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요즘 일본에서는 ‘몰입형 엔터테인먼트’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 범죄 사건의 목격자 등 관람객이 역할을 부여받는 스토리형 테마파크, 숙박하며 호텔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체험하는 ‘숙박형 연극’, 관람객이 다가가면 빛이 반응하는 미디어아트 전시 등 형태도 다양하죠.

  • 체험이 중요해진 시대, 사람을 끌어 모으는 새로운 앵커 시설로 주목 받는 몰입형 전시공간들을 소개합니다.

‘이머시브 (immersive 몰입)’라는 단어를 들으면 VR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 세계를 즐기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 개념이 이제 온라인을 넘어 현실로 확장되고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최근 물리적 공간에 3D 영상, 음악, 조명, 향기 등 오감을 자극하는 장치를 결합해 콘텐츠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이머시브 체험 공간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이머시브 포트 도쿄

“들었어? 2시에 ‘B코마치’가 유럽 투어로 우리 마을에 온대! 굉장하지 않아?”

올해 3월, 도쿄 오다이바에 이머시브 포트 도쿄(Immersive Fort Tokyo)가 문을 열었습니다. 테마파크를 들어서자 마치 유럽의 한 마을과 같은 거리가 펼쳐지고, 중세 유럽의 복장을 한 테마파크의 스태프가 말을 건넵니다.

다양한 상황에 본인이 주인공 또는 관찰자로 참여하는 이머시브 포트 도쿄 ⓒImmersiveFortTokyo

공간에 들어선 순간 방문객은 가상의 마을에 사는 주민이 된 것인데요. 마을 곳곳에서는 다양한 몰입형 쇼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더 셜록’은 명탐정 셜록 홈즈가 용의자를 쫓으며 관객들이 스토리에 참여하여 함께 수수께끼를 풀거나 등장인물을 쫓아다니며 스토리에 몰입하는 90분짜리 쇼입니다. ‘에도 오이란 기담’에서는 200년 전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00개 이상의 스토리와 등장인물을 만날 수 있죠. 넷플릭스 시리즈인 ‘앨리스 인 보더랜드 (Alice in Borderland)’를 배경으로 만든 ‘이머시브 데스 게임 (Immersive Death game)’에서 참가자들은 폭탄을 목에 착용하고 살아 남기 위해 게임을 합니다. 인기 애니메이션인 ‘최애의 아이’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인 ‘B코마치’가 우리 마을에서 콘서트를 엽니다.

이버시크 포트 도쿄는 세계 최초 몰입형 테마파크라고 자칭합니다. 범죄 현장의 목격자, 파티의 주인공, 독약 살인자,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설정 속에 관객이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체험과 결말이 달라지죠.

유럽풍 콘셉트의 쇼핑몰이 폐장한 후 기존 시설을 전시장으로 재활용했다. ⓒImmersiveFortTokyo
이머시브 포트 도쿄 입구 ⓒImmersiveFortTokyo

이곳은 비너스 포트 (Venus Fort)라는 쇼핑몰이 폐장한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비너스 포트는 한때 중세 유럽의 거리를 그대로 재현한 콘셉트로 화제가 되며 인기를 끌었지만 코로나 이후 방문객이 급감하며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쇼핑몰의 유럽풍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하되 여기에 스토리를 입혀 몰입형 테마파크로 전환한 것이죠.

이머시브 포트 도쿄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카타나(Katana)의 대표 모리오카 츠요시(森岡毅)는 망해가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활성화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테마파크는 어트랙션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획일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왔습니다. 이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가 있습니다. 나만 아는 순간, 나만 아는 이야기가 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진행되는 것입니다. ‘체험’을 넘어 ‘경험’이 되는 거죠.

닛케이 비즈니스 인터뷰 중, 모리오카 츠요시

기존 테마파크에서 방문객은 하드웨어(놀이기구)에 몸을 싣고 수동적으로 즐깁니다. 하지만 이머시브 포트 도쿄에서는 놀이기구라는 하드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스토리’를 이용해 정밀하게 설계된 세계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관객이 스스로 움직이고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세계관에 들어간다는 면에서 진정한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팀랩의 몰입형 전시

팀랩은 세계적으로 몰입형 전시를 유행시킨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입니다. 팀랩이 도쿄 토요스에서 운영하는 전시 플래닛(Planets)은 2023년 4월부터 2024년 3월까지 2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박물관으로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고 하죠.

최근 도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장소인 아자부다이 힐스 지하에도 팀랩의 전시장 ‘보더리스(Boarderless)’가 들어섰습니다. 아자부다이 힐스를 개발한 모리 빌딩은 새로운 빌딩을 선보일 때마다 예술 공간 또는 예술 작품을 넣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번 아자부다이힐스에는 팀랩을 선택했습니다.

팀랩의 도쿄 전시 모습 ⓒteamlab

전시의 이름처럼, 관내에 펼쳐지는 것은 보더리스(Borderless, 경계가 없는) 세계입니다. 작품과 작품을 가르는 경계가 없고, 광활한 공간 전체를 스크린으로 삼아 디지털 아트가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섞입니다. 순서도 지도도 없이 희미한 공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예술을 따라 관람객은 방황하고, 탐색하고, 발견합니다.

ⓒteamlab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시야가 열리고 눈앞에 웅장한 폭포가 쏟아져 내리죠. 그 환상적인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며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는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팀랩이 아자부다이 힐스에서 새롭게 선보인 작품 <버블 유니버스(Bubble Universe)>는 거울로 마감된 공간에 여러 개의 구체가 가득해 관객이 가까이 다가서면 빛의 연쇄가 일어납니다. 바닥도 거울로 되어 있어 사방을 구분할 수 없는 공간에서 관람객은 생경한 시각적 자극을 느끼게 됩니다.

