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1인 가구가 많은 일본에는 계약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한 공유 주거가 하나의 주거 시설로 보편화됐습니다.

  • 특히 다수가 한 집에 살면서 공간을 나눠 쓰는 셰어하우스가 성업 중인데요. 최근에는 특정 직업 혹은 취미를 타깃으로 명확한 콘셉트를 내세운 이색 셰어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청년들의 주거 대안으로 공유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우리나라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을지 함께 살펴보시죠.

일본에는 화장실과 부엌 등을 함께 쓰며 한 건물에 사는 공유 주거 문화가 일찌감치 발달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전세제도가 없기에 매달 월세를 지출해야만 주거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데요. 이 월세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큽니다. 저성장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소득이 늘지 않는 동시에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젊은이들이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공유 주거로 눈을 돌린 것이죠.

공유 주거는 기존에 지어진 아파트나 공동 주택을 나눠 쓰는 셰어하우스, 애초에 지어질 때부터 공유 주거를 목적으로 만들어져 좀 더 높은 수준의 개인 공간과 공동 시설을 제공하는 코리빙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성업 중인 공유 주거는 셰어하우스입니다. 현재 일본 내 셰어하우스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2년 기준 무려 5800개의 셰어하우스가 운영 중입니다.

그런데 요즘 셰어하우스의 변신이 심상치 않습니다. 특정 취미나 콘셉트에 특화된 공간이 속속 등장하고 있거든요. 단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진화한 겁니다. 어떠한 흥미로운 셰어하우스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을까요?


취미를 공유하는 셰어하우스

도쿄 분쿄쿠(文京区)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의 한 방문에는 ‘수행하는 방 (修行部屋)’이라는 흥미로운 명패가 걸려 있습니다. 건축한 지 50년 넘는 오래된 민가를 개조해 만든 이곳의 월세는 6만 3천엔(약 60만 원)으로 방은 별도로, 주방과 거실은 공유합니다. 오픈하자마자 모든 방이 다 채워졌고 현재는 입주를 원하는 대기자가 줄을 서고 있습니다.

이곳 셰어하우스는 ‘근육 강화’라는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전속 트레이너가 상주하며 입주민에게 개인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것이 인기의 비결이죠(개인 트레이닝 비용은 따로 지불). 다른 입주민과 함께 트레이닝을 하고 운동의 목표와 과정, 힘든 점 등을 서로 공유하기에 운동을 더 잘 하게 만드는 동기부여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테리어 디자인 및 설계 시공 회사 파노마(Panoma)는 2022년 도쿄도 조후시 (東京都調布市)에 자전거를 좋아하는 여성을 위한 셰어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훌륭한 자전거 코스가 있는 타마강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셰어하우스의 입주 조건은 자전거나 트라이애슬론을 취미로 하거나 앞으로 시작하려는 여성입니다. 임대료는 3만8,000엔~4만8,000엔(약 35~45만 원)이며 공용시설 이용비와 관리비로 1만7000엔(약 15만 원)을 별도 지불합니다.

셰어하우스 내 자전거를 유지 보수하는 시설 (사진출처: homes.co.jp/cont/press/rent/rent_01065)

파노마의 셰어하우스는 자전거족의 니즈를 세심하게 배려하여 공간을 기획했는데요. 자전거를 정비할 수 있는 작업장,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트렁크 룸은 일반적인 집에서 보기 어려운 시설입니다.

또한 셰어하우스 입주민이 아니더라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러서 쉴 수 있는 라운지를 설치해 자전거 관련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주민이 아니더라도 사용 가능한 탈의실과 샤워실을 설치하여 자전거 애호가 등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띕니다.

사업 파트너를 만나는 셰어하우스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회사가 취미를 넘어 입주민의 일에 깊게 관여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셰어하우스입니다. 리버티하우스 스타트업(LIVERTY HOUSE START UP )에서는 창업을 희망하는 입주민이 정기적으로 다른 입주민 앞에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세션이 열립니다. 이 자리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창업자들이 많습니다. 입주민들은 서로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요. 월 6만 2,000엔(약 60만 원)에 제공되는 방은 대부분 만실이며 3년 이내 10개까지 지점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리버티하우스 스타트업.

만화가가 모이는 셰어하우스도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타마 토키와소 단지(多摩トキワソウ団地)는 만화가 혹은 만화가 지망생이 입주하는 셰어하우스인데요.

