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 서울시가 사대문 안 도심 최고 높이를 110m+α로 상향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면서, 10년간 정체됐던 CBD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 향후 10년간 CBD에는 연면적 5만 평을 넘는 초대형·트로피 에셋이 전체 신규 공급의 50%를 차지하며, 강남을 넘어서는 새로운 업무 중심지로 부상할 전망입니다.

  • 1980년대 재개발 건물들이 40년 만에 다시 개발되는 ‘재재개발’과 서울역-남산 축 개발이 맞물리며 CBD는 역사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90 → 110 → 90 → 110+α

이 숫자들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서울시 도시계획 변경에 따른 CBD, 즉 4대문(이하 사대문) 안 도심 최고 높이의 변화입니다.

서울시가 처음 종합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최고 높이를 정한 것은 2000년입니다. <도심부 관리 기본계획>이라는 도시계획을 통해서였죠. 당시 서울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도심 내 최고 용적률이 1000%까지 허용된 이후로 개발 후유증이 남아있던 시기였습니다. 도심 내 문화 경관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서울 도심의 정체성을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내사산 높이를 기준으로 한 90미터를 도심 최고 높이로 정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도시계획 이름에도 ‘관리’란 단어가 담겨 있습니다.

도시계획으로 살펴보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

2004년 서울 도심의 최고 높이는 110미터로 높아집니다. <도심부 발전계획>이란 이름처럼 ‘발전’을 지향하였고 청계천 복원과 연계하여 도심활성화를 지원한다는 명목이었어요. 9년 뒤인 2015년에는 <역사도심 기본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역사도심’인만큼 최고 높이는 다시 90미터로 낮아지게 됩니다. 사대문 안 도심의 첫 번째 정체성을 역사도심으로 규정한 것이죠. 이렇게 도시계획 이름만 봐도 개발에 힘이 더 실리며 높이가 높아지는지, 아니면 보존의 목소리가 커지며 높이가 낮아지는지 짐작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사대문 안 도심 관련 도시계획 도서 (출처=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한편 보존 중심의 정책이 이어지면서 사대문 안 도심 발전이 점점 느려지거나 정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한 종로, 을지로, 청계천 일대와 서울역 주변은 오랜 기간 서울의 유일한 도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몇 가지 통계 자료로 살펴볼까요. CBD 인구는 1985년 20만 명을 정점으로 최근에는 10만 명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사업체 종사자수 통계는 52만 명으로, 66만 명인 강남 도심(이하 GBD)에 역전을 허용했죠. 도심의 위상을 보여주는 업무시설 연면적의 경우, 종로구와 중구를 통틀어도 290만 평으로 강남구와 서초구의 423만 평에 비하면 70%가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활력 여부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건축물 인허가 연면적(2018-2023년) 역시 121만 평으로 GBD(166만 평)에 비하면 73% 수준에 불과하고요. 이미 건물로 가득 찬 도심의 유일한 개발 수단인 재개발 사업 시행 건수도 연간 1~2건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예상하지 않았던 결과였습니다.

2023년 등장한 <서울도심 기본계획>은 도심의 방향성을 개발로 재설정하고 있습니다. 도심부 최고 높이는 110미터+α로 높아졌는데요. 도심 기능 회복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실행 방안 중 하나인 것이죠.

높이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α입니다. 기준 높이를 일괄적으로 20미터씩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서 더 높게 지을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도심 재개발(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추가 20미터, 세운상가 일대와 같이 재정비촉진지구 내 사업 추가 20미터처럼 사실상 기본으로 부여되는 높이의 범위를 확대하였습니다. 나아가 이 모든 높이를 상한선인 ‘최고 높이’가 아닌 출발점인 ‘기준 높이’로 전환하며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됩니다.

도심의 높이 규제 (출처=2030 서울특별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부문)

초대형 오피스가 바꿀 도심 풍경

높이만 달라진 건 아닙니다. 도심에서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녹지를 확대하겠다는 정책 방향성에 힘입어, 부지 내에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녹지’를 적용할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시작했거든요.

