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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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송현아·남현아를 아시나요? 경기도 신도시 시민에게는 익숙한 줄임말일 겁니다. 각각 김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남양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을 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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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부르기 쉽도록 줄여쓰기 시작한 것이 퍼지면서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줄임말 퀴즈로 등장할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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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곳 모두 쇼핑몰에 해당하지만, 위치에 따라 디자인과 운영 전략이 다르다는데요. 방승환 도시건축 작가가 직접 세 곳을 다녀와 비교했습니다.
“백화점으로 갈래? 쇼핑몰로 갈래?”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남는 선택지는 백화점 아니면 쇼핑몰이다. 어디가 좋을까.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쇼핑몰 중에서도 교외 쇼핑몰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교외 쇼핑몰의 선두주자는 프리미엄 아웃렛이다. 프리미엄 아웃렛은 도심에서 널찍이 떨어진 입지에 일종의 모조 도시처럼 존재한다. 쇼핑 목적만 있는 게 아니다. 조경과 산책길 등이 잘 꾸며져 있어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를 하기에도 좋다. 가로등과 벤치, 심지어 아동용 미니 트램까지 설치된 이곳은 웃음과 평화로 가득한 마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방문객은 곳곳을 여행객처럼 돌아다닌다.
우리나라에 교외형 프리미엄 아웃렛이 처음 등장한 건 2006년. 첫 타자인 신세계사이먼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은 미국 교외 지역의 아울렛 모델을 그대로 따랐다. 공간 구성이나 건축 디자인, 한쪽 구석에 배치된 푸드 코트와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까지 유사했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달리다 쇼핑몰과 가까운 인터체인지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해 주차할 때쯤이면 지쳐버리는 과정까지 닮았다. 그래서 신세계사이먼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을 처음 갔을 때 ‘교외에 들어서는 쇼핑몰은 다 이렇구나’ 하는 마음에 특별히 새롭진 않았다. 미국의 아웃렛과 판박이처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2016년 개장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이하 송현아)을 갔을 때 ‘그래, 이게 한국형 아웃렛이 될 수 있지’ 생각했다. 이후 송현아보다 앞서 만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이하 김현아)을 가보면서 확실히 ‘현아’에는 다른 아울렛과 다른 차별화 전략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사실 현대백화점그룹이 신세계사이먼이나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프리미엄 아웃렛과 다른 전략을 시도한 데는 이유가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아웃렛 시장에서 후발주자였기 때문이다.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해선 뚜렷한 차별화가 꼭 필요했다.
내가 재미있게 관찰한 현대백화점그룹의 전략은 ‘입지를 고려한 외부공간 구성’이다. 기존 아웃렛에서 외부공간은 각 매장을 연결하는 통로에 지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통로가 모이는 지점에 작은 광장을 두거나 한쪽에 놀이터를 배치해 부모 한명이 쇼핑을 하는 동안 나머지 한명이 아이를 돌보도록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현아 외부공간에는 ‘수공간’이 있다. 인접한 경인아라뱃길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처음 수공간을 봤을 때 쇼핑이 아니라 물놀이를 위해 이곳에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약점이 있다. 일단 아웃렛 내 식음매장 규모가 작고, 수공간으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두 공간을 함께 즐기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아의 시도는 의미 있다고 본다. 수공간이 쇼핑몰의 유입 요소이자 주변 환경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새롭기 때문이다(설계는 YKH건축사사무소).
김현아 내 식음매장의 아쉬움은 송현아에서 개선됐다. 식음 시설을 쇼핑몰 1층 한가운데에 위치한 十자형 통로에 배치했다. 이는 그간 쇼핑 시설에 적용되어 온 통념을 깨는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쇼핑 시설에서 식음시설은 샤워 효과와 분수효과 때문에 상층이나 지하층에 자리한다. 샤워효과(Shower effect)는 시설 상층에 식당가와 영화관 등 목적성 강한 집객시설을 배치하는 전략이다. 고객이 자연스럽게 아래층의 매장들을 둘러보며 내려오면서 계획하지 않았던 구매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분수효과(Fountain effect)는 지하에 식품매장과 마트 등을 배치하는 전략이다. 아래에서 목적을 달성한 이들이 밖으로 나가려면 지상으로 나가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분수처럼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매장에 들러 쇼핑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송현아는 식음시설을 상층도, 지하층도 아닌 쇼핑몰 1층 한가운데에 넣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붙잡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일부 부지가 지구단위계획에서 공공보행통로*로 지정돼 있어서 이를 따른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대지 안에 일반인이 보행 통행에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24시간 개방된 통로.