만화가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타마 토키와소 단지 (사진출처: tokiwa-so.net)

타마 토키와소 단지를 운영하는 법인 레지카(LEGIKA)는 광고대행사 등 기업으로부터 만화 및 일러스트 작업을 의뢰 받아 입주자에게 업무를 연결해 줍니다. 또한 입주민이 그린 작품을 자사 만화 앱에 게재해서 판매하는 등 입주민이 지속적으로 수입 있는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합니다. 2023년 7월부터는 대형 출판사에서 수년 간 만화 편집장을 역임한 사람을 섭외해 주민들이 그린 만화에 피드백을 주고 있습니다.

레지카가 이렇게 입주자의 꿈을 응원하는 데 진심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레키자는 본래 만화 제작 및 만화가 육성 사업을 하는 회사이기 때문이죠. 만화가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며 작품을 판매할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 레지카는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함께할 만화가를 발굴하는 윈-윈 관계를 만듭니다.

타마 토키와소 단지 전경 (사진출처: tokiwa-so.net)
책상, 의자, 침대, 에어컨, 냉장고가 있는 1인실 (사진출처: tokiwa-so.net)
만화 그리기에 최적화된 공용 작업실 (사진출처: tokiwa-so.net)
공용 라운지 (사진출처: tokiwa-so.net)
기분을 전환하기 좋은 공용 텃밭 (사진출처: tokiwa-so.net)

‘직업을 시험해 보는’ 코리빙 하우스

캠퍼스 노트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적인 문구용품 및 사무용 가구 제조업체 고쿠요(KOKUYO)는 색다른 코리빙 하우스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는데요.

더 캠퍼스 플랫 토고시(The Campus Flats Togoshi)라는 이름의 코리빙 하우스는 지하 1층과 지상 5층 규모 건물입니다. 2층부터 5층까지는 주거공간 39개,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는 입주자와 인근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 및 ‘스튜디오’로 불리는 시설이 있습니다.

스튜디오는 더 캠퍼스 플랫 토고시만의 특징입니다. 요가와 댄스를 할 수 있는 피트니스 스튜디오, 요리를 할 수 있는 쿠킹 스튜디오, 음식점 영업 허가를 받은 주방, 회의나 개인 레슨이 가능한 회의실 등 총 8가지 타입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소정의 이용료를 내면 입주민 누구나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입주민이 스튜디오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음식점 영업허가를 받은 스튜디오에서는 1일 단위로 자신만의 가게를 개점해 바나 카페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피트니스 스튜디오에서는 요가 강사가 되어 레슨을 개최할 수 있고, 접이식 침대를 갖춘 뷰티 스튜디오에서는 마사지 및 메이크업 등 자신이 가진 기술을 활용하여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커튼으로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요가나 댄스 등에 이용할 수 있는 피트니스 스튜디오
음식점 영업 허가를 갖춘 주방이 딸린 스튜디오. 1일 단위로 가게를 개점할 수 있다.
워크숍이나 행사장으로 사용하는 라운지형 스튜디오
1인실 모습

이곳의 입주 예정자는 본인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테스트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고쿠요 또한 “인생 100년 시대에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중요한 기간을 제공”하겠다고 소개합니다.

더 캠퍼스 플랫 토고시의 콘셉트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삶’입니다. 살면서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죠. 일하는 방식과 생활 방식이 다양해지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지금, 다음 인생의 라이프 스테이지를 모색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합니다.

최근 사업 환경이 변화하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고쿠요는 본인의 역할을 ‘워크 앤 라이프스타일 컴퍼니’로 재정의합니다. 문구, 가구라는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고쿠요 경영기획본부 이노베이션센터

고쿠요는 ‘취미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보거나 세상에 발신하고 싶은 사람’을 입주 대상으로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셰어 하우스에서는 찾기 힘든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일까요? 입주 희망자는 고쿠요가 진행하는 인터뷰를 거쳐야 하는 등 입주하기 위한 장벽이 높습니다.

이는 더 캠퍼스 플랫 토고시가 구현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사람이 입주함으로써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커뮤니티의 질을 담보하기 위함입니다. 입주 절차가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입주자들이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공유 주거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구가 감소하고 빈 집이 늘어나자 특별한 콘셉트를 부여하여 공유 주거로 개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공유 주거는 이제 니치 마켓을 향합니다. 명확한 콘셉트로 기획한 하드웨어 시설, 그리고 커뮤니티와 서비스 등의 소프트웨어를 내세워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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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내용은 2023년 11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