단순히 계산하자면, 도심 내 일반상업지역에서 1,000평의 대지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의무적으로 30%인 300평을 녹지로 만들고 약 80평을 추가할 때마다 개발가능한 용적률이 100%씩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개방형 녹지는 높이를 완화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공동화 해소를 위한 도심 내 주거용도 도입, 저층부 개방, 도시경제 활성화 용도 등 다양한 인센티브 기준이 반영되면서 600%에서 출발한 용적률은 1,500%까지 올라가고, 90미터에서 시작한 높이는 200미터*가 될 수도 있는 셈이죠.

이러한 도시계획 변경이 기폭제가 되어, 오랫동안 추진되지 않던 사업이 추진되거나 이미 추진 중이던 사업이 새롭게 계획을 바꾸기도 했어요. GBD나 YBD(여의도 도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허가 규모 증가세가 CBD에서만 나타난 것 또한 정책 변경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일 테고요. CBRE Korea에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CBD에 추진 중인 개발사업 37개의 평균 용적률은 1,100%, 평균 높이는 100m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잠잠했던 CBD의 상황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어요.

CBD에 추진 중인 오피스 개발사업의 용적률과 높이 (출처=서울 오피스 2030, CBRE Korea)

사대문 안 도심의 경우 향후 공급될 자산들은 초대형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여요. 도심 내 개발사업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만큼, 앞으로 지어질 개별 건물의 규모 역시 커지기 때문이에요.

이지스자산운용의 분석에 따르면, 연면적 2~5만 평 규모의 초대형 오피스와 5만 평을 초과하는 트로피 에셋(trophy asset)의 경우 전체의 약 50%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이미 개별 필지 단위로 오피스가 지어진 강남권은 도시계획의 한계로 초대형 이상 오피스가 현재 지어진 건물 대비 22% 수준에 그쳐요.

앞으로 10년, CBD 내 새로운 에셋들의 경쟁이 눈부실 가능성이 높아요. 초대형·트로피 에셋은 시장 내 높은 영향력과 대표성을 보유한 자산으로 리테일, 어메니티 시설 등과 같은 다양한 부대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거든요. 이런 부대시설은 건물 내 입주자를 위해 우선적으로 계획되지만,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서울 3대 권역별(CBD, GBD, YBD)/규모별 오피스 공급 비중 (출처=Office Paradigm Shift: Demand, Supply & Asset Cycle, 이지스자산운용)

40년 만의 재개발, 도심 건물들의 두 번째 변신

도심에는 새로운 변화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도심 재개발로 지어진 건물들이 다시 개발되는, 이른바 ‘재재개발’의 흐름입니다.

도심 내 대형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지어진 때는 1970~1980년대. 지금으로부터 40~50여 년 전이니 이젠 다양한 용도로 모습을 달리하는 게 당연하겠죠. 리모델링을 통해 자산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용적률과 높이 인센티브에 힘입어 철거 후 새롭게 지어지기도 해요.

오랫동안 서소문 일대에 자리를 지켜온 옛 중앙일보 사옥은 1985년 ‘서울역-서대문 제1구역 1지구 재개발’을 통해 지상 22층, 연면적 2.1만 평의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아마 호암아트홀 건물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이후 중앙일보가 이전하며 다른 사옥으로 이용되는 등의 변화를 거치다가 현재는 개발을 위해 철거된 상태입니다. 이번에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과 함께 지상 38층, 연면적 7.5만 평의 초대형 오피스로 개발됩니다. 이미 오랫동안 언론사 사옥과 문화시설로 기능하던 도심 속 자산이 그 기능을 다시 이어받는 개념이죠. 

창덕궁 맞은편에도 새 단장한 건물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준공된 삼환빌딩은 리모델링을 거쳐 INNO88 타워가 되었어요. 창덕궁, 창경궁, 운현궁과 종묘, 그리고 남산까지 보이는 탁월한 경관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 되었습니다.

율곡로를 따라 경복궁 방향으로 걷다 보면 갑작스레 텅 비어있는 넓은 땅을 발견하게 돼요. 서울시가 5,580억 원에 강남 일대 부지와 맞교환하는 형태로 매입한 송현부지입니다. 이곳에는 곧 미술관이 지어질 예정이에요.

