리고 지역의 삶을 체험하는 ‘팜 라이프’를 중심에 둔다.

그 첫 번째 무대는 이와테현의 코이와이 농장이다. 약 130년 전, 일본 철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를 비롯해 이와사키(미쓰비시) 가문 등이 함께 일군 이 땅은, 한때 화산재로 덮인 황무지였다. 오랜 시간에 걸친 식재와 관리,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을 통해 이곳은 풍부한 목초지와 숲으로 변화했다. 다양한 활엽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숲은 지금도 깊은 층위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축적 위에 들어선 아즈마 팜 코이와이(AZUMA FARM KOIWAI)는 기능적 숙박과는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A Down To Earth Farm Stay’라는 개념 아래, 머무는 행위 자체가 땅과 계절, 지역의 삶과 관계 맺는 경험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공간과 풍경, 음식과 환대는 따로 떨어진 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체험으로 엮이고, 방문자는 그 안에서 이 지역 고유의 리듬을 체감한다.

건축 설계를 맡은 미우라 시로는 농장의 숲을 직접 걸으며, 100년 이상의 시간을 견딘 적송과 삼나무를 선별하는 것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건물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지형과 숲 사이에 스며들며, 풍경의 일부로 존재하게 된다. 2026년 4월 23일 문을 연 아즈마 팜은 약 8헥타르 부지에 24개의 객실과 함께 레스토랑, 라운지, 사우나 시설을 갖췄고, 농장과 주변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더 나아가, 향후에는 새로운 모빌리티 체험으로서 비행 자동차(Skydrive)를 통한 호텔 픽업 서비스 및 주변 지역으로의 투어도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동과 체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방식의 실험이다.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은 숙박이라는 기능 너머에 있다. 사람들이 왜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향하는지, 그 경험이 무엇을 남기는지를 다시 묻는다. 빠른 일상에 익숙해진 삶 속에서, 자연과 계절, 느린 시간의 흐름은 스스로를 재정렬하는 계기가 된다. 이때 숙박은 소비가 아니라 감각과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 된다.
철도 회사가 지역의 자연과 문화, 산업을 매개로 세계적인 파트너와 협력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프라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동을 설계하던 기업이, 이제는 머무름의 이유를 만들고, 나아가 그 지역의 미래를 함께 구성하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인프라를 넘어, 관계를 설계한다는 것
주거와 체류를 통해 개인의 삶에 스며든 변화는, 이제 지역의 구조를 다시 조직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JR동일본은 이 지점에서 물리적 공간에서 ‘소프트웨어’의 층위로 이동한다. 사람과 지역, 산업을 연결하는 관계의 구조를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지역의 잠재된 자원을 ‘보물’로 발견하고, 이를 지역과 함께 다듬어 외부와 연결해 나가는 보물 프로젝트(宝ものプロジェクト)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과정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기반으로 작동한다.

접근 방식은 ‘반주형 지역 만들기’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지역과 기업이 일방적으로 협력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걸어가는 관계를 지향한다. JR동일본은 지역과의 대화, 워크숍, 인재 육성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매년 다양한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JR동일본 지역 공창 어워드다. JR동일본과 지역의 개인 및 단체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를 공유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장치로, 각 지역에서 시도된 다양한 실험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내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JR동일본은 주도자가 아니라, 지역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어주는 파트너에 가깝다.
군마현 안나카시의 우스이 고개(碓氷峠) 폐선 워크는 제 역할을 다하고 방치되어 있던 철도 유산을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전환한 프로젝트로, 지역 공창 어워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세기말 일본 최초로 압토식 철도가 도입되었던 이 구간은, 폐선 이후 오랫동안 접근이 제한된 채 남겨져 있었다. 그러나 지역 단체와 JR동일본, 지자체가 함께 협력하며 다시 열어냈다.

이들은 우스이 고개 폐선 워크를 가이드 투어와 체험형 프로그램을 결합한 걷는 콘텐츠로 재구성했고, 빛과 소리를 활용한 야간 프로그램까지 더해 새로운 관광 경험으로 키워냈다. 과거의 인프라를 그대로 두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시간과 경험을 겹쳐 쌓는 방식이다. 폐선이 또 다른 시작점이 되는 셈이다.

지역 공창 어워드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된 ‘크래프트 맥주로 지역 활성화’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도쿄 서부 오쿠타마 지역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로, 유휴 부지를 기반으로 지역 브랜드 베르테레(VERTERE)의 생산 거점을 조성하며, 산업과 관광을 연결하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철도 용지에서 일반 부지로까지 확장된 이 사례는, JR동일본의 역할이 기존 영역 바깥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양조장 운영에 공장 견학, 지역 이벤트, 관광 상품이 결합되면서, 이곳은 생산 시설이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장소가 되었다. 고용 창출과 지역 단체와의 협업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산업이 지역의 흐름을 다시 움직인다. 무엇을 만드는가 보다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더 중요해진 셈이다.

역에서 시작된 변화는 주거와 체류를 거쳐, 지역의 산업과 문화로 스며들며 서로 다른 요소들이 생태계처럼 점차 엮여간다. 그 과정 속에서 지역은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다시 찾게 되는 장소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이미 있는 것들 위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
지금까지 살펴본 JR동일본의 시도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전개되지만, 공통점이 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다. 사택, 농장, 철도 시설 및 유휴 부지와 같은 자원들은 새로운 맥락 속에서 다시 읽히며,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다. 변화는 ‘제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기존의 것 위에 새로운 시선과 해석을 더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접근은 효율과 개발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온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결을 갖는다. 남아 있는 것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현재의 삶과 연결하는 일, 즉 시간과 관계를 다루는 하나의 태도다.
더 중요한 것은 물리적 변화 자체 보다 그것을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주거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완성되고, 체류는 머무는 경험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되며, 지역은 다양한 주체들이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지속된다. 건물과 시설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시간의 축적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 변화는 질문 하나로 끝나지 않고, 하나의 방향을 남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다시 읽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 축적 위에서, 우리의 생활과 풍경은 다시 구성될 것이다.
본 콘텐츠는 외부 필진이 작성한 글로 주관적 견해를 포함할 수 있으며, 당사의 공식적인 의견 표명이나 견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본 콘텐츠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및 투자 권유, 종목 추천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본 콘텐츠는 2026년 6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