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AI 경쟁의 본질이 단순한 모델 성능을 넘어, 필요한 전력을 적기에 확보하고 운영하는 ‘인프라 실행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노후 전력망과 공급망 지연은 데이터센터 가동을 늦추는 핵심 불확실성이며, 이는 곧 비즈니스 기회비용의 상실을 의미하죠.

  • 전력망 접속을 기다리는 대신 현장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온사이트 발전’은 사업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자산 가치를 높이는 전략적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지난 1년간 시장의 관심사는 ‘누가 더 강력한 AI 모델과 반도체를 확보하는가’였습니다. 글로벌 빅테크와 투자자들의 자본은 주로 연산 능력(컴퓨팅 파워)의 확장, 즉 칩의 확보에 주로 집중됐습니다.

그러나 2026년, 산업의 병목은 ‘칩’에서 ‘에너지’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AI 확산이 촉발한 전력 수요는 물리적 한계를 이미 넘어섰어요. 국제에너지기구(IEA)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전력 수요의 구조적 상승을 예고하고 있지만, 노후화된 중앙 집중형 전력망(Grid)은 이 급격한 부하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주요국 전력 수요 증감률 추이와 2026년 반등 전망
<주요국 전력 수요 증감률 추이와 2026년 반등 전망> 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현재 AI 산업의 성장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인프라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전력은 이제 기업의 재무제표 상 비용 항목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존폐를 결정하는 강력한 물리적 제약 조건으로 격상되었죠.

시장의 핵심 질문 또한 이동하여, 이제는 ‘필요한 고전압 전력을 적시에 수급할 수 있는가’가 투자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온사이트 발전이라는 그리드 밖의 해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온사이트 발전 위상 변화, 비상용에서 ‘주 전원’으로

온사이트 발전이란 전력이 필요한 현장(Site)에 직접 발전 설비를 구축하여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입니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공급받는 기존의 중앙 집중형 체계와 달리, 수요처가 곧 생산지가 되는 ‘분산형 전원’의 핵심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전 시를 대비한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주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연료전지(SOFC)나 가스터빈 등을 활용해 365일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자립적으로 공급하는 ‘상시 주 전원’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외부 전력망의 용량 부족이나 접속 지연 리스크를 우회하여 비즈니스의 가동 확정성을 스스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이러한 위상 변화의 중심에는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독립형 전력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온사이트 발전은 단일 설비를 넘어 연료전지, 에너지 저장장치(ESS),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지능형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리드와 연계하여 전력 비용을 최적화하고, 외부망 사고 시에는 즉시 독립 운전(Island Mode)으로 전환하는 식이죠.

결국 온사이트 발전은 단순한 기계 설비를 넘어, 건물 자체를 하나의 지능형 발전소로 변모시키는 핵심 인프라로 격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폭발하는 AI 전력 수요

그렇다면 왜 최근의 인프라 투자 시장은 온사이트 발전을 전력 공급의 핵심적인 검토 대안 중 하나로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배경에는 가파른 성장이 예상되는 AI 산업의 전력 수요와, 이를 즉각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기존 인프라 간의 ‘속도의 차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25년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에 따르면, 2030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약 945TWh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가트너 역시 올해 전 세계 AI 지출이 전년 대비 44% 증가한 2.52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가트너는 특히 AI 최적화 서버 지출이 49% 폭증하며 하드웨어 투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요국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과 전체 수요 대비 비중
<주요국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과 전체 수요 대비 비중 (2022 vs 2026)> 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전세계 AI 시장 지출 규모
전세계 AI 시장 지출 규모

문제는 이러한 전방 산업의 확장 속도를 실제 전력 인프라가 기민하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골드만삭스가 지적했듯,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계통 접속 대기(Grid Backlog)’ 정체가 심화되면서 자산의 실질적인 가동 시점이 불투명해지는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통상 데이터센터는 착공 후 완공까지 약 2~3년이 소요되지만, 이를 지원할 송전탑 건설과 계통 보강에는 최소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요구됩니다. 2025년 북미 전력신뢰도기구(NERC)가 경고한 것처럼, 인프라 확충 속도와 설비 증설 속도 간의 미스매치로 인해 완공된 자산이 방치될 가능성이 현실적인 투자 리스크로 부상한 것입니다.

변압기 하나에 3년, 기다림 자체가 기회비용

나아가 전력난의 병목은 전력망을 넘어 핵심 장비 공급망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드맥킨지의 2025년 2분기 데이터에 따르면, 발전소용 승압 변압기(GSU)는 평균 143주, 송·변전용 대형 변압기는 128주 수준까지 리드타임이 늘어났습니다. 변압기 한 대를 인도받는 데만 3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셈입니다.

‘필요할 때 즉시 전력을 수급한다’는 전통적인 투자의 전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계통 연결만을 무기한 기다리는 것은 자본의 회수 시점을 늦추고 큰 기회비용을 누적시키는 재무적 부담으로 직결됩니다.

이처럼 수요의 폭증과 공급망의 마비라는 이중고가 겹치면서, 투자자들은 이제 외부 변수에 따른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전력 수급의 주도권을 직접 확보할 수 있는 온사이트 발전 모델을 실질적인 돌파구로서 비중 있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지 규제와 속도의 한계를 돌파하는 SOFC

살펴보았듯 온사이트 발전은 인프라 지연 리스크를 우회하는 전략적 카드지만, 실제 구축 단계에서는 도심 인근의 엄격한 입지 규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기존 가스터빈 방식은 가동 시 발생하는 소음과 배출가스 리스크로 인해 도심형 데이터센터 부지에서의 인허가 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규제적 난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입니다. 특히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블룸에너지(Bloom Energy)는 창립자 KR 슈리다르가 NASA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이른바 ‘블룸박스(Bloom Box)’를 통해 전통적인 발전 방식의 틀을 완전히 깨트렸습니다.

