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최근 세계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호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솝’을 무려 3조가 넘는 금액에 인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
이솝은 매출의 75% 이상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오는 흥미로운 브랜드인데요.
-
이솝이 컬트적인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를 들여다봤습니다.
얼마 전 로레알이 3조 3000억원에 인수한 화장품 브랜드 이솝은 차별화된 매장으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전 세계 400개 매장을 운영하는데, 본사의 비전에 맞춘 하나의 콘셉트를 적용하는 게 아니라 각 매장이 동네에 어떻게 하면 잘 스며들 것인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민하죠. 그리고 이것은 이솝의 성장을 견인하는 동력이 됐습니다. 1편에 이어 이솝이 ‘맥락’이 있는 매장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 살펴봅니다.
이솝 매장의 DNA ②주변의 문화 요소 활용
이솝이 매장을 만들 때 활용하는 두 번째 방식은 현지의 일상적인 문화 요소를 인테리어에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이솝 놀리타(Aesop Nolita)를 살펴볼까요. 여기의 인테리어는 무척 단순한데요. 수많은 층이 쌓인 듯한 회색빛 매스 덩어리가 벽과 가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뉴욕 타임스>입니다. 1851년 창간 이래 뉴욕의 모든 정보를 다루는 <뉴욕 타임스>에 경의를 보이면서 총 2800부의 신문을 차곡차곡 쌓아 40만 개의 패널로 만든 후 이를 종이 벽돌로 활용했어요. 마치 고운 회색 대리석처럼 보이는 이 종이 벽돌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질 거예요. 뉴욕의 시간과 함께 기품 있게 세월을 맞이하겠죠. 신문에 포착한 뉴욕 시민의 이야기와 함께 말이에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이솝 쁘띠 브르고뉴(Aesop Petite Bourgogne)는 짙은 녹색 스웨이드와 황동을 사용해서 세련되면서도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게 꾸민 이유는 간단합니다. 매장이 들어선 지역이 예로부터 몬트리올의 재즈 중심지로 꼽혔거든요. 그래서 재즈 클럽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통해 지역 유산의 전성기를 복원하고 지역민에게 향수를 선사합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세운 이솝 욕빌(Aesop Yorkville)도 흥미로운 곳이에요. 여기는 특정한 장식이 반복적으로 보입니다. 인근이 빅토리아 시대 주택으로 가득 찬 동네라서 그 골목길과 광장, 집에서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주조를 이루는데요. 이런 동네 분위기에 화답하듯 예스러운 난간 장식을 패턴처럼 매장 곳곳에 통일감 있게 적용했어요. 마치 원래부터 여기에 있던 매장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있는 이솝 그라벤스트라세(Aesop Grabenstraße)는 매장 내부를 마치 원형 극장처럼 만들어 제품을 배치했어요. 매장 위치가 그라벤스트라세 광장과 바로 맞닿아 있기 때문인데요. 공공장소로 애용되는 광장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기 위해 콘크리트 싱크대는 마치 분수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매장의 중심에 놓고, 전나무로 만든 층계형 선반을 동그랗게 쌓아가면서 마치 야외극장 객석에 앉아있는 인파처럼 제품을 놓았어요.
이런 식으로 매장이 위치하는 지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품으려는 노력은 이솝 매장이 하나하나 빛나는 단일체로 기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솝의 시그니처 스토어 전략은 과연 얼마나 성공했을까요? 브라질의 화장품 회사인 나투라앤코가 2012년 이솝의 지분 대부분을 사들이고 2016년 완전한 소유권을 얻어 운영해왔는데요.
나투라앤코가 인수한 후 10년 동안 이솝은 매년 30~40% 고속 성장을 계속하면서 2022년 기준으로 총매출 5억 3700만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인수 전과 비교하면 20배 가까이 늘어났죠. 진출 국가는 8개국에서 29개국으로, 시그니처 스토어와 입점 매장은 52개에서 395개로 늘었습니다. 그 중 시그니처 스토어는 현재 289개예요. 말 그대로 폭풍 성장입니다.
이런 이솝의 매출에서 스토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5%가 넘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뚜렷한 교훈을 줍니다. 고객은 이솝의 시그니처 스토어를 이용하면서 브랜드에 대해 이해하고 지갑을 연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기적이 가능한 이유는 이솝 매장이 현지인에게는 익숙한 느낌을 품은 곳으로, 외부인에게는 독특한 관광 명소로 기능하면서 그 도시의 핫플이 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솝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세계 곳곳의 시그니처 스토어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니까요.
반면, 아쉬움이 남는 한국 이솝 시그니처 스토어
이제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할 만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솝의 활약상이겠죠?
이솝에게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입니다. 한국 시장의 비중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큽니다. 이솝의 한국법인인 이솝 코리아의 매출은 2021년 914억원을 올렸고 작년에는 아마 1000억원을 달성했다고 예상하죠.
그런데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매출이 폭증한 탓인지, 한국에 있는 시그니처 스토어의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상당히 평범합니다.
일단 현지 건축가와 관계를 맺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는 이솝의 성향과는 다르게 현재 전국에 존재하는 14곳 중 우리나라 건축가와 협업한 예는 없다시피 합니다.
첫 번째 시그니처 스토어인 이솝 가로수길은 한국의 와이즈건축과 함께 했지만, 매장을 이전하면서 홍콩의 건축회사가 본사 인하우스 팀과 협업했습니다. 이솝다움이 잘 보인다는 평을 받는 이솝 사운드 한남도 같은 홍콩 스튜디오의 작업이고요. 이솝 삼청의 경우 일본 건축가가 디자인을 맡았답니다. 성수동의 핫플레이스인 이솝 성수와 부산의 명물로 떠오른 이솝 부산은 인하우스 팀이 진행했고요. 이솝 제주과 이솝 한남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회사가 맡았어요.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한국의 건축회사를 발굴해서 호흡을 맞춰볼 만도 하건만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국의 전통 가마에서 영감을 받아 형상화했다는 이솝 사운드 한남은 벽돌을 이용해 따듯한 느낌을 살린 매장입니다. 그에 반해 이솝 부산은 낡은 기와를 모아 그 위에 유약을 칠하고 푸른색의 기와로 다시 만들어 인테리어에 활용했는데요. 매장에서 보이는 바다와 색으로 연결될 뿐이지 부산에만 있는 지역성을 잘 적용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예는 이솝 제주인데요. 제주의 어로 문화를 대표하는 해녀에서 영감을 받아 그들이 입는 잠수복의 원단인 네오프렌 시트를 파티션으로 활용했습니다. 그 색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오렌지색이에요. 2012년부터 해녀의 안전을 도모하고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잠수복 상의를 오렌지색으로 바꾼 맥락을 매장에 적용한 것입니다. 해녀복 하면 검은색에 익숙하지만, 이미 오렌지색 잠수복이 공식적으로 쓰인 지 10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오렌지색 네오프렌을 해녀의 상징으로 차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인 접근법이 돋보입니다.
이솝은 말합니다. 잘 고려된 디자인은 우리의 삶을 향상시킨다고요. 이솝이 익숙하지 않다면 시그니처 스토어에 슬쩍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화장품 브랜드가 어떻게 공간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전달하고 팬을 만들었는지 단박에 보실 수 있을 테니까요.
• 해당 콘텐츠는 외부 필진이 작성한 글로 당사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해당 콘텐츠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및 투자 권유, 종목 추천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 상기 내용은 2023년 4월 15일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며 시장 환경 등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