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조선시대부터 육조 거리로 존재해 온 광화문광장은 서울을 대표하는 장소로 손꼽힙니다.

  • 광화문광장이 유명한 만큼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광장 주변 오피스 건물들 역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요.

  • 광화문 교보빌딩, KT광화문빌딩 등 주요 건물들이 긴 세월 동안 어떻게 변화를 모색하며 광장 풍경에 스며들었는지 알아봅니다.

조선시대부터 관청이 즐비했던 광화문광장은 오늘날 서울 도심을 상징하는 장소로 손꼽힌다. 광장 자체 뿐 아니라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조화는 어느덧 하나의 풍경으로 여겨질 만큼 눈에 익숙하다. 이러한 조화는 그저 오래된 풍경이기 때문에 익숙해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광화문광장은 수차례 바뀌었는데, 광장과 함께 ‘랜드마크’가 된 주요 건물들 역시 이 변화에 맞춰 크고 작은 변신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울 광화문광장 모습. 광장이 수차례 재조성 되는 사이 주변 빌딩들도 그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사진출처=namu.wiki/w/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을 만들기 이전 세종대로는 왕복 20차로로, 광활한 너비를 자랑했다. 하지만 2009년, 왕복 차선을 나뉘던 중앙분리대를 광화문광장으로 바꾸면서 왕복 16차로로 줄어들었다. 역사적인 장소에 시민들이 거닐 수 있는 광장을 복원한다는 발상은 좋았다. 문제는 광화문광장이 중앙분리대 출신이기 때문에 광장에 가려면 세종대로 양쪽에서 길을 건너야 했다는 것. 처음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고립된 섬처럼 보였다.

2009년 조성된 광화문광장 풍경. 좌우로 차와 버스가 지나가는, 고립된 ‘섬’과 같은 구조였다.

공원이라 부르기엔 미흡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광장에 관심을 보였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진 공공 장소는 주변 부동산에 변화를 만든다. 인근 부동산 소유자는 높아진 잠재가치를 임대료로 전환하기 위해 건물의 신축이나 리모델링(증·개축)을 진행한다.

광화문광장도 주변 부동산의 변화를 촉진했다. 광화문광장에 면한 건물들은 신축보다는 리모델링을 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신축에 비해 리모델링이 공사 기간이 짧아 임대료가 들어오지 않는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서울 도심 높이 제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공공 장소라는 특징도 리모델링이 선호되는 이유였다.

광화문광장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리모델링된 건물은 광화문을 정면에 두고 바라볼 때 남서쪽 모서리에 있는 현대해상 본사다. 1976년에 준공된 이 건물은 현대그룹의 본사 및 광화문 지사로 쓰이다 2001년 현대해상이 현대건설로부터 매입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부터 3년간 정림건축의 설계로 리모델링됐다. 크게 바뀐 건 입면이다. 사무실 건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격자형 패턴을 유지한 상태에서 입면 전체를 덮고 있는 유리에 손톱깎이로 잘라놓은 것 같은 석재를 삽입했다. 정림건축은 “나라의 행정과 문화거리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종로의 장소성을 감안”하여 우리의 전통 건축물 속에 담겨 있는 석축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설명한다.

1976년 준공 후 2004년 리모델링을 완료한 현대해상본사

자그마한 건물들이 섞여 있는 광화문광장 서쪽에 비해 동쪽은 규모가 큰 건물들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그 중 두 건물은 ‘쌍둥이’다. 1961년 정부가 미국 국제협조처(ICA)와 공동부담으로 재원을 마련해 똑같은 형태로 지었다. 북쪽 건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용하다 2012년에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개장했고, 남쪽 건물은 1968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대사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1961년에 준공된 두 건물 중 왼쪽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오른쪽은 미 대사관 청사로 쓰이고 있다.
오늘날 외관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각자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사관 남쪽에는 광화문 교보빌딩KT광화문빌딩이 있다. 1982년과 1986년에 각각 준공된 두 건물은 첫 번째 광화문광장 개장에 맞춰 변화를 모색했다. 그런데 두 건물이 선택한 방법은 서로 달랐다.

먼저 광화문 교보빌딩은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자리에 있다. 주소마저 ‘서울 종로구 종로1’이다. 그래서 입주사에게는 입주 자체만으로 상징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교보생명그룹 계열사보다 외국 대사관과 금융 및 글로벌회사의 임대 비율이 높다.

리모델링 전인 2005년 광화문 교보빌딩의 모습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광화문 교보빌딩은 2009년부터 2년 동안 ‘몰래’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리모델링을 맡은 대림산업이 입주업체가 근무하는 가운데 공사를 진행하는 ‘재실(在室) 리모델링 공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최상층 4개 층의 입주업체만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고, 한 층의 공사가 끝나면 다른 층 입주업체를 그곳으로 옮기는 순환방식이었다. 심지어 평일에는 입주업체의 업무가 끝난 밤 9시부터 새벽 5시 사이에 주요 공사를 진행했다. 이렇다 보니 광화문 교보빌딩의 리모델링 작업은 시민은 물론, 임차인도 쉽게 인지할 수 없었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건물 옆면의 갈색 콘크리트 타일(PC타일)이 유리로 바뀐 것 외에는 외관의 변화도 거의 없었다.

2010년 리모델링을 마무리 한 광화문 교보빌딩의 모습

사실 광화문 교보빌딩이 보존되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80-90년대 여러 세계최고층건물을 설계했던 아르헨티나 출신 건축가 시저 펠리(Cesar Pelli)가 설계에 참여한 건 주목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그 디자인이 독창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동색의 격자 프레임이나 원기둥이 한국의 목구조를 상징한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런 디자인 요소는 교보빌딩에 앞서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일본 롯폰기의 주일 미국 대사관에 이미 적용됐다.

