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일본에서는 뛰어난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조차 연식만으로 가치가 평가되어 철거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 주택유산 트러스트는 이러한 ‘명작 주택’을 단순 보존이 아닌 ‘계승’이라는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 구 소노다 저택과 빌라 쿠쿠 사례를 통해, 사적 건축이 공적 문화로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도시는 종종 거대한 건물과 인프라로 기억되지만, 실제로 도시의 시간을 다층적으로 품고 있는 것은 수많은 작은 집들이다.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과 취향, 삶의 방식이 스며들고, 세월과 함께 기억과 풍경이 축적되는 장소다. 그러나 삶과 가까이 맞닿은 건축물, 특히 주택일수록 역설적으로 그 가치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공공건축과 달리 개인이 소유한 집은 경제 여건, 상속, 유지 관리 부담 등 다양한 이유로 철거되거나 방치되기 쉽다. 일본에서 빈집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어떤 집들은 단순한 사유재산을 넘어 시대의 공간 실험이자 장인의 기술이 응축된 문화적 기록이며, 도시의 기억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가 된다. 일본에서는 뛰어난 주택과 그 환경을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그 중심에 있는 조직이 “주택유산 트러스트(住宅遺産トラスト)”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들의 활동과 더불어 구체적 사례를 통해 주택이라는 사적인 건축이 어떻게 공적인 문화로 확장될 수 있는지,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지 차분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주택유산 트러스트, 집을 남기는 방법을 묻다

일본에서 주택이 사라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건축의 완성도나 역사적 가치 부족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평가하는 방식에 있다. 일본의 부동산 시장에서 중고 주택은 유지 상태나 건축적 의미와 무관하게 ‘연식’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토지만 거래하고 건물을 철거한 뒤 새로 짓는 ‘스크랩 앤 빌드(Scrap & Build)’ 모델이 오랫동안 주류를 이루어 왔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의 작품이라 해도 이 구조 안에서는 예외가 되기 어렵다.

소유자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 기존 주택을 남겨 매각하는 것보다 철거 후 대지로 분양하는 편이 빠르고 높은 가격을 기대할 수 있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속이 개입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상속세 납부나 분할 과정에서 현금화가 필요해지면 부동산은 매각 대상으로 전환되고, 집은 먼저 철거의 대상으로 놓인다.

또 다른 모순도 있다. 일본의 주택 거래 상당수가 중고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금융과 평가 제도는 여전히 신축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중고 주택은 담보 가치 산정에서 불리하고, 개수나 리노베이션을 전제로 한 대출 역시 제약이 많다. 결국 새로 짓는 것이 구조적으로 장려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전히 거주 가능한 집조차 20~30년을 기준으로 가치가 소멸하는 것처럼 취급되는 현실은, 집을 일종의 소비재로 전락시킨다.

그렇다면 소유자들은 정말로 집을 부수고 싶어서 철거를 결정하는 것일까. 주택유산 트러스트 이사인 키노시타 토시코는 이렇게 말한다.

철거하고 싶어서 부수는 소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많은 경우, 선택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에 의해 강요된다. 남기고 싶어도 방법을 알지 못하고, 상담을 요청해도 건축적 가치와 부동산 실무, 세무 문제를 동시에 이해하는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 디벨로퍼는 시장성을, 세무사는 법적 안정성을, 건축가는 공간적 완성도를 우선한다. 이 셋을 가로지르며 ‘정말 이 집을 부수는 것이 최선인가’를 묻는 제3의 시선은 드물었다.

이 문제의식 속에서 2013년 출범한 조직이 주택유산 트러스트다. 이들은 역사적·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명작 주택(名作住宅)’1을 주택유산이라 명명하며, 단순 거래 대상이 아닌 사회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18건의 주택이 이들의 도움을 통해 새로운 사용자에게 계승되었다.