그 핵심 기제는 물리적인 마찰이나 연소 과정 없이 이루어집니다. 장치 내부에 연료(수소 또는 천연가스)와 산소를 주입하면, 특수한 세라믹 전해질(Ceramic Membrane)이 필터 역할을 수행하며 산소 이온의 이동을 유도합니다. 수소와 산소가 화학적 인력에 의해 결합하려는 순간 발생하는 전자의 흐름을 외부 회로로 연결하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이 생성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전기화학적 공정은 블룸박스라 불리는 소형 냉장고 크기의 모듈형 서버 안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블룸에너지가 구현한 이 시스템의 본질적인 차별점은 연료를 태우는 ‘연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계적인 회전이나 폭발적인 연소 없이 상자 내부의 조용한 화학 반응만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의 고질적 문제였던 소음과 진동, 유해 배출가스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비즈니스적 무기: ‘시간’을 점유하는 자본 효율성 전략

투자 측면에서 SOFC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계통 접속의 불확실성을 우회하는 상대적 구축 속도에 있습니다. 수년이 소요되는 변압기 수급이나 송전망 확충을 무기한 기다리는 대신, 수요처의 조건에 맞춘 신속한 현장 설치를 통해 자산의 유휴 기간을 축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듈형의 블룸박스
출처: Bloom Energy

이러한 속도의 핵심은 블룸박스의 모듈형 구조에 있습니다. 마치 레고 블록을 쌓듯 유연한 확장이 가능한 이 시스템은 대규모 발전동 건설 없이도 주차장이나 옥상 등 유휴 공간을 활용한 즉각적인 배치가 가능합니다. 나아가 수소 인프라가 미비해도 기존 도시가스(LNG) 배관을 활용해 즉시 발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입지 규제가 엄격한 도심권에서도 자산 가동의 확정성을 확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그리드 밖에서 찾는 자본 효율성 전략

최근 시장의 움직임은 온사이트 발전의 전략적 가치를 실증하고 있습니다. 2025년 10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브룩필드(Brookfield)는 블룸에너지와 최대 50억 달러(약 6조 8,000억 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브룩필드는 자사의 ‘AI 전력·컴퓨팅 공급망 확충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블룸에너지를 선정하고, 향후 건립될 대형 AI 데이터센터(AI Factories)에 이 온사이트 시스템을 대규모로 배치할 계획입니다.

이는 같은 해 글로벌 데이터센터 리츠인 에퀴닉스(Equinix)가 블룸에너지 기반 발전 규모를 100MW 이상으로 확대한 사례와 궤를 같이합니다. 거대 자본들이 온사이트 발전을 주목하는 배경에는 계통 접속 대기(Grid Backlog)라는 병목을 우회하여 매출 발생 시점을 앞당기려는 고도의 자본 효율성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시장은 이를 단순히 ‘전력을 구매한 행위’가 아니라, 경쟁사보다 먼저 서비스를 가동할 수 있는 ‘시간’을 선점함으로써 자산 가치를 극대화한 전략적 승부수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 블룸에너지의 ‘2026 데이터센터 전력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망(Grid) 공급 확정성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인해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의 73%가 이미 온사이트 발전 파트너 선정을 마쳤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30년에는 전체 데이터센터의 33%가 100% 온사이트 전력으로 가동될 전망이며, 이는 전력 수급의 주도권이 공공 계통에서 민간 자립형 인프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2030년 100% 온사이트 발전 비중 예측
<2030년 100% 온사이트 발전 비중 예측> 출처: Bloom Energy

투자자가 직면할 핵심 리스크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온사이트 발전은 전력망의 병목 현상을 우회하여 자산 가동의 확정성을 높이는 수단이 됩니다. 다만, 이러한 전략적 선택이 실제 자산의 경쟁력으로 온전히 치환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가동 이후의 운영 안정성과 외부 환경의 변수들을 다각도로 점검해야 합니다.

우선, 온사이트 발전은 높은 초기 투자비(CAPEX)를 수반하는 자본 집행 모델입니다. 발전 설비 자체의 비용뿐만 아니라 고전압 수변전 설비, 가스 인입 등 인프라 부대 비용이 전체 자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최근 설비를 직접 소유하지 않고 전력을 구매하는 ‘EaaS(Energy as a Service)’ 모델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으나, 이 역시 가동률 보장(Performance Guarantee) 및 연료비 변동에 따른 패스스루(Pass-through) 조항 설계가 펀드의 현금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유틸리티 계통 접속의 병목을 우회하는 것이 온사이트 발전의 목적이지만, 역설적으로 환경 및 시설 관련 인허가는 여전히 견고한 장벽입니다. 가스 기반 발전(엔진, 터빈, 연료전지)을 선택할 경우, 질소산화물(NOx) 배출량 등 지역별 환경 규제와 주민 수용성 문제가 가동 시점을 늦추는 새로운 불확실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드 밖의 독립 전원이라 할지라도 도심형 인프라로서 요구되는 엄격한 환경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속도라는 온사이트 본연의 강점은 희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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