광화문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KT 광화문 West가 보일 거예요.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KT의 사옥입니다. 그동안 직원들만 이용하는 다소 폐쇄적인 업무시설이었다면, 이번에는 저층부를 리테일, F&B와 문화시설로 구성하여 인근 보행자나 방문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전면에는 루이비통, 구찌, 생로랑, 코카콜라,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대형 광고주를 유치한 대형 디지털 사이니지가 거리의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 있고요. 광고에 등장하는 BTS 뷔를 큰 화면으로 보고 사진에 담기 위해 서 있는 아미(ARMY)들과 경복궁과 같은 전통문화유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뒤섞여 저마다의 도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KT 광화문 West의 디지털 사이니지, 직접촬영

서울역-남산, 새로운 도심 축의 탄생

철도나 도로와 같은 교통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점 역시 도심의 미래를 밝게 합니다. 특히 광역교통의 중심인 도시의 기차역 주변이나 철도 부지는 결절점으로서 도심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죠.

일례로, 도쿄역 주변 마루노우치 일대는 ‘도시재생 긴급정비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요. 일본의 국제경쟁력 제고가 도쿄의 도심 재구축에 달려 있다는 정책 방향성에 따른 것입니다. 기존에도 중심부의 오피스 밀집지구였던 일대는 재개발을 통해 업무시설 확충은 물론, 다채로운 리테일과 문화시설, 숙박시설, 주거시설을 갖추며 방문객, 근무자, 거주자 모두를 모이게 했습니다. 도쿄역을 기준으로 북측에 위치한 야에스 재개발과 뉴욕의 허드슨야드 개발도 비슷한 사례고요.

서울로 돌아와 볼까요. CBD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역 주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일대 또한 다층적인 맥락 위에 도심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여요. 서울역은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외 5개 노선이 교차하는 결절점인 동시에 역사적 장소이자 문화재이기도 하죠. 이미 역사 내부를 원형으로 복원하고 문화역서울284라는 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입니다. 서울역 북부 철도 유휴부지를 이용한 ‘서울역북부역세권 복합개발사업’은 MICE, 오피스, 호텔, 오피스텔이 결합된 10만 평 규모의 복합단지를 목표로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한양도성을 둘러싼 내사산 중 하나인 남산 자락 역시 서울역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역과 남산이 만나는 서울역 동측 힐튼 부지에는 ‘이오타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연면적 14만평의 복합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어요. 이곳에는 오피스와 리테일, 호텔로 지어질 예정입니다. 다양한 용도로 개발하여 부지 내는 물론 지역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죠.

이오타 서울 호텔 앞 전경 조감도 (자료 제공=이지스자산운용)

‘이오타 서울’ 역시 ‘재재개발’의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이오타 서울’을 이루는 기존 건물들이 과거 재개발을 통해 지어졌었기 때문이에요. 대표적으로 중심에 위치한 힐튼 호텔의 경우, 지금은 없어진 <도시재개발법>에 따라 ‘양동구역 7지구 재개발’ 사업의 결과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지어진 힐튼호텔에서는 1985년 최대 규모로 기록된 국제행사인 IMF/세계은행 총회가 개최되었고요. 이어 개최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서도 내외빈의 숙소로 이용되는 한편, 이후로도 오랫동안 한국을 찾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남산과의 연계성을 고려해 ‘이오타 서울’ 대지면적의 약 40%는 모든 시민에게 개방되는 녹지로 계획되어 있어요. 또한 수직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 서울역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도 도입될 예정이고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하루 수십만 명이 이용하는 철도 역사의 역동적인 모습과 서울 전체를 내려다보는 남산의 대조적인 풍경이 함께 그려집니다.

이것이 바로 CBD, 사대문 안 도심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통, 업무, 상업, 행정, 관광, 문화 등의 각 분야에서 다양한 기능으로 이미 풍부하게 갖춰진 콘텐츠 안에서 맥락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죠.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도였던 서울의 중심이면서 작게는 서울의 도시개발사를 모두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재재개발’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유일한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CBD 붐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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