주택유산 트러스트와 그 관계자들 (출처: hhtrust.jp)
지금까지 주택유산 트러스트가 계승 및 협력해 온 주택 사례들 (출처: hhtrust.jp)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보존이 아닌 ‘계승’이다. 보존이 건축을 과거에 고정시키는 인상을 준다면, 계승은 시간의 흐름을 전제로 한다. 설계자의 의도, 거리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온 삶의 방식까지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행위. 매매 계약서에는 기록되지 않는 가치들을 함께 전달하는 과정이 계승이다.

그 시작은 언제나 느리다. 일반적인 부동산 매각 절차와 달리, 먼저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해 소유자의 이야기를 듣고, 집을 함께 정리하며 공간이 지나온 시간을 되짚는다. 그 과정에서 주택의 물리적 상태뿐 아니라 지역성과 사용의 역사, 그리고 소유자의 감정까지도 이해하려 노력한다. 신뢰가 형성되어야만 계승이라는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집을 사회에 조금씩 열어간다. 전시나 다과회, 세미나, 심포지엄 등의 공개 행사를 통해 주택을 공개하고, 미디어와 출판을 통해 그 가치를 확산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다 보면, 잠재적 계승자뿐이 아니라 기존 소유자의 인식도 변화한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통해 자신의 집을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이 모여 가치를 나누는 순간 (왼쪽) / 지속가능한 계승을 위해 소유자와 함께 관리하는 활동들 (출처: hhtrust.jp)

계승자의 대부분이 건축 관계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설계 의도나 구체적인 디테일의 이해 여부를 떠나, 공간 그 자체가 지닌 힘과 매력에 이끌려 집을 이어받고, 원형 복원에만 집착하기보다 그 집 고유의 역사를 존중하며 개수를 진행한다.

이 과정은 단일 조직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상속, 법률, 금융, 행정, 지역사회까지 얽힌 복합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가, 부동산 전문가, 세무·법률가, 지자체, 대학, 금융기관 등과 협력하며 해법을 모색한다. 때로는 임대 수익 구조를 설계해 수선비를 마련하고, 그에 따라 부동산 가치 자체를 재평가하는 시도도 이루어진다.

상시 모집 중인 멤버십 제도. 주택유산 이용, 이벤트 우대, 멤버끼리의 모임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출처: hhtrust.jp)
출판을 통한 영향력 확산 (출처: facebook.com/heritagehousing)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몇 채의 명작 주택을 구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축 중심의 사고를 유예하고, 이미 존재하는 건축을 살아 있는 자산으로 바라보는 감각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일에 가깝다. 환경 문제와 인구 감소에 직면한 시대에, 끊임없이 폐기물을 생산하는 건설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를 묻는 행위이기도 하다.

아직 충분히 거주 가능한 집, 나아가 역사와 생활의 시간을 품은 주택이 시장에서 정당하게 평가받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일지도 모른다. 주택유산 트러스트의 실천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집은 과연 소비되는 물건인가, 아니면 시간을 축적하며 이어지는 삶의 토대인가.

구 소노다 타카히로 저택, 음악과 건축이 이어준 계승

주택유산 트러스트의 출발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한 채의 집을 둘러싼 현실적인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작은 도쿄 메구로구에 위치한 구 소노다 타카히로 저택(旧園田高弘邸)이다. 이 주택은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요시무라 준조가 클래식 피아니스트 소노다 타카히로와 그의 아내 하루코를 위해 설계한 저택(1955년 준공)으로, 이후 제자 오가와 히로시에 의해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설계 단계부터 음향과 공간의 관계가 섬세하게 고려된 이 집은 건축과 음악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2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두었던 기존 모습과 피아니스트 소노다 타카히로 (왼쪽) / 현재 보존 중인 방 (출처: madoken.com)

