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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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판단을 내릴 때 초기에 제시된 기준에 영향을 받아 판단을 내리는 현상을 뜻하는 앵커링. 자본시장과 부동산 참여자들도 이러한 앵커링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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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이 앵커링을 걷어내는 게 좋죠. 그 방법 중 하나는 시계열을 늘려,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데이터를 바라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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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어떤 오류들이 있을까요? 금리와 부동산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떤 앵커링에 빠져 있는지 함께 살펴보아요.
앵커링(anchoring, 정박효과)은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듯, 개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정보나 수치가 기준점이 되어 의사결정과 판단을 좌우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앵커링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현된다. 아래는 올해 4월에 발간된 NH투자증권 안기태 이코노미스트의 보고서에서 상당히 인상깊었던 그래프이다.
그는 현재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경험한 인플레이션은 2006~2007년 차이나 플레이션과 2011년 유가 급등이며, 서비스 부문의 인플레이션은 생소한 경험이라고 역설했다. 과거에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도 서비스 물가가 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는데 지금은 해당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즉,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발생하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사람이 없어 그 예측이 어렵다는 의미로 읽힌다.
자본시장의 매니저와 애널리스트도 저마다 본인의 경험에 갇힌 채 사고가 확장되기 어렵다는 것은 각종 자산가격의 움직임을 통해 사후적으로 확인되곤 한다. 주요 의사결정 주체인 본부장급은 2000년 이후, 시니어들의 경우 대략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 준거점을 2000년 혹은 2008년 이후로 잡더라도 아래 그래프를 통해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꼽아볼 수 있다.
작년부터 겪고 있는 금융시장의 좌충우돌은 현업 기관투자자들이 대체로 위 경험에 앵커링을 하고 있던 탓에 변동성이 커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며, 금리를 많이 올렸지만 예상하던 금융위기나 침체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이에 미국채 10년물로 대변되는 시장금리는 다수의 예상과 반대로 상승해버리면서 기존 채권투자자들의 손실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아파트 거래 시장에도 적용되는 앵커링
이는 기관투자자 뿐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는 국내 아파트 시장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2023년 1.3대책 이후 아파트 가격과 거래량 반등은 30대가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들의 아파트 시장에 대한 실전적 경험은 길어야 5~10년 이내로 제한된다.
실제 서울 내 선호지역 아파트 실거래 추이를 살펴보면 2018년말~2019년 상반기는 정부의 수요억제책,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세대) 입주,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1.25% → 1.75%)이 겹쳐 거래절벽과 급매 중심의 체결로 침체를 겪은 바 있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알다시피 경기침체 및 코로나19의 여파로 기준금리를 0.5%까지 낮추게 되자 강하게 반등한 모습이다. 해당시기의 경험에 닻을 내리면 “하락장은 제한적이고 결국 우상향하니 버티면 된다”, “금리를 낮추면 집값은 다시 오른다”는 판단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시계열을 조금 더 늘려보면 그러한 판단에 큰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의 아파트 가격을 살펴보자.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급락했던 아파트 가격은 재빠른 금리인하와 규제완화에 힘입어 2009년에 상당 수준 반등했으나 이후 4~5년의 침체기를 겪은 바 있다. 부동산 시장을 좀 더 오래 호흡했던 세대는 금번 반등이 2009년과 같은 일시적 반등일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기다리거나 매도하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저마다 자기 경험의 경계에서 닻을 내리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커다란 기회가 되고 누군가는 큰 손실을 보게 된다.
2022~2023년은 집값이 상당수준 하락했다가 반등했다는 점에서 2009년 전후, 2019년 전후와 유사성이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는 ‘다른 조건이 일정하면’인데 2009년, 2019년과 현재를 비교하자니 거의 모든 조건이 일정하지가 않다. 심지어 지금도 투자 의사결정을 고민하는 동안 세상은 변하고 있다.
여기서 ‘직업병’이라 대체해도 될 다양한 앵커링이 혼란을 가중하게 된다. 자기 전문분야에 따라 누군가에겐 ‘정부정책’이, 누군가에겐 ‘공급’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주장할 것이다. 세대간 다른 앵커링이 의사결정을 좌우하듯, 전문가들의 차별화된 앵커링은 다른 목소리로 이어진다.
공급은 부동산 안정의 ‘만능 열쇠’가 아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서울∙수도권 집값이 급락 또는 하향 안정화되었던 시기는 (1)노태우 정부 추진 1기 신도시가 공급된 1990년대 (2)1998년 IMF 외환위기 (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세 차례를 짚어볼 수 있다. 특히, 연령대가 높은 분들께는 (1)에 대한 기억이 매우 인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와 (3)은 각각 국내 외환보유고, 미국의 파생상품 등 국내 부동산 시장과는 무관한 부문에서 발생한 외부 충격이었다는 점에서 (1)은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다수에게 앵커링 되어있다.
공급 확대가 가격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문제는 과거 사례를 통해 ‘오직 공급 확대만이’ 도움이 된다는 사고에 갇히는 것이다.
서울의 인구는 1993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이며, 2005~2006년도에는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견조하게 상승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인구, 금리 등의 여타 변수는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오직 공급만이 해결책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다. 기성세대의 뿌리 깊은 앵커링은 이처럼 1990년 이후의 부동산 시장 경험에 근거한다.
되돌아보면, 1990년 이후 2008년 금융 위기까지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지금보다 현저히 높았으며, GDP 대비 가계부채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최대 70% 수준으로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개발도상국보다 GDP 성장률은 낮고, 주택 보급률과 가계부채 부담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수록 그러한 특성을 닮아가게 되었는데, 그런 환경에서는 금리가 주택수요를 좌우하는 주요 요소로 올라서게 된다. 이 경우 단순히 우리 내부의 경험에 집착하기 보다는 우리보다 금융의 역사가 오랜 선진국의 사례를 분석하고 함의를 찾는 게 유효할 것이다.
결국 부동산 참여자들이 알아야 할 건
필자는 채권시장 중심의 경력을 쌓았다 보니 결국 자산가격은 금리(시장금리와 기준금리를 통칭)의 향방에 달려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2009년 이후 금리 상승의 제약적인 환경이 수도권 집값 하락으로, 2019년 이후 금리 하락의 완화적인 환경이 수도권 집값 상승이라는 서로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고 해석한다.
최근 국채금리의 흐름을 살펴보면 하반기 이후 미국 장기채(만기 10년 이상) 수익률이 상승하면서 우리나라 국채금리도 끌려 올라가 긴축적인 환경을 조성하였고, 추석 이후 부동산 시장에 다시 한파가 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다만, 11월 이후부터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시장이 선반영하면서 다시 미국 장기채 금리 레벨이 낮아지는 가운데 우리나라 시장금리도 빠르게 하락 중이니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부동산 시장도 경착륙 보다는 연착륙에 무게를 둘만 하다. ‘기준금리 인하 가속화’냐 ‘고금리의 장기화’냐,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당분간 시장금리는 변동성을 보일 것이고, 주택 수요 또한 금리 변화의 흐름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극심한 변동성 장세를 두고 ‘이런 적은 없었다’는 표현을 상투적으로 쓰지만, 이는 우리의 경험이 ‘현재’에 가장 압도적인 가중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의 금융 시장만 살펴보면 ‘기준금리 인하 가속화’에 무게가 실리지만,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이 5~6% 수준의 기준금리를 장기간 유지한 바 있어 ‘고금리 장기화’ 또한 가능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과거에도 해석하기 어려운 현상은 부지기수였으며, 한치 앞을 내다보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이 장기간의 시계열을 분석하고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해 보는 것이 헛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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