도심에 지어진 국내 첫 프리미엄아울렛을 표방하는 송현아는 송도 신도시 내 인천테크노파크 확대조성단지(7공구)에 자리잡고 있다. 대지 서쪽으로는 인천지하철1호선 테크노파크역이 지나가고, 동쪽으로는 송현아보다 더 큰 규모의 상업·판매시설인 트리플 스트리트(Triple Street) 개발이 예정돼 있었다. 송현아는 지하철역에서 시작해 인천글로벌대학캠퍼스와 포스코글로벌R&D센터까지 뻗어나가는 강한 보행축의 시작점에 있다. 그래서 송현아의 외부공간 개념은 ‘가로(街路)’다.
송현아 설계를 맡은 희림건축도 이러한 입지를 고려해 “인상적인 정문 설계와 지하철과 주변 도시조직으로 뻗어나가는 보행자 통로를 전략적으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 외 대규모 키즈카페(지금은 폐업), 교보문고, 식료품 매장, 꽃가게 등은 송현아가 도심에 있기 때문에 입점할 수 있는 업종이다.
건축적인 면에서도 송현아는 아울렛과 백화점의 특징이 섞여 있다. 상층부는 교외 아울렛에 가깝고, 지하층은 도심 백화점과 유사하다. 송현아의 지하층은 지하철과의 연결되어 편리할 뿐 아니라,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야외 쇼핑몰의 한계를 상쇄한다.
송현아 개장 4년 뒤인 2020년에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이 개장했다.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진건지구 남쪽에 위치해 남현아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도농역 주변 아파트 단지, 동쪽의 지금지구까지 충분한 배후 수요를 업고 있다. 하지만 대지 주변 상황을 보면 북부간선로 때문에 남현아 북쪽의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도보로 접근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남현아는 이런 입지적 특징을 고려해 사람들을 모이도록 유도하는 ‘광장’을 만들었다. 외부 공간은 대형 조형물이 설치된 큐브스퀘어(Cube Square)와 얕은 수공간이 있는 워터스퀘어(Water Square)로 나뉜다. 또한 젊은 부부가 많은 신도시 인구의 특징을 반영해 영유아가 좋아할 만한 시설을 충분하게 설치했다. 실내 정원인 하이메 아욘 가든(Jaime Hayon Garden), 실내 놀이터인 모카 플레이(MOKA Play), 어린이 도서관인 모카 라이브러리(MOKA Library)가 그것이다.
남현아에서 시도된 또 다른 차별화 전략은 유리로 된 큐브(Cube)다. 큐브는 식음시설(1층)과 편집매장(2층), 도서관(3층) 그리고 서점(4층)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쇼핑과 아트, 체험의 공존’이라는 남현아의 지향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포부는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시(市)나 구(區) 이름을 붙였던 다른 지점들과 달리 쇼핑과 문화, 예술을 총망라하는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다른 스페이스 원(Space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설계는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상업·판매시설에서 선례는 참고해야 할 대상이자 뛰어넘어야 할 경쟁자다. 새로운 상업·판매시설이 생겼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지출을 두 배, 세 배로 늘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상업·판매시설의 매출은 –가족 단위를 유치하든, 체험 위주로 MD를 구성하든, 이야기를 팔든, 경험을 팔든- 기존 상업·판매시설의 매출을 상당 부분 빼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상업·판매시설의 경쟁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본다.
김현아, 송현아, 남현아는 도심에 있다는 입지적 특징을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며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씩 이동해야 하는 미국의 교외 쇼핑몰과는 다른, 밀도 높은 신도시 삶에 익숙한 우리나라만의 상황을 반영했다.
그 결과 세 현아의 차별화 전략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2022년 매출을 기준으로 김현아(6,237억원), 남현아(4,541억원), 송현아(4,497억원)는 전국 아울렛 20개 점 중 3위~5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지를 고려한 외부공간’이 쇼핑몰이 고객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 중 하나라는 인식을 다른 기업에도 심어주었다. 그래서 요즘 새로운 쇼핑몰이 개장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어떤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가 보다는 어떤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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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내용은 2023년 9월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