ⓒteamlab

현실과 스토리의 경계를 허물다, 숙박형 연극

교토시와 오사카시에 있는 호텔 쉬 (HOTEL SHE)는 숙박하면서 연극을 감상하고 체험하는 ‘숙박형 연극 (泊まれる演劇)’을 비정기적으로 개최합니다. 이곳에서는 현실과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알 수 없는데요. 관객에게도 역할을 부여해 고객이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체크아웃할 때까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는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로비나 객실 등 호텔 전체가 무대가 되죠. 실제 사건인지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몰입도가 높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호텔 전체를 무대 삼아 배우들이 숙박객을 이야기로 직접 끌어들이는 ‘숙박형 연극’. ⓒhotel she kyoto

스토리는 고객이 호텔에 머무는 1박 2일에 걸쳐 진행됩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정해져 있지만 배우의 대사는 대부분 애드리브입니다. 숙박객과의 대화에서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정교하게 캐릭터를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악역으로 등장하는 마녀는 악역이 된 경위까지 세밀하게 설계합니다. 실제 무대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 내용까지 설정해서 캐릭터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죠.

이렇게 구체적인 캐릭터가 탄생하면,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와 대면하는 관객 모두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질 겁니다. 심지어 캐릭터에게 편지를 쓰는 관객도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2024년 5월~8월까지는 <퀸즈 모텔(Queen’s Motel)>이라는 연극을 상연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동화로, 숙박객이 객실이나 로비 등 호텔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배우가 연기하는 이야기 속 캐릭터와 대화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빠져들게 됩니다.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퀸즈 모텔에서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과 맞추어 빨강색 혹은 검정색 드레스를 입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이머시브 포트 도쿄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토리나 캐릭터의 옷을 입고 방문한 사람들을 종종 보았는데요. 의상까지 완비함으로써 몰입감을 더하는 것이죠.

현실과 이야기의 구분이 없는 ‘몰입형 숙박’은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의 여성이 관객의 약 70~80%를 차지하는데요,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거나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비일상적인 장면에 몰입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방문합니다.

약 1~2개월 정도 진행되는 공연에 1,000명 정도 참여가 가능한데 거의 만석인 상황이며 75% 정도의 관객이 다음 공연도 보러오는 등 충성 고객이 많습니다. 스스로 SNS에 적극적으로 연극을 알리는 사람도 많고요.

전통 회화에서도 빼놓을 수 있는 몰입형 전시

기존 미술 업계의 전시에도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작품을 서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체험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겁니다.

2024년 1월 도쿄 시나가와구 테라다 창고에서 ‘반 고흐 라이브 도쿄전’이 열렸습니다. 반 고흐의 작품을 오감으로 즐기는 체험형 전시로 어두운 전시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벽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고, 벽과 바닥에 고흐 작품의 영상이 투사됩니다. 마치 거대한 캔버스에 둘러싸인 기분입니다. 은은한 아로마 향기도 느껴지죠. 고흐의 유명 작품인 ‘해바라기’를 포함하여 수많은 인물상이 360도 펼쳐지며 관객은 반 고흐가 그려낸 세계에 빠져듭니다.

반 고흐 라이브 도쿄전 ⓒvangoghalive

2024년 5월,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 위치한 카도가와 무사시노 뮤지엄에서도 달리의 체험형 전시회인 ‘살바도르 달리’가 열렸습니다. 300평이 넘는 공간에 32대의 프로젝터를 설치한 공간에서는 12막으로 구성된 약 30분 분량의 영상이 재생됩니다. 달리의 사진과 영화, 작품을 편집한 영상이 상영되는데 사람들은 바닥에 앉거나 때로는 멈춰서는 등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각자만의 전시를 즐깁니다.

전시 프로듀서인 이마이(今井)씨는 “어느 한 곳도 정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없고, 올바른 감상법도 없다. 360도로 둘러싸여 있어 보는 사람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각자 자신만의 전시를 만들 수 있다”며 매력을 전합니다.

카도카와 뮤지엄에서 열린 달리 전시 ⓒkadcul

이러한 전시는 20~30대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기존의 딱딱한 분위기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등 예술작품을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몰입형 공간이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레스토랑, 상업시설, 미술관, 박물관 등으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러한 몰입형 경험은 언어가 필요 없는 경우도 많기에 국경을 뛰어넘어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몰입형 경험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스마트폰을 통해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이 느는 지금, 역설적으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오감으로 느끼며 몰입하는 비일상적인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전시들은 체험하는 동안 그 세계에 내가 녹아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단순히 예술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몸을 맡겨야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죠.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인 현대 사회에 지친 이들 중에는 뇌를 비우고 오로지 감각에 의존해 체험하는 공간에서 힐링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희선

고해상 LED와 프로젝션 맵핑의 비용이 낮아지며 현실과 디지털 기술이 융합한 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보다 쉬워진 점도 몰입형 공간이 확산하는 데 기여합니다.

애플의 비전 프로(Vision Pro)와 같은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기기가 보급되며 우리는 쉽게 가상 공간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부러 가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지금, 여기서, 당신만이 느낄 수 있는’ 몰입형 시설을 고객들은 더욱 열광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제로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경험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우리의 생활이 굉장히 편리해졌죠. 하지만 인터넷으로 사물의 본질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최근 주목받는 메타버스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가상 세계에서 인간은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그 현장의 분위기까지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신체적으로 정보를 접하는 것, 그 경험이야말로 가치관을 넓혀 줍니다”. 팀랩의 글로벌 브랜드 디렉터인 쿠도 타카시(工藤岳)씨는 최근 몰입형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인간은 카메라처럼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체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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