2004년 소노다가 세상을 떠난 뒤, 하루코 부인은 집이 계속 이 땅에 남기를 바랐다. 그러나 고령이 되어 생활이 편리한 공동주택으로 이주해야 했고, 가족들 역시 해외에 거주하면서 집을 이어받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반적인 일본 부동산 시장 기준으로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주택은 단지 ‘낡은 건물이 포함된 토지’로 간주된다. 매각된다면 철거 후 분할 판매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평면도 가운데를 중심으로 남쪽이 요시무라 준조가 맡은 자택, 북쪽이 그의 제자 오가와 히로시가 담당한 공용 공간 (출처: r100tokyo.com)
기존 저택 모습(위)과 증축된 공용 공간(하)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연결된다. 저택 천장부에는 흡읍 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공용 공간에는 소노다 타카히로가 사용하던 그랜드 피아노 1대가 놓여있다. (출처: r100tokyo.com)

이 상황을 막기 위해 하루코는 2007년 현지에서 활동하던 비영리조직(NPO) “타마가와 마을 만들기 하우스(玉川まちづくりハウス)”에 상담을 요청했다. NPO의 멤버는 시찰 후 건축적·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것을 확신했고, 계승자를 찾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음악과 건축이 어우러지는 모임(音楽と建築の響き合う集い)>이다. 하루코가 기획한 음악 연주회와 함께 요시무라 건축의 매력을 발산하는 강연도 연속적으로 개최되면서 개인의 사적 공간이었던 주택은 음악을 매개로 지역과 사회를 연결하는 장소로 변해갔다.

전환점은 2012년 가을, <쇼와 시대의 명작 주택에 살기: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昭和の名作住宅に暮らす―次世代に引き継ぐためにできること)>라는 전시에서 찾아왔다. 구 소노다 저택은 해체 위기에 놓인 다른 주택들과 함께 소개되었고, 이 전시는 단순한 매각 홍보가 아니라 건축이 품은 시간성과 생활의 맥락을 전달하려는 시도였다. 심포지엄에서는 계승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조건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전시는 예상보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해외 매체가 먼저 관심을 보였고 일본 주요 언론이 뒤따랐다. 그리고 기사 하나가 뜻밖의 인연을 만들었다. 기사를 읽은 오사카의 사업가 이토 하루오는 요시무라 건축의 오랜 애호가였다. 그는 곧바로 도쿄로 올라와 집을 방문했고, 처해진 상황을 들은 뒤 망설임 없이 주택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루코가 상담을 요청한 지 약 5년 만의 계승이었다.

현재 이 집은 이토의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되면서도 사회에 열려 있다. <음악과 건축이 어우러지는 모임>은 2026년인 지금까지 이어져 26회를 맞았고, 연주회와 연습 공간, 견학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집은 더 이상 한 가족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 공간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건물의 존재 자체가 공유되었고, 그 과정은 소유자에게도 집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용 공간에서 열리는 실내 음악회 (출처: facebook.com/heritagehousing)
지역 주민뿐 아니라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모습 (출처: facebook.com/heritagehousing)

마침내 일본의 주택에도 ‘빈티지’라는 개념이 들어온 것 같아요. 역사나 시간을 포함한 가치를 평가해, 신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그 집과 관련된 스토리나 배경에 매력을 느끼는 분이 늘고 있습니다.
— 주택유산 트러스트 이사 키노시타 토시코

다시 말해, 주택유산의 계승이 단순 건축 보존 운동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건물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관계가 지속되는 한, 집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장소로 살아갈 수 있다.

빌라 쿠쿠, 개인의 선택이 만든 공공성

도쿄 시부야의 주택가에 자리한 빌라 쿠쿠(Villa Coucou)는 한때 조용히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주택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사회의 시선 속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유명 배우 스즈키 쿄카에 의해 계승되면서 더더욱 화제를 모았다.