그럼에도 광화문 교보빌딩은 준공 후 30년간 시민들이 보아온 익숙한 풍경이다. 광화문로에 가면 황토색과 고동색의 건물이 늘 거기에 있다는 대중의 인식은 명확했다.

교보생명그룹은 그 익숙함을 건드리지 않았다. 익숙함은 유지한 채 시민들과의 접점을 늘렸다. 리모델링이 끝난 뒤 광장에 면한 1층에는 환대 성격이 높은 식음시설을 입점시켰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교보빌딩 로비를 드나들게 됐다. 예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로비의 실내 정원(winter garden)을 보기 위해 광장을 찾은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광장을 찾은 사람들이 로비를 드나들면서 광화문 교보빌딩의 또 다른 유입 요소가 된 실내 정원

반면, KT광화문빌딩은 대대적인 공사를 선포했다. KT광화문빌딩은 교보빌딩과 달리 KT가 대부분을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공실에 따른 임대료 감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기업의 비전을 드러내는 새로운 건물이 더 필요했다. 청진동골목을 사이에 두고 웨스트(West)와 이스트(East) 건물 2동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웨스트는 기존 KT광화문빌딩을 철거하고 신축하고, 이스트는 신축으로 지을 계획이었다.

2010년 초 KT는 <광화문지역 랜드마크 조성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용역>을 위해 해외의 슈퍼스타 건축사무소 12곳을 지명했다. 애플신사옥을 설계한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Partners), 베이징의 CCTV 본사를 만든 OMA, 삼성동 현대아이파크타워를 설계한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서초삼성타운을 설계한 KPF 등을 초대했다. 최종 선정된 곳은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와 런던의 더 샤드(The Shard)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RPBW)였다.

‘따뜻한 하이테크’로 요약되는 렌조 피아노는 대형 규모의 건물을 세련된 소재와 공학적인 요소를 사용해 땅에 안착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은 도시 속에서 튀지 않는 점잖은 랜드마크로 여겨진다.

KT광화문빌딩에서 렌조 피아노가 제안한 계획안도 비슷했다. 그는 건축물의 주변 맥락을 고려해 두 개의 정원을 옥상과 대지에 조성하고자 했다. 그리고 투명하고 가볍게 보이는 유리 박스를 두 정원 사이에 삽입했다. 옥상에 조성된 루프 가든은 건물을 둘러싼 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대지에 조성된 어반 가든에는 한 때 큰 하천이었던 중학천을 연상시키는 물길을 넣어 도시화 이전의 시적인 서울 풍경을 재현했다. 또한 발굴된 유물을 살펴보고 광장과 연결하여 시민들이 마음껏 오갈 수 있도록 했다.

렌조 피아노가 제안한 KT광화문빌딩 마스터플랜. 이스트와 웨스트 건물 두 동을 신축할 계획이었다. ⓒRPBW

그렇게 KT광화문빌딩 이스트는 먼저 시공에 들어가 2015년 완공됐다. 건물 주변에 인공 구릉으로 조성된 어반 가든과 지하 1층에는 1,089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렌조 피아노 특유의 투명함이 느껴지는 KT광화문빌딩 이스트(왼쪽). 이스트 1층에서는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을 전시한다.

다른 한 축인 웨스트 계획안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KT가 이스트를 짓는 동안 웨스트 신축을 포기하고 기존 KT광화문빌딩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24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이 웨스트 리모델링 설계는 희림건축이 맡았는데, 전체적으로 투명하고 가벼운 외관은 이스트와 비슷하다. 하지만 저층부에는 렌조 피아노가 제안했던 어반 가든이 아닌 공개공지와 상업시설이 배치됐다.

KT가 웨스트 신축 대신 기존 KT광화문빌딩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하면서 위와 같은 리모델링안이 채택됐다. ⓒ희림건축

2022년, 광화문광장은 다시 한번 변화를 꾀했다. 세종문화회관이 위치하던 서쪽 도보와 완전하게 통합돼 ‘섬’에서 벗어난 것이다. 도로는 이제 7차선으로 줄었다. 광장이라는 영역성은 약해졌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서쪽 영역에서는 세종문화회관 안쪽 동네의 활동이 광장으로 전파되는 움직임이 보인다. 광장과 주변 도시 조직이 새롭게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2022년 재단장을 마치고 서쪽 도보와 완전하게 통합된 광화문광장

이제 새로워진 광장에 주변 건물들이 어떻게 조응할지 관심을 모은다. 특히 광장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교보빌딩, 그리고 내년 웨스트 완공을 앞둔 KT광화문빌딩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 광화문광장을 방문하는 시민들은 바야흐로 주변 건물들에 ‘다가가고’ 있다. 더 이상 차창 너머로 흘려 보냈던 무미건조한 건물 풍경이 아니다. 도보 접근성이 높아진 덕분에 시민들은 건물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어떤 건물인지 호기심을 갖고 심지어 로비를 방문해보는 제스처를 보인다. 주변 건물들은 이런 제스처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습과 기능을 바꾸고 있다.

광화문광장의 세 번째 버전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 모습은 남은 왕복 7차선 도로마저 광장으로 바꿔 세종대로 전체가 광장이 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요구가 커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광장 동쪽에 있는 두 건물이 시민들이 동쪽 지역으로 다가가려는 제스처를 받아주고 나아가 촉진해야 한다. 두 건물이 해주어야 하는 새로운 역할이다. 내년 KT광화문빌딩 West의 리모델링이 끝난 뒤 두 건물이 이끌어갈 광화문광장의 세 번째 버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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