까사 브루터스(CASA BRUTUS) 2022년 11월호에 실린 빌라 쿠쿠와 배우 스즈키 쿄카 (출처: CASA BRUTUS)

1957년 완공된 빌라 쿠쿠는 전후 파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수학한 건축가 요시자카 타카마사가 귀국 후 설계한 초기 대표작 중 하나다. 건축주는 프랑스 문학자이자 와세다대학 명예교수였던 콘도 히토시 부부였으며, 두 사람은 이곳에서 약 50년을 보냈다. 그러나 부부의 사후 상속 문제와 유지 비용, 그리고 일본의 세법과 부동산 관행은 집의 미래를 급격히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시간의 흔적들이 드러나는 빌라 쿠쿠의 외관 (출처: 송영대)

일본에서 주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 가치가 급격히 감소한다. 국토교통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 주택의 평균 사용 기간은 약 32.1년(2008~2013년 평균)에 불과하며, 미국 66.6년(2009년 평균), 영국 80.6년(2007년 평균)에 비해 현저히 짧다. 목조주택은 약 20년, 철근콘크리트조 역시 40여 년이 지나면 세법상 자산 가치가 거의 0으로 평가된다. 이 지표는 본래 세금 산정을 위한 것이지만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며, 그 결과 아직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집조차 가치 없는 건물로 간주되고 철거 압력을 받는다. 빌라 쿠쿠 역시 해체 직전까지 몰렸다.

이 상황을 그냥 바라볼 수 없었던 사람이 스즈키 쿄카였다. 오래된 거리 풍경을 여행지에서 즐겨왔던 그에게, 개성 있는 집들이 획일적인 맨션으로 대체되는 모습은 단순한 도시 변화가 아니라 상실로 느껴졌다. 결국 스즈키 쿄카는 2021년 주택유산 트러스트의 협조를 받아 이 주택을 매입하고 스스로 관리자가 되었다. 더 나아가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위해 세계적인 사진가이자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가 이끄는 신소재연구소에 리노베이션을 의뢰했다. 약 1년 반의 보수 과정을 거쳐 2024년 봄부터 이 집은 예약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건축은 소유에서 공공성으로, 기억에서 경험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리노베이션 중 기존 재료 위에 덧칠되어 있던 색들은 벗겨내고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출처: 송영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창문을 모티프로 적용한 계단 하부 장식(왼쪽)과 일본식 정원과의 관계 (출처: 송영대)
보존된 서재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책들이 놓여 있어, 제자인 요시자카 타카마사의 건축물과 비교해보며 감상할 수 있다. (출처: 송영대)

스즈키의 선택은 개인적 취향을 넘어 사회적 행위가 되었고, 그 공로로 2023년 건축에 대한 이해와 인식 향상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일본건축학회 문화상을 받았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건축가의 건축을 계승했습니다만, 개개인이 지켜내고 싶은 것들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이끼를 좋아하거나 장난감을 지켜내고 싶은 사람이 있듯이요. 모두가 각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킬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 스즈키 쿄카

이는 계승이 특정 전문가나 제도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개념이 아님을 시사한다. 건축을 남기는 일은 거대한 보존 전략이라기보다, 개인의 선택들이 축적되어 형성되는 사회적 과정에 가깝다.

집을 남긴다는 행위의 의미

집은 본래 사적인 장소다. 한 사람의 생활과 취향, 시간과 관계가 켜켜이 쌓이는 공간이며, 법적으로도 개인의 소유에 속한다. 이번 글에서 살펴본 두 사례들은 그 사적인 공간이 어떻게 공적인 가치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주택을 건축물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도 평가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과 세제, 부동산 구조, 유지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집을 남기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고 느리며,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시도들이 축적될수록 변화는 분명히 나타난다. 사례가 쌓이면 제도는 조정되고, 시장은 새로운 가치를 학습하며, 사람들의 인식 또한 서서히 이동한다.

집은 다시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쌓여 있던 시간과 관계, 풍경과 기억은 한 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워가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의 도시에서, 우리의 집들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인가.

  1. 일본의 건축 잡지, 서적, 미디어에서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사적으로 의미 있는 주택’을 가리킬 때 보편적으로 쓰는 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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